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들 불행 초래” vs “원래부터 인격 문제”
풍수지리학자들 사이에서는 청와대 뒷편에 위치한 북악산에 대한 흉지설이 돌고 있다. 일요신문DB
[일요신문] 문재인 대통령은 ‘광화문 시대’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촛불민심을 받들어 국민과 더욱 소통하겠다는 문 대통령 의지가 담겨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묘한 풍문이 들린다.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권위적인 대통령 문화를 청산하겠다. 준비를 마치는 대로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라고 밝혔다. 광화문 대통령 공약은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로 옮기고 인근에 관저를 마련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공약을 수차례 강조해왔다. 4월 24일 문 대통령은 광화문 대통령 공약 기획위원회 출범과 동시에 “참모들과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언제나 국민들과 소통하고 국민의 상처를 치유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약속이다. 대통령이 구중궁궐 청와대에 갇혀 있으면 불통 대통령이 되기 쉽다”라고 했다. 2012년 대선 때도 문 대통령은 같은 내용의 공약을 내걸었다.
문 대통령이 강조한 광화문 대통령 공약엔 ‘숨은 일인치’가 존재한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를 떠나 시민들과 소통하는 차원에서 이전을 추진하고 있지만 여의도 정가에선 흥미로운 얘기가 들린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 저주에서 벗어나려고 공약을 추진하는 것 아니냐”라는 것이다.
청와대 저주는 역대 대통령이 주로 비극적인 사건을 맞았다는 데서 비롯된다. 이는 풍수지리학과 무관하지 않다. 청와대 뒤편에는 서울의 주산인 북악산이 있다. 왼편엔 낙산(좌청룡), 오른 편엔 인왕산(우백호)이 자리 잡고 있다. 청와대 앞엔 청계천이 흐르고 있어 배산임수의 지형이다. 명당 중의 최고의 명당이라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19대 대통령 취임선서 행사에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전달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최 전 교수 주장대로 북악산을 건드린 사례는 일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를 살펴보면 일제 강점기 당시 조선총독부 건물이 지금 청와대 터 인근에 들어섰다. 풍수지리학자들은 이때부터 대한민국 대통령의 불행한 운명이 시작됐다고 강조해왔다. 1926년 총독 집무실을 지은 3·5대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는 1936년 2·26사건으로 피살됐다. 1937년 청와대 터에 관사를 만든 미나미 지로 7대 총독은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전범’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8대 총독 구이소 구니아키도 A급 전범으로 처벌받았다. 총독부 건물 시절부터 청와대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던 셈이다.
최 전 교수는 “어떻게 괜찮았던 사람도 청와대에만 들어가면, 이해하기 힘들게 바뀌는 것일까. 청와대 터는 일제 총독이 조선의 자존심을 근본적으로 밟아 버리기 위해 선정한 곳이다. 그곳은 조선 정궁인 경복궁 위쪽에 해당된다. 전형적인 식민 통치 수법으로 세워진 곳이다. 청와대 바로 뒤에 있는 북악산은 청와대 경내에서 보면 매우 아름답고 권위도 있는 서울의 주산이다. 하지만 광화문 네거리에만 나와서 봐도 그것이 얼마나 왜소하고 인왕산 같은 주변 산세에 미치지 못하는지를 금방 알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지종학 풍수지리학자(지종학 풍수지리연구소장)가 2010년 발표한 <경복궁·청와대 입지의 비판적 분석과 대안모색에 관한 연구-풍수이론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도 청와대 흉지설이 등장했다. 지 소장은 “북악산은 엄지손가락을 곧추 세우듯 힘 있게 우뚝 솟은 모습이다. 하지만 광화문 네거리에서 바라보면 산정상 머리 부분은 동쪽으로 잔뜩 꼬고 있으며 경복궁과 청와대를 외면하고 있다. 경복궁과 청와대 풍수에선 이게 결정적이며 돌이킬 수 없는 오류다. 어머니로부터 외면당한 품안이 편안할 수 없듯이 주산으로부터 버림받은 땅은 결코 좋은 땅이 될 수가 없다. 후일 이것은 경복궁과 청와대에 엄청난 부담과 부작용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 소장이 지적한 엄청난 부작용은 현재진행형이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청와대 안주인들은 온갖 고초를 겪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4·19혁명으로 권좌에서 물러났다. 18년 독재를 일삼았던 박정희 대통령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격으로 피살됐다. 전두환 노태우 씨는 반란죄와 내란죄 및 뇌물 수수 혐의로 옥고를 치렀고 전직 대통령 예우까지 박탈당했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녀들의 뇌물 수수로 레임덕에 시달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측근 비리로 검찰 수사를 받던 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임기 말년 측근비리로 곤욕을 치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을 당했다.
물론 다른 시각도 있다. <청와대 풍수논쟁>이란 책을 펴낸 최세창 풍수지리학자는 “현대의 대통령들은 청와대에 입주해 인격이 형성된 사람들이 아니다. 청와대 거주 기간도 5년밖에 안 된다. 인생에서 5년은 그리 길지 않은 기간이다. 5년 동안에 불행의 씨앗을 심어 퇴임 후 말로가 불행해진다면 그 사람은 청와대 풍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인격에 문제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라고 꼬집었다. ‘불행한 대통령=청와대 흉지’ 도식에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문 대통령의 청와대 집무실 이전 공약에 대한 학계의 관심 역시 상당하다. 지종학 소장은 5월 1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문 대통령이 정부서울청사로 출근한다고 해도 큰 변화는 없다. 최고 통치자의 운명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청와대와 경복궁 터는 흉지다. 경복궁 터에 정부청사가 붙어 있기 때문에 북악산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조선왕조가 518년인데 경복궁을 사용한 기간은 243년뿐이다. 버려진 기간만 275년이다. 길지가 전혀 아니다. 청와대 전체를 다른 곳으로 이전해야 문 대통령이 산다”라고 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
‘테러 대비 지하 벙커도 없는데…’ 경호 우려 목소리 문 대통령은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로 이전할 계획이다. 문 대통령은 4월 24일 광화문 대통령 공약을 위해 참여정부 당시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를 영입했다. 유 교수는 서울역사문화벨트조성 공약기획위원회를 맡았다. 박금옥 전 청와대비서실 총무비서관 역시 광화문 대통령 공약기획위 위원장으로 영입됐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 집무실을 지금의 청와대에서 광화문 정부청사로 옮기겠다. 북악산과 청와대는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돌려드린다. 청와대는 경복궁과 광화문, 서촌과 북촌, 종묘로 이어지는 역사문화거리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구체적인 구상을 밝혔다. 대통령 관저는 삼청동 소재 국무총리 공관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총리 관저에서 청사 집무실로 출퇴근을 하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역사문화거리 공약은 박원순 서울시장 정책 방향과도 일치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광화문 광장 재구조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청와대 집무실 이전 공약까지 포함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 하지만 광화문 광장 재구조화 정책의 일부는 새 정부 계획과 공통분모가 있다.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광화문광장을 왔을 때 계획을 보고 드렸더니 새 정부가 출범시 함께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집무실 이전 공약에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당내에서는 경호 문제에 대한 뒷말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정부청사 내엔 지하 벙커도 없다. 북한 도발과 같은 긴박한 상황에서 벙커조차 없는 건물에 대통령을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청와대 벙커를 그대로 쓴다고 해도 집무실에서 벙커로 이동을 하면 최고 국군통수권자의 동선이 노출될 우려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청와대는 내부 주요 건물엔 외부의 테러·폭격 등에 대비하기 위한 지하벙커(진지)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또 있다. 정부서울청사 본관(서울시 종로구 세종대로 209) 주변엔 고층빌딩이 즐비하다. 외부 테러에 취약한 환경에 놓여 있는 셈이다. 청와대 주변엔 대공방어시설이 있지만 정부서울청사의 대공 방어 능력은 미약한 수준이다. 방탄유리, 지하벙커를 만드는 등 청사 건물에 대한 대대적인 리모델링 작업이 필요한 까닭이다. 행정자치부 서울청사관리소 관계자는 “대통령 집무실 이전과 기존의 다른 부처가 오는 것은 성격이 다르다. 아직 집무실 이전에 관한 구체적인 지시를 받은 일은 없다”라고 말을 아꼈다. [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