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등에 업고 강경파 ‘으쓱 으쓱’
▲ 지난달 11일 18대 국회 개원식에 참석한 박근혜 의원이 동료의원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당 요직에 배치된 이재오계 의원들. 왼쪽 아래부터 안경률, 공성진, 차명진.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MB는 나아가 7월 초 청와대 비서진과 개각 등에 있어서도 한나라당의 건의를 적극 수용하는 태도를 취해 적어도 외형상으론 ‘당 주도’를 존중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 무렵 홍준표 원내대표가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인사 문제에 관여하는 듯한 발언을 서슴지 않아도 이를 탓하기는커녕 그의 주장을 상당 부분 받아들일 정도였다.
그러나 MB의 태도는 7월 하순 이후 백팔십도 달라졌다. 여권 인사들은 MB가 여름휴가 기간(7월 26~30일)을 전후해 정국에 관한 생각을 정리한 것이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그리고 MB가 내린 결론은 “여당을 지금처럼 뒀다가는 원활한 당·정·청 관계와 정국 주도권 장악은 요원하다”는 것이었다 한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금강산 관광객이 피격을 당해 사망한 일로 나라가 떠들썩한데 당 대표라는 사람은 뜬금없이 대북 특사를 파견하자고 해서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야당을 상대로 제대로 힘도 못 쓰는 원내대표가 청와대와 당을 싸잡아 비난하는 행태를 보며 참고 참았던 당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일례로 청와대가 ‘쇠고기 파동’의 단초를 제공한 MBC
‘MB의 분노’가 한나라당에 미친 파장은 엄청났다.MB가 박희태 대표의 대북 특사 파견 제안과 홍 원내대표의 ‘외교라인 문책 필요’ 주장에 직접 반박을 한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기류 변화를 감지 못한 홍 원내대표가 지난달 31일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와 3개 부처 장관 인사청문특위 구성 등의 내용을 담은 원 구성 합의안에 ‘덜컥’ 합의했다가 청와대의 거부로 협상이 결렬되자 대야 유화 분위기는 결정적으로 사그라졌다.
사태 직후만 해도 당내에선 “여야 합의를 청와대가 이렇게 깨버리면서 정국을 어떻게 풀겠다는 것이냐”는 등의 반발이 일부 있었지만 금세 ‘강경론’이 대세를 이뤘다. 특히 MB가 야당의 강력 반발에도 불구하고 3개 부처 장관의 임명을 강행해 향후 정국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중을 분명히 드러내자 당내 세력관계도 이 같은 기류에 맞게 변화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당내 역학구도의 변동은 MB계 내에서부터 일어나기 시작했다. 당장 ‘비둘기파’의 상징인 박 대표와 ‘신(新) 실세’ ‘역대 최강의 여당 원내사령탑’이란 평가를 받았던 홍 원내대표 등 ‘투 톱’의 위상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반면 당 전반에 ‘전투 모드’가 조성되면서 이재오 전 최고위원 계열 인사들의 행보는 활발해지고 있다. 이재오계는 지난 당직개편에서 좌장 격인 안경률 의원이 사무총장을 맡은 것을 비롯해 △정의화 인재영입위원장 △차명진 대변인 △임해규 대외협력위원장 등을 배출한 바 있다.공성진 최고위원까지 합치면 당 요소요소에 이재오계가 포진하게 된 셈이다.
이들은 최근 눈에 띄게 ‘MB 코드’를 대변하는 모습을 보여 관심을 모으고 있다. 가령 공 최고위원의 경우 MB가 문책·경질한 김중수 전 청와대 경제수석, 최중경 전 기획재정부 1차관을 OECD 대사와 아시아 주요국 공관장으로 최근 내정한 것을 두고 ‘회전문 인사’,‘보은 인사’라는 비판이 비등함에도 MB의 결정을 공개적으로 옹호하고 나섰다.
그는 한 라디오 방송에 나와 두 사람에 대해 “(정부가) 서민경제 중심의 정책으로 선회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희생양이 된 측면이 있다. 이것이 대사로 갈 수 없는 이유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차명진 대변인도 공 최고위원 못지않다. 그 역시 라디오 방송을 통해 MB 사촌처형 김옥희 씨의 공천 수뢰 사건과 관련해 의혹이 확산되고 있음에도 “김윤옥 여사와 관련해 드러난 혐의도, 의혹도 없다. 단지 친인척이라는 이유로 수사해야 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여 “당 대변인이 아니라 MB 대변인 같다”는 비아냥을 샀다. 그는 또 청와대가 ‘법과 원칙’을 강조하자 “색깔론을 부추긴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촛불시위 참여세력을 ‘좌파’ ‘무법폭도’라 지칭하는가 하면 경찰에 대해선 “공권력의 부활을 기대한다”며 강경진압을 주문하는 듯한 당부를 해 구설에 올랐다.
당내에선 이들의 행보를 이재오계가 지난 7월 15일 현역 의원 48명이 참여한 가운데 ‘함께 내일로’라는 모임을 결성한 것의 연장선상에서 해석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MB의 ‘친위세력’을 자임하는 이들이 조직적 기반을 정비한 데 이어 당내 현안 논의에서도 ‘MB 코드’를 앞세워 주도권 장악에 나선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재오계가 같은 MB계지만 원로·중진그룹의 지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박 대표와 홍 원내대표가 흔들리고 있는 국면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비주류인 박근혜계는 MB계 내의 이러한 역학구도 변화를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할 수 없는 입장이다. 당직개편에서 이재오계의 전진배치에 촉각을 곤두세웠던 박근혜계다. 그런 마당에 복당 문제 해결과정에서 신뢰관계를 형성했던 박 대표와 홍 원내대표가 주춤거리고 대신 이재오계의 영향력이 커질 경우 부정적 파장이 자신들에게 미치리라는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계의 한 핵심 중진은 “정국 주도권 장악을 통해 개혁정책을 완수하겠다는 MB의 생각은 그 자체로는 문제될 것이 없다”면서 “문제는 어떤 경로를 거쳐,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다. 만약 지난 총선 공천 파동처럼 개혁을 빙자해 또 다시 일부 친위세력에 의탁해 당내 비주류, 야당을 몰아붙이려 한다면 파국이 불가피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 중진은 ‘최근 MB의 행태와 당내 기류에서 그런 분위기가 느껴지느냐’는 물음에 “솔직히 그런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 지난해 당내 대선후보 경선 이후 줄곧 틈만 나면 ‘박근혜 죽이기’에 앞장섰던 인사들의 발언권이 커지고 있는데 왜 안 그렇겠느냐. 무엇보다 여권 핵심부에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영향력이 다시 커지는 것 같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