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승철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총장
인공지능(AI)과 로봇공학의 발달로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면 산업구조 재편과 일자리 감소 등 급격한 사회경제적 변화가 불가피하다. 사물인터넷(IoT)과 블록체인 등 신기술에 대한 연구와 투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이 같은 기술을 개발·운영할 수 있는 ‘사람’을 육성하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개척해나갈 인재를 발굴해야 글로벌 플랫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박승철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총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교육개혁이라고 주장한다. 박정훈 기자
지난 3월 중국 해남에서 열린 ‘보아오포럼’에서 아시아 각국에서 초청된 리더들은 4차 산업혁명을 주제로 열띤 토론이 벌였다. 여러 의제 가운데 단연 관심을 끌었던 것은 ‘교육’이다. 첫째 날 ‘교육의 미래’에 대한 발표를 맡은 박승철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총장은 산업 시스템의 변화에 앞서 교육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총장은 “4차 산업혁명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변화에 부응하기 위한 새로운 교육이 (선진국에서) 시도되고 있고, 미네르바 스쿨, 구글 대학 등 미래형 대안 대학이 부상하고 있다”며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아오포럼 이후 한국에서 만난 박 총장은 4차 산업혁명 전환기에 가장 먼저 선행돼야 할 과제로 ‘교육구조 개혁’을 꼽았다. 다음은 박 총장과 일문일답.
―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은 어떤가.
우선 취업률에 대해 말해야 한다. 현재 우리 젊은이들은 심각한 취업난을 겪고 있다. 하지만 기업에서는 끊임없이 인재를 필요로 하고 있다. 우수한 젊은이들이 인력 미스매치로 극심한 실업난을 겪고 있다고 본다. 소프트웨어 전문가가 필요하지만 국내 인력풀이 좁아 기업들이 외국에서 인재를 찾고 있다. 이 모든 문제는 19세기 산업화 패러다임에 갇힌 국내 대학교육의 한계에서 비롯한다. 공학 인력이 많이 필요해도 국내 대학의 학과 정원제로는 사회수요에 맞는 인력을 배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 학과 정원제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은 학과를 정해놓고 대학에 입학하지 않는다. 우선 대학에 가서 기초 과학과 교양을 배운다. 기초 교양 과목을 이수한 뒤에야 자신이 원하는 전공을 선택한다. 전공 선택에는 제약이 없다. 대학은 학생이 원하는 것을 가르칠 의무가 있다. 교수가 학생 정원을 이유로 전공 선택을 제한해선 안 된다. 현재 학과 시스템은 19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 전공체계도 19세기 산물이다. 우리는 21세기에 살지만 전통적인 가치에 매달리는 사람이 너무 많고, 어느덧 그게 기득권이 되어 버렸다. ICT(정보통신) 기반 사회에서는 당연히 ICT 관련 전공자에 대한 ‘니즈’가 높다. 이미 스탠포드 소속 대학생의 45%가 전공과 상관없이 ICT 관련 학문을 배우고 있다.
― 사회 수요에 따라 전공을 바꿀 수 있게 학과 정원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뜻인가.
현재 대졸자 취업률이 비정규직을 포함해 50%다. 대학 마친 후 나머지 절반은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산업예비군이 된다. 일본은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했는데도 현재 취업률이 90%에 육박한다. 대학 갓 졸업한 젊은이가 자신의 미래를 그릴 수 없는 사회는 비참하다.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 무한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현재 대학가에서 진행 중인 학제개편은 조삼모사에 불과하다. 근본적인 교육 개혁 없이는 안 된다. 대선 당시 각 후보들이 내놓은 정책을 보면 학생보다 교수를 위한 정책이 많더라. 경제는 점점 어려워지고, 일자리는 사라질 것인데 앞으로 대학은 사회 적재적소에 인재를 공급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한편 국가적인 부를 창출해야 한다.
박승철 총장은 학생 개개인의 특성을 살리는 맞춤형 교육을 주장한다. 박정훈 기자
진정한 혁신은 기득권을 파괴하는 데서 나온다. 학생들이 원하는 전공, 학문을 연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잘못됐다. 학생은 희망하는 전공에 따라 자신이 배울 수 있고 교육 여건이 잘 돼 있는 곳으로 진학하길 바란다. 특정 학교 배지를 달기 위해 원치 않는 전공을 선택하는 것은 옛날 방식이다. 정말 학생을 위한 대학이라면 취업률 50%의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취업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학생이 배우고 싶은 것을 못 배우게 하는 대학 내 기득권의 문제다. 일례로 사회는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을 필요로 하는데 대학 내에서 관련 학과 정원을 늘리려면 다른 학과 정원을 뺏어야 한다. 어떤 교수가 이에 동의하겠나. 나는 더 많은 사람이 인문학을 배워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더 많은 학생이 인문학을 전공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그렇다면 앞으로 교육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기존 교육은 일정 수준의 교양을 갖춘 인력을 ‘대량 생산’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 교육은 달라야 한다. 이전 제조업 중심 사회에서는 인간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았지만 앞으로 사회는 기계가 인간 노동력을 대체한다. 때문에 학생 개개인의 특성을 살리는 맞춤형 교육을 해야 한다. 강의 방식부터 오프라인 중심에서 벗어나 온라인을 적절히 활용하면 좋겠다. 온라인을 통해 지식을 사전 전달하고, 오프라인에선 토론에 집중하는 식이다. 학생과 학생 간, 교수와 학생 간 활발한 상호작용이 이뤄져야 한다. 온라인 강의 제공 플랫폼인 코세라 같은 곳에선 이미 강사와 학생 간 상호작용이 극대화된 형태의 수업법을 제공한다. 실리콘밸리에 진출하는 인력 가운데 코세라 출신이 많다. 전 세계적으로 제도권에서 벗어난 기업형 교육기관의 영향력이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우리나라도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빅데이터나 인공지능과 같은 스쿨을 열면 기존 대학보다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 보아오포럼에서도 교육 개혁과 관련한 리더들의 공감대가 있던 것으로 안다.
교육 경쟁력이 우리만 떨어지는 게 아니다. 선진국에서도 교육 개혁에 대한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인재 육성이 화두다. 중국 바이두 회장은 이미 인공지능의 발전 가능성을 주목하고, 실리콘밸리에 연구소를 만들었다. 이 실리콘밸리에 인재를 공급하는 곳이 바로 대학이다. 중국 칭화대 총장은 “중국은 그간의 산업혁명에서 후발주자였지만 이제는 ‘퍼스트 무버’가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그 원동력은 교육열에서 나온다. 포럼에 가보니 이스라엘 공과대학 총장이 나와 스타트업 강의를 하더라. 중국이 이스라엘의 ‘벤처 DNA’를 이식받으려는 것으로 보였다. 교육 선진국의 모델을 적극적으로 수입하고, 능동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테드 같은 온라인 강의 플랫폼도 성공 못할 것이란 얘기가 있었지만 결국은 성공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