삼성전자는 자사주 소각, 롯데는 중간지주 체제로…‘플랜B’ 통한 안전장치 확보 나서
삼성전자는 4월 27일 지주사 전환 포기를 공식 발표했다. 아울러 보유 중인 자사주 소각계획도 밝혔다. 지주사 전환과 그 과정에서 자사주의 마법(자사주를 지주사로 넘겨 의결권을 되살림)으로 지배력을 배가시키는 방법을 포기한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재판 결과에 따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그룹 지배력이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사진은 이 부회장과 신 회장이 지난해 12월 6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실규명을 위한 청문회’에 출석해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그런데 숨은 묘수가 있다. 이날 함께 발표한 보유 중인 자사주 1798만 주 전량 소각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이른바 ‘분모’인 발행주식 수가 줄어 현재 18.6% 수준인 삼성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21.34%로 높아진다. 앞으로 자사주 매입 소각이 계속될수록 지분율은 더 늘어나는 효과가 기대된다. 일반 주주들로서도 나쁠 게 없다.
삼성전자의 지주사 전환 포기를 삼성그룹의 지주사 전환 포기로 단정짓기도 아직은 이르다. 물론 새 정부에서 금산분리 규제가 강화돼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해야 할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순환출자와 상호출자를 피해 이를 인수할 곳은 삼성물산과 이재용 부회장 개인뿐이다.
그런데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지주사의 자회사 의무보유 지분율인 20%를 넘어선 만큼 삼성물산으로 이를 집중시킨다면 굳이 삼성전자를 인적분할하지 않아도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다. 삼성전자 지분을 넘길 수 있다면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금융지주사 설립도 비교적 손쉽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4월 26일 롯데제과, 롯데쇼핑, 롯데칠성음료, 롯데푸드 4사를 인적분할하고 각사 투자사업 부문을 신설 롯데제과홀딩스와 합병하겠다고 밝혔다. 롯데그룹은 일본롯데홀딩스가 호텔롯데를, 호텔롯데가 한국롯데의 주요 계열사들을 지배하는 구조였다. 신 회장은 한국롯데 주요 계열사 지분을 갖고 있지만, 일본롯데홀딩스와 호텔롯데 지분은 없다. 현재 구조면 일본롯데홀딩스를 지배하는 일본인 임직원들이 한국 롯데그룹 최대주주다.
신 회장은 2015년 호텔롯데 상장을 통해 일본롯데홀딩스 지분을 줄이고, 자신의 지배력을 늘리려 했다. 하지만 형인 신동주 전 부회장과 경영권 다툼이 벌어진 뒤 비자금 의혹 사태를 겪고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관련되면서 호텔롯데 상장은 성사 여부와 그 시기를 기약할 수 없게 됐다.
현재 진행 중인 비자금 의혹·최순실 관련 재판 결과에 따라 자칫 신 회장이 영어의 몸이 된다면 그룹 지배력이 통째로 흔들릴 수 있다. 따라서 일단 신 회장이 직접 지분을 보유한 일부 계열사들로 중간지주를 만드는 차선을 택했다. 그룹의 일부라도 일본의 영향력에서 안전한 곳을 만든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롯데홀딩스가 절대적인 지배력을 가진 호텔롯데가 롯데알미늄(지분율 25.04%), 롯데건설(41.42%), 롯데상사(34.64%), 롯데물산(31.13%)의 최대주주다. 롯데그룹 시총 1위인 롯데케미칼은 롯데물산과 호텔롯데가 각각 31.27%, 12.68% 지분을 가진 1, 2대 주주다.
현재 진행 중인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재판 결과에 이 부회장과 신 회장 모두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부회장의 경우 실형을 받으면 보험업법상 삼성생명 대주주가 될 자격이 제한될 수 있다. 삼성 금융계열사를 지배하지 못할 위험이 있는 것이다. 현행 보험업법은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상 기준에 맞춰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집행이 끝나거나 형 집행면제 5년 후까지 대주주 자격이 제한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현재는 법적으로 이건희 회장이 삼성생명 최대주주로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신상에 문제가 생기면 상속자 또는 2대 주주인 삼성물산이 의결권을 행사하게 된다”며 “만약 이 부회장이 실형은 받을 경우 형 집행이 끝날 때까지는 이 부회장 본인은 물론 삼성물산도 삼성생명 주주로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는 처지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계 관계자는 “유언장에 명시되지 않는다면 법적으로 이 회장의 삼성생명 지분을 상속받을 수 있는 사람은 이 부회장 외에도 부인인 홍라희 여사,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 등이다”라며 “삼성생명 최대주주가 되면 삼성전자 1대 주주로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 회장의 경우에도 형인 신동주 전 부회장과 경영권 다툼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진행 중인 재판이 중요하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만일 신 회장이 영어의 몸이 된다면 그 틈을 타 신동주 전 부회장이 일본롯데홀딩스 주주들 설득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며 “신 전 부회장이 최근 롯데쇼핑 지분을 비교적 고점에 매각했는데, 일본인 주주 설득과 이 자금을 활용해 경영권에 재도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과 신 회장의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재판은 모두 박 전 대통령의 뇌물죄와 얽혀 있다”며 “자칫 실형을 받는다면 중형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