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18개 검찰청에 전담수사팀 차려…조폭처럼 ‘범죄단체 활동제’ 적용
대검찰청은 최근 보이스피싱 범죄 수사를 위해 전국 18개 검찰청에 전담수사팀을 편성했다. 고성준 기자=joonko1@ilyo.co.kr
“전국 단위로, 대규모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이 잡듯이 뒤진다는 표현이 꼭 맞다.”
최근 검찰이 벌이고 있는 기획 수사를 두고 대검찰청 관계자가 한 말이다. 상대는 보이스피싱 조직이다. 보이스피싱 범죄는 대검찰청이 정한 ‘2017년 2대 중점 척결 대상’ 가운데 하나로, 올해 검찰의 ‘첫 타깃’이다. 지난해 불거진 국정농단 사건이 마무리되면서 그동안 가장 높은 위치의 권력에 집중돼 있던 검찰의 수사력이 민생 범죄, 즉 ‘아래’로 내려온 셈이다.
이번 수사는 그동안 연례행사처럼 진행되던 수사와는 사뭇 다르다. 규모부터 상당하다. 대검은 최근 보이스피싱 범죄 수사를 위해 전국 18개 검찰청에 전담수사팀을 편성했다. 전국에서 검사가 가장 많이 모여 있는 서울 중앙지검에는 개인정보범죄 정부합동수사단이 편성돼 있다. 중앙지검 합수단은 활동기간 1년으로, 지난 2014년 4월 꾸려졌으나 그 기간이 계속 연장되고 있으며, 지난 3월 또 다시 1년 연장이 결정됐다.
합수단은 그동안 검사와 수사관 48명, 외부 파견 9명 등 57명의 규모로 운영되고 있었지만 최근 규모가 더 커졌다. 지검 내부의 강력부와 첨단범죄수사부뿐만 아니라 금융감독원, 미래창조과학부, 국세청‧관세청에 외교부, 출입국관리사무소 등 12개 기관이 합동으로 수사하면서 활동 인원을 늘렸다. 검찰은 각 정부기관과 대포통장과 해외송금 협업, 중국 공안과 협조 업무 등에서 지원을 받고 있다.
최근 편성된 전국 검찰청 전담수사팀의 경우 대부분 강력부에 편성된 점도 눈에 띈다. 검찰이 보이스피싱 조직을 조직폭력단과 같이 가중처벌이 필요한 ‘악질 단체’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번 기획 수사에 앞서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해 단순 사기죄뿐만 아니라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죄’를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이 혐의는 그동안 조직폭력단체에만 적용돼 왔다. 범죄단체 조직 혐의를 받으면 보이스피싱 총책 등 주범은 최고 징역 15년형까지 받게 된다. 공범뿐만 아니라 단순 가담자까지도 구속수사 및 중형이 구형될 수 있다.
검찰은 또 보이스피싱 사범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해 운영 중이다.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보이스피싱 계좌번호, 전화번호 등 범행관련 핵심 항목을 ‘보이스피싱 사범 관리 시스템’에 입력해 범죄 연관성을 분석하고 수사에 활용하고 있다. 2017년 4월까지 DB에 구축된 관련 사범자는 4만 1831명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전방위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보이스피싱에 대한 대대적인 기획 수사는 김수남 검찰총장의 직접 지시로 시작됐다. 앞서 김 총장은 지난 4월 5일 서울 서초구 대검청사에서 ‘전국 18대 지검 강력부장, 조직폭력전담부장 및 전담검사 화상회의’를 열고 간부들에게 적극적인 대처를 주문했다. 특히 김 총장은 회의에서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해 “불특정 다수로 피해가 무한정 확산될 수 있는 만큼 죄질이 나쁘다”며 “법이 허용하는 최고형을 구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검찰청은 이날 앞서의 전국 18개 검찰청 전담 수사팀 편성 방침을 결정했다.
김 총장은 또 대통령선거를 1주일 앞둔 지난 5월 2일 열린 확대 간부회의에서도 보이스피싱 범죄 수사를 챙겼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김 총장은 선거 열기가 과열되는 시점을 앞두고 선거범죄 엄벌을 강조하는 자리에서 별도로 시간을 할애해 “보이스피싱 범죄에 수사력을 집중하라”고 말했다.
김수남 검찰총장은 “보이스피싱 범죄에 수사력을 집중하라”고 지시했다. 최준필 기자=choijp85@ilyo.co.kr
검찰총장 지시에 맞춰 검찰은 보이스피싱 범죄를 ‘이 잡듯’ 샅샅이 훑고 있다. 수사 방식부터 달라졌다. 그동안 보이스피싱 수사는 ‘상향식’으로 이뤄졌다. 피해 신고 이후 인출책이나 대포통장 모집책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인데, 보이스피싱 조직은 점조직 형태로 개인정보 수집(해킹)책, 콜센터, 현금 인출·수집책, 송금책 등 업무를 나누면서 총책 등 상위 조직원의 신분이 하위 조직원에게 노출되지 않는다. 이러한 수사 방식은 사후적이고 일회적이라 총체적 적발이 어렵다는 비판이 따랐다.
최근 이뤄지고 있는 수사는 하향식이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앞서의 서울 중앙지검 합수단은 그동안 입수한 자체 첩보와 경찰 이첩 사건, 데이터베이스 등을 활용해 새로운 단서를 확보했다. 이를 바탕으로 총책과 범죄 수법에 따라 구분해 ‘윗선’부터 수사를 진행 중이다. 총책을 특정해 추적하고 이후 전체 범행 규모와 조직별‧역할별 공범들을 파악해나가는 방식이다. 이 가운데 일부는 체포영장이 발부돼 있다.
그동안 검찰이 검거하거나 수사 중인 보이스피싱 조직은 크게 10여 개로 분류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 활동하던 한 조직은 부총책이 검거됐고 지방의 한 조직폭력배와 연계된 조직에 대해선 인출관리책을 구속했다. 이들의 진술을 토대로 중국으로 도주하거나 한국에 숨어있는 조직원 검거 작전에 나섰다. 최근 금감원 직원을 사칭해 집을 방문한 뒤 돈을 훔쳐가는 신종 수법을 활용한 조직도 포함돼 있다. 검찰은 이들에게 주거침입절도 혐의를 추가로 적용할 예정이다.
검찰 수사는 보이스피싱 조직에 그치지 않는다. 연결된 범죄까지 수사 중이다. 보이스피싱 조직이라는 굵은 뿌리는 물론, 주변에 잔뿌리까지 모두 뽑아 범죄 자체를 근절하겠다는 의지다. 최근 구속된 대포통장 유통 업체 조직이 대표적이다. 서울북부지검은 지난 5월 3일 서울 노원구, 경기 부천, 광명, 광주, 전북 군산 등에서 유령법인을 설립해 법인 명의를 통해 대포통장 총 289개를 만들어 유통한 총책 신 아무개 씨를 구속 기소하고 명의사장 김 아무개 씨 등 41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들이 유통한 대포통장 대부분은 보이스피싱 등 조직범죄에 악용됐다.
이외에도 검찰은 또 다른 대포통장 제조망 중간 간부의 신원을 상당부분 특정하고 수사 중이다. 이들은 신용불량자에게 30만 원가량을 지급한 뒤 대포통장을 퀵서비스로 받아 보이스피싱 조직에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기획 수사 외에도 보이스피싱 유형별 수법과 대응 요령을 공개하면서 예방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선제적 대응에는 범죄 예방도 포함돼 있다”며 “최근 검찰 수사력이 보이스피싱 수사에 상당 부분 결집돼 있다고 보면 된다. 가시적인 효과가 있을 때까지 수사는 강력하게 진행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