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인명사전’ 인사 14명 남아…‘국감도피’ 김성주 ‘충성맹세’ 곽성문 등 좌불안석
공공기관 경영정보 정보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정부 각 부처 산하 332개 공공기관 가운데 임기가 1년 이상 남은 기관장은 218명으로 전체의 65.7%를 차지한다. 임기가 1년이 남지 않은 기관장은 8명, 임기가 종료됐으나 새로운 기관장을 선임하지 않아 직을 유지하는 경우가 18명, 공석 상태는 8곳이다.
박근혜 정부의 공공기관장 보은·낙하산 인사에 대한 논란은 지난 2014년 3월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공기관 박피아 친박인명사전’을 발행하며 불거졌다. 민 의원은 당시 인명사전을 내며 “박근혜 정부의 출범 1년에 즈음한 공공기관 친박 인사의 현주소는 노골적이고 전면적이라는 점에서 과거 정권보다 그 정도가 심하다. 박 대통령은 후보·당선인 시절 낙하산 인사를 근절하겠다고 밝혔으나 다른 대부분의 공약이 폐기 수정되듯 친박 인사들이 공공기관을 점령해 이들의 전리품이 됐다”고 비판했다.
민 의원은 당시 인명사전을 통해 새누리당 출신 정치권 인사와 박근혜 후보 대선캠프 출신 인사, 대통령 인수위원회 출신 인사, 친박 외곽 지지단체 출신 인사,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고위직 출신 인사 등 84개 공공기관의 114명 인사(기관장 45명)를 ‘공공기관 친박 인사’로 분류했다. 또한 이후 6개월이 지난 같은 해 9월 “현재도 친박 인사, 이른바 박피아의 공기업 잔치가 계속되고 있다”며 ‘공공기관 친박인명사전 2집(개정/증보판)’을 발간하고 94명의 공공기관 임원(기관장 15명)을 추가로 발표했다.
<일요신문> 확인 결과 당시 친박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랐던 공공기관장 가운데 여전히 직을 유지하고 있는 인사는 곽성문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사장과 김성주 대한적십자사 총재, 김병호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 김옥이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이사장 등 총 14명으로 집계됐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와 김성주 선대위원장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 연합뉴스
이 가운데 곽성문 사장과 김성주 총재의 경우 각각 지난 2007년 한나라당 경선과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 활약하며 박 전 대통령을 도왔던 것으로 유명하다.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박 전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던 김성주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적십자사 업무와 관련성이 전혀 없는 기업인 출신으로 선출 당시부터 보은·낙하산 인사 논란에 휘말렸다.
당시 야당은 “보은 인사, 낙하산 인사의 끝판왕이자 화룡점정”이라며 “총재가 어떤 자리라는 것을 안다면 스스로 고사하는 것이 사리에 맞다”고 비판했다. 김 총재는 선출 직후인 2014년 10월 1일 지난 5년간 적십자 회비를 단 한 번도 내지 않았던 사실이 밝혀져 뒤늦게 특별 회비 100만 원을 냈으며, 취임 후 첫 국정감사를 앞두고 중국으로 출국해 ‘도피성 출장’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더불어 지난해 10월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 국정감사에서는 ‘부실 운영’을 지적받기도 했다. 김광수 국민의당 의원은 대한적십자사에서 제출받은 ‘적십자회비 모금 관련 현황’ 자료를 공개하며 2015년 적십자 회비 모금액은 479억 원으로 목표 금액 518억 대비 달성률 92.6%에 그쳐 2009년 이후 처음으로 100%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한 김 총재 취임 이후 대한적십자사는 보건복지부가 시행하는 경영평가에서 2015년 69.364점을 받아 전년 대비 10점 이상 낮은 점수를 받으며 “패션계 ‘마이더스의 손’으로 불렸지만 적십자사 운영에 있어서는 ‘마이너스의 손’ 아니냐”는 야당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곽성문 사장은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 경선 캠프 홍보위원장으로 일하며 ‘이명박 저격수’로 활약했다. 그가 사장으로 확정되자 코바코 노조는 ‘새누리당 전당대회 당시 김무성 원내대표를 지원하며 코바코 사장에 내정됐다’고 반발하고 나섰으며, 의원 시절인 2005년 물의를 일으켰던 ‘골프장 맥주병 투척 사건’에 대해서는 도덕성 문제를 제기했다.
또한 곽 사장은 2014년 10월 열린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공모 당시 작성한 자기소개서가 공개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는 사장공모 지원서에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맹세를 담아 공영방송의 중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곽 사장은 지원서에 “육영수 여사 서거 20주년 큰 영애(박 전 대통령)와의 특별 인터뷰를 계기로 인연을 맺게 됐는데 이 같은 오랜 개인적 인연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박근혜 대표의 측근이 됐고, ‘친박 그룹’의 일원으로 의정활동 4년 내내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다”며 “공직을 맡게 된다면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한 작은 노력이라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에 야당은 “지상파 방송의 생명줄을 쥔 방송광고, 방송의 재원 공급을 맡은 분께서 ‘친박 정권’의 성공을 위해 온몸을 불사르겠다는 자세를 가져서는 공영방송의 중립성을 이룰 수 없다”며 “사장 공모지원서인지 새누리당 국회의원 공청신청서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곽성문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장. 연합뉴스.
박 전 대통령은 곽 사장과 김 총재 이외에도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 활동한 위원장급 인사 대부분에 보은 인사를 단행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찬우 한국거래소 이사장, 김학송 한국도로공사 사장, 함승희 강원랜드 사장, 기영화 국가평생교육진흥원장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가운데 대다수는 취임 전부터 낙하산 인사 논란에 휘말렸으며, 취임 이후에도 각종 구설에 휘말려 정권 교체와 함께 남은 임기를 채우지 못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정작 기관에서는 여전히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다. 공공기관장 인선에 대해 이렇다 할 구체적 윤곽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박’ 인사가 기관장으로 있는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우리 기관장의 임기는 올해 중반까지다. 박근혜 정권에서 임명됐고, 대표적 친박 인사로 꼽히기 때문에 매체를 통해 교체 대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접했다. 그러나 기관장 개인은 어떨지 몰라도 회사 내부 분위기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아무래도 문 대통령이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정확한 윤곽이 나오지 않은 상태다. 여러 현안 가운데 공공기관장 인선은 뒤로 밀려있어 그런 것이라 추측도 있다. 또한 문 대통령이 ‘대탕평’ ‘대통합’을 내세운 만큼 아직은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지금의 고요함이 ‘태풍전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정권이 교체되었어도 공공기관장의 임기가 지켜질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새 정부는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시스템에 의해 능력에 따른 대탕평 인사를 실천할 것이며 전임 정권에서 임명된 분들도 같은 인사 원칙과 기준에 따라 검증할 것이다. 다만, 탄핵당한 정권이 졸속으로 추진한 ‘알박기 인사‘, 국정농단 세력에 의해 불공정하게 진행된 ‘최순실 인사’에 대해서는 철저히 검증해서 바로 잡겠다”고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이에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실장은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바뀌었을 때 대폭 임기를 중단시키고 기관장이 교체된 적도 있었다. 현재 문제가 있는 인사들이 있으나, 이를 강제적으로 임기 중단시키고 물갈이하는 것은 분명히 부작용이나 문제가 있을 것이다. 주어진 절차대로 인선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향후 임기가 만료된 자리에 대해 제대로 새로운 기관장을 인선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4월까지 황교안 권한대행 체제 아래 정권이 새로 들어서기 직전임에도 불구하고 주요 공공기관장이나 상임감사가 박근혜 정권과 다르지 않게 임명되며 관피아라 불리는 주무부처 관료들이 많이 내려왔다. 이를 막기 위해 정부에서 낙하산 인사 관련한 방침을 공표하는 것이 필요하다. 위에서 방침을 내리면 공공기관 운영위원회, 기관별 임원 추천위원회 등 하부에서 이를 감안해 제대로 된 인사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당장 임원 인사에 투명성을 가질 수 있도록 정보공개 강화가 필요하다. 과정이나 절차가 투명하게 드러나게 된다면 문제 있는 인사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