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좌진 “자녀 운전기사 노릇” 등 폭로 과감해져…“전화번호 알려달라” 핑크빛 기류도
여의도 옆 대나무숲 페이스북 게시판 캡처 사진
하지만 대나무숲 운영진은 약 3주 만에 돌연 운영을 중단했다. 운영진은 “대나무숲에 대한 운영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다. 이들에 대한 요구에 대해 언제까지 소모적인 논쟁을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라고 전했다. 운영진은 <일요신문> 인터뷰 당시 대나무숲을 중단하라는 ‘외압’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최근 국회 대나무숲이 재탄생했다. 대나무숲 운영자는 5월 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국회 근무자 중에 대나무숲 가치에 대해 반감이 있는 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국회 인턴이나 9급, 신입 직원의 응원으로 다시 운영하기로 결심했다. 게시판을 폐쇄했을 때 3권 분립 헌법 기관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국회의 명예를 실추하는 행위라는 비판을 받았다. 때문에 페이스북 회원들의 공모를 거쳐 ‘여의도 옆 대나무숲’으로 이름을 바꿨다”라고 밝혔다.
여의도 옆 대나무숲은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모습이다. 대나무숲 활동 중단 전까지 게시글 숫자는 60개뿐이었지만 활동 재개 뒤 약 80개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게시글에 대한 ‘좋아요’ 수나 댓글 수도 더욱 늘어났다. 5월 2일 현재 대나무숲 페이지에 ‘좋아요’를 누른 회원은 1249명. 이전에 비해 두 배로 늘어난 수치다.
회원들의 폭로 역시 더 과감해졌다. 3월 30일 한 회원은 게시판에 “의원님, 본인의 집 전기세나 수도세를 행정비서한테 처리해달라고 하거나, 자녀들 차를 태워주라고 수행비서에게 지시하거나 텃밭을 가꾸도록 비서를 시키는 것들 좀 하지 마세요. 저희들은 의원님 개인 돈으로 고용한 개인 비서가 아니잖아요. 의정 활동을 도울 목적으로 국민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비서잖아요. 많이 실망했어요”라고 밝혔다. 일부 의원들의 ‘갑질’을 암시한 글이다.
실제로 국회 보좌진 사이에서 금배지들 갑질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익명을 요구한 국회 비서는 “가볍게는 ‘무엇을 좀 사달라’ 같은 심부름부터 집안일 심부름까지 다양하다. 보통은 행정비서들이 하는데 자괴감이 들 때가 많다. 공과금 대납은 물론 연말정산신고에 공인인증서 등록까지 해달라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다. 의원 심부름뿐만 아니라 수석 보좌관 잔심부름을 할 때는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고 하소연했다.
다른 비서는 “의원 가족들 힘이 강한 방이 종종 있다. 특히 사모님들이 의원 일정이나 말씀 자료를 보고 지적하러 오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사모님들도 의원만큼 지역 관리에 공을 들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지만 결코 좋은 모습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른바 ‘비선 사모’의 오지랖 때문에 일부 보좌진들이 괴로움을 겪고 있다는 소문이 팽배하다.
대나무숲엔 딴청을 피우는 보좌진 성토 글들도 많다. 한 회원은 “의원 사무실에서 유튜브, 아프리카TV, 페이스북, 트위터 등은 접속 안 되게 해야 하지 않을까. 이 XX들은 하루 종일 롤이랑 오버워치를 봐서…“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롤(League of Legends, 약어 LOL)과 오버워치는 온라인 대전게임이다. 의정활동에 매진해야 할 보좌진들이 사무실에서 게임 관련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다른 회원 역시 “키보드워리어인 당신들과 일하는 것이 부끄럽다. 온종일 카카오톡 채팅방 띄워놓고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관리하다니…의회에 대한 불신은 당신 같은 사람 때문이겠지…그렇게 일하면서 밖에서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으로 포장하겠지. 남을 욕하기 전에 자기 자신부터 돌아보세요”라고 했다.
대나무숲엔 ‘핑크빛’ 기류도 여전했다. 무엇보다 여성 보좌진들이 적극적으로 속마음을 표현한 점이 눈길을 끈다. 한 회원은 “어제 저녁 9시께 술 취해서 자기 방인 줄 알았다가 들어와서 저랑 눈 마주치고 황급히 나가신 비서님…다시 만나면 번호 좀 주세요. 제 타입입니다. 참고로 저는 여자입니다”라고 밝혔다. 다른 회원은 “우리 방 대학생 인턴은 배우 박보검을 닮았다. 다른 방에서 구경도 왔는데 얼마 전에 학교로 돌아간다고 그만뒀다. 대학생 인턴의 사직과 함께 출근의 낙을 잃었다”라며 재기 넘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어떤 회원은 “8층 남자화장실에서 몰카 얘기하며 ‘국회에도 있는 것 아니냐’라며 깔깔대며 웃었던 남자 분들…바로 옆에 여자화장실에서도 들려요. 이제 일하면서도 화장실 못 가겠네요”라고 했다. 국회 의원회관 여자 화장실에 ‘몰카’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실제로 여성 보좌진들 사이에서는 ‘국회 몰카설’이 번지는 모습이다. 한 비서는 “최근에 소문으로 들었다. 실제로 본 일이 없고 발견됐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다. 소문을 들었을 때는 웃으면서 넘겼지만 그 이후로 화장실 가기가 무섭다.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없어 답답하다”고 했다.
여성 보좌진이 겪는 성차별적 피해에 관한 글도 있었다. 한 회원은 “저희 방은 여자인 비서가 사무실에 한 명은 꼭 상주해야 합니다. 남자직원들만 사무실에 남으면 전화를 받을 사람들이 없다면서 안 받는 분위기예요. 또 여자 비서들은 보좌관 입맛에 맞는 커피를 타줘야 합니다. 어쩌다가 컵라면을 먹으면 남자 분들 라면에 물 붓는 것도 여자 비서의 몫입니다. 그들이 먹고 간 자리에 남은 컵라면 국물과 젓가락 하나, 휴지 한 장까지도 여자 비서들이 치워야 합니다”라고 했다.
한 여성 비서는 “여성 보좌진들이 국회로 진출한 지 얼마 안 됐다. 대체로 직급이 낮거나 어린여성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국회는 권력을 틀어쥔 남성들의 세계다. 휴가를 편성할 때도 나눠서 쓰라는 지시를 받았다. 커피를 타기 위해 여자들이 한 명씩은 필요하다는 이유였다”라고 말했다.
대나무숲 운영진은 “국회 경력 다년차가 되면 게시글들이 충분히 사실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과거에 비해 지금은 운영 중단을 요구하는 외압이나 어려움이 없다. 국회는 국민의 선택을 받는 헌법기관이다. 그 어느 곳보다 청렴해야 할 기관임에도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대나무숲이 보여주고 있다. 부당한 일들을 수면 위로 이끌어내는 일을 끝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