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교체 후 게시글 삭제·탈퇴 요청 봇물…폐쇄론까지 돌아 회원들 멘붕상태
5월 10일 일베 운영진이 게시한 게시물 삭제 관련 공지글 캡처본.
하지만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었다. 저녁 8시 지상파 방송 3사가 문 대통령 당선을 예측하는 출구 조사 결과를 발표한 순간 일베 회원들은 ‘멘붕’에 빠졌다. 일베 ‘건의 게시판’엔 회원들의 탈퇴 및 글 삭제 문의 글이 1분 단위로 올라왔다. 이튿날 새벽 일베 운영진은 “이전게시판에 작성된 글은 삭제 요청시 대량 삭제가 가능하다. 이외에 일반글과 댓글은 마이페이지(pc버전)에서 본인이 삭제를 바란다”라고 이례적인 공지를 띄웠다.
일베 회원들은 그동안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롱하는 언행으로 구설에 올랐다. 일베 게시판엔 노 전 대통령 서거를 희화화하는 사진과 글이 꾸준히 게시됐다. 2016년 5월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이 터졌을 땐 한 일베 회원이 ‘일간베스트 저장소 노무현 외 일동’이라는 이름으로 근조 화환을 보냈다. 일베 내부에서 문 대통령 당선으로 자신들이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까닭이다.
몇몇 회원들은 문 대통령 임기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기도 했다. 한 회원은 “대통령 유고로 인한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대통령 임기 규정은 명확하게 정해진 바가 없다”라고 밝혔다. 다른 회원은 “문 대통령 임기는 정확하게 2018년 2월 25일까지다. 보궐선거로 당선됐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상당수 회원들은 “어쭙잖은 주장을 그만두고 현실을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문 대통령 임기가 1년이라는 게 말이 되느냐”라고 반박했다. 일부 회원들은 ‘문 대통령 임기 1년설’을 토대로 헌법소원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대통령 궐위로 인한 선거에서 당선인 임기에 관한 별도 규정은 없다. 헌법 제68조 2항은 “대통령이 궐위된 때 또는 대통령 당선인이 사망하거나 판결 기타의 사유로 그 자격을 상실한 때에는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라고 설명한다. 공직선거법 제14조 1항은 “궐위로 인한 선거에 의한 대통령의 임기는 당선이 결정된 때부터 개시된다”라는 임기 시작 기준만 명시할 뿐이다. 하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8대 대선 전 학계와 전문가 의견을 토대로 대통령 임기를 ‘5년’이라고 결론지었다.
회원들은 일베가 폐쇄되는 것은 아니냐는 주장도 내놓는다. 최근 문 대통령 관련 가짜뉴스는 일베 폐쇄 우려에 기름을 부었다. 5월 15일 SNS를 중심으로 “문 대통령, 일베와의 전쟁 선포”라는 제목의 기사가 돌았다. 기사 내용을 보면 “문 대통령은 일베 등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 의해 야기된 사회적 갈등과 차별이 심각하다고 봤다. 필요시 사이트 폐쇄명령을 내릴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기사를 작성한 기자의 이메일은 ‘ibchungbye’, 이는 ‘일베충 잘 가라’라는 뜻이다. 일베 회원들은 기사를 돌려보며 “진짜로 폐쇄하면 너무 억울하다” , “가짜뉴스라도 무섭긴 하다”라는 반응을 드러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발탁도 일베 회원들을 패닉에 빠트렸다. 조 수석은 그동안 일베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드러내온 인물이다. 조 수석은 2013년 5월 일베에 대해 “극우 반인륜적 사상을 퍼뜨리고 역사와 사실을 조작해 사회분열을 조장한다. 광고주 업무 수행에 지장을 줄 정도의 방식은 안 된다. 일베에 광고를 내고 있는 기업과 병원 등은 신속히 광고를 중단하라”며 일베 광고주 불매운동을 제안했다. 일부 일베 회원들은 “조국 임명은 일베의 대재앙이다”라며 공포에 떨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일방적인 폐쇄는 힘들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따로 우리가 정보 수집을 하진 않는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도 받을 수 있고 일베가 도박이나 음란 사이트도 아니다. 성기 노출 사진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오랫동안 폐쇄를 못 시킨 이유가 있다. 과거 독재 정권이라면 일베 하나 없애는 것은 일도 아니지만 지금은 명예훼손 게시물 처벌 등 간접적인 방식의 통제만 가능하다. 과거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베 회원들은 그동안 범죄모의, 성희롱, 지역차별 등으로 도마에 올랐다. 최근엔 일베 회원 홍 아무개 씨가 “선화예고 정문에서 마음에 드는 아이 한 명을 강제로 트렁크에 태워서 창고로 끌고 가 교복을 입힌 채 성폭행하겠다”라는 글을 올렸다가 1심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다른 회원은 공직선거법상 금지된 기표소 안에서 촬영한 투표용지를 온라인에 올려 구설에 올랐다.
그동안 일베 유해 사이트 지정 관련 주장은 꾸준히 나왔다. 신용현 국민의당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청소년 보호를 위해 일베 등 차별·비하·혐오 표현이 범람한 사이트에 대해서는 반드시 청소년 유해매체물 지정을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신용현 의원실이 방송통신심의원회에 요청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차별·비하 표현에 따른 방심위 시정요구 건수’는 2012년 149건, 2013년 622건, 2014년 705건, 2015년 891건, 2016년 1∼7월 1352건 등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차별·비하 발언으로 방통심의위 시정요구를 가장 많이 받은 사이트는 일베였다.
청소년 유해 매체물 지정 권한을 지닌 기관은 방심위다. 방심위 관계자는 “차별과 비하 관련 게시물은 일베에서 가장 심하게 유통되고 있다. 하지만 일베를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하기엔 애매한 부분이 있다. 일베 회원들의 누적 게시물은 현재 약 3000만 건이다. 적어도 이중 반 이상이 음란하거나 혐오 비하 표현이 담긴 게시물이어야 하는데 그 정도는 아니다. 게시물 단위로 시정권고조치만 하는 상황이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법률 전문가들은 “일베 유해매체물 지정은 방심위의 의지 문제다”라고 입을 모았다. 한 변호사는 “방심위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탄압이 될 수 있다는 일베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표현의 자유는 명예훼손·협박·범죄모의 영역에 대해선 제한될 수밖에 없다. 물론 전체 게시물 중 명예훼손·협박·범죄모의에 관한 게시물 비율을 검토하는 게 우선이지만 일베를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지정하는 것은 상식 문제”라고 강조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