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때려야 산다’ 이재용 따라하기
반면 검찰은 592억 원 상당의 뇌물 수수 등 18가지 혐의를 조목조목 나열하며 박 전 대통령을 압박했다. “압수수색과 분석, 사건 관련자 진술 등을 토대로 명확한 사실만 추려 기소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박 전 대통령과 최 씨의 공모 부분에 대해서도 대법원 판례를 예로 들며 유죄 입증을 자신했다.
상대적으로 언론의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이날 재판에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피고인 신분으로 출석했다. 신 회장은 잠실 롯데월드타워 면세점 재허가 등과 관련한 청탁의 대가로 최 씨가 운영하는 K스포츠재단에 70억 원을 지원한 혐의(뇌물 공여)를 받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첫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검찰에 따르면 신 회장은 2015년 11월~2016년 3월 잠실 면세점이 특허 심사에서 탈락하자 직원을 동원한 반대 시위와 언론 기사 등을 통해 특허권 회복을 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2016년 3월 11일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을 만나 ‘시내면세점 제도개선 건의’ 등 경영 애로사항을 전달했다. 사흘 뒤인 3월 14일에는 박 전 대통령과 단독 면담을 했다. 여기까진 박 전 대통령과 신 회장 모두 사실 관계를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 독대에서 어떤 말이 오갔는지는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과 신 회장은 각각 독대에서 면세점 현안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면담 직전 받은 ‘대통령 말씀자료’를 근거로 이들이 면세점 현안과 관련한 ‘청탁’을 주고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대통령 말씀자료에는 롯데가 안 전 수석에게 전달한 ‘시내면세점 제도개선 건의’ 내용이 담겨 있다. 앞서 박 전 대통령은 다른 재벌 총수와 독대 과정에서 말씀자료에 적힌 기업 현안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이를 토대로 3월 14일 독대에서도 마찬가지로 면세점과 관련한 대화가 오간 것으로 검찰은 추정하고 있다.
검찰 조사 결과를 보면 박 전 대통령은 신 회장과 면담을 앞두고 최 씨와 차명폰으로 수차례 통화했다. 또 최 씨의 운전기사는 이영선 전 청와대 행정관과 만나 K스포츠재단과 관련한 서류를 주고받았다. 이 서류에는 정현식 K스포츠재단 사무총장의 명함이 들어 있는데 3월 14일 정 총장은 최 씨로부터 “롯데에서 연락이 갈 테니 기다리라”는 언질을 받는다.
실제 정 총장은 면담 성사 당일 이석환 롯데그룹 정책본부 상무(현 경영혁신실 전무)와 통화했다. 그러나 신 회장은 ‘박 전 대통령에게 K스포츠재단과 관련한 서류를 직접 전달받지 않았고, 자금 지원은 당시 ’2인자‘였던 고 이인원 부회장이 챙겼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부회장은 2015년 7월께 청와대의 요청을 받고 대통령과 독대하려다 박 전 대통령이 “왜 (회장이 아닌) 부회장이 왔느냐. 돌려보내라”고 지시해 사실상 문전박대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는 생전 이 부회장이 신 회장을 대신해 그룹의 ‘대소사’를 챙겨왔다고 주장한다. 검찰 관계자는 “롯데가 이 부회장에게 책임을 씌우려는 인상이 짙다”고 했다.
롯데 측의 설명에 따르면 청와대로부터 자금 지원 요구를 받은 롯데는 내부적으로 ‘70억 원은 너무 과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35억 원 정도만 지원하는 안에 대해 K스포츠재단과 협상을 진행했다. 롯데 관계자는 “만약 뇌물이었다면 면세점 재승인으로 얻는 이득이 훨씬 큰데 왜 정해진 금액을 깎으려 했겠느냐”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5월 23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592억 원대 뇌물 수수 혐의 등에 대한 첫 정식재판에 참석해 자리하고 있다.사진 공동취재단.
신 회장에 대한 1심 선고는 박 전 대통령의 구속 만료시한인 오는 10월 전에 내려질 전망이다. 신 회장은 판사 출신인 백창훈 김앤장 변호사를 선임해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백 변호사는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조석래 효성 회장 등을 변호한 ‘회장님 전문 변호사’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돈을 보낸 내역이 있기 때문에 검찰의 논리를 반박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지만 강요에 의한 지원을 입증하면 그만큼 양형에 유리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백 변호사는 첫 재판에서 검찰의 모든 공소 사실을 부인했다.
신 회장은 지난 3월부터 롯데그룹 경영 비리 사건과 관련해 횡령 등 혐의로 주 1~2회 재판에 참석하고 있다. 지난 17일 기준 모두 11차례 공판이 열렸으며, 이르면 10월 내 1심 선고가 내려질 예정이다. 그간 대기업 오너가 피고인 재판은 검찰 기소부터 1년 안팎에 1심 선고가 이뤄졌다. 두 재판 가운데 하나라도 실형이 선고되면 롯데는 삼성처럼 장기간 경영공백이 불가피하다.
지금껏 신동빈 체제를 지지해 온 일본 종업원지주회가 변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앞서 롯데는 롯데그룹 경영 비리 수사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주도한 ‘무리한 하명 수사‘라는 입장을 전한 바 있다. 두 재판에서 모두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신 회장이 박 전 대통령의 강요와 하명을 입증해 위기에서 벗어날지 관심이 모아진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