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주 시가총액 5000억 상승…한국 가수·배우 활동 재개
중국 내 한류가 활성화되며 중국 사업에 ‘올인’하던 한류 콘텐츠 에이전트 A 씨는 요즘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빅뱅을 모델로 내세운 농푸산취안(農夫山泉) 음료 광고가 중국 내 인터넷을 통해 공개됐기 때문이다. 아시아 시장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K-팝 스타인 빅뱅이 중국 상업 광고에 다시금 얼굴을 내밀었다는 것은 상징적인 신호로 읽힌다. 지난해 중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로 인한 ‘한한령(限韓令·한류 수입 제한령)’으로 꽉 틀어 막혔던 한류 콘텐츠 판로가 최근 다시 뚫린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이후 약 석 달 간 국내 주요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의 시가총액도 크게 늘었다. SM의 경우 주가가 2만 2000원에서 2만 8000원으로 약 30% 상승했고, YG도 2만 4000원에서 3만 6000원으로 40% 가까이 올랐다. JYP와 FNC 등도 일제히 상승해 시가총액 합만 5000억 원 넘게 늘었다.
# 곳곳에서 드러나는 해빙 무드
빅뱅뿐만 아니다. 중국의 대표적 음원사이트 QQ뮤직 차트에는 최근 월드스타 싸이가 발표한 신곡 ‘팩트폭행’이 차트에 진입했다. 한동안 QQ뮤직 차트에서는 K-팝 가수들의 노래를 찾아볼 수 없었다. 중국 측이 의도적으로 이를 배제한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렸다.
송중기, 김수현 등을 광고 모델로 쓰고 있는 중국 화장품 업체들의 홈페이지를 찾아가면 두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이 업체들은 한한령이 지속되던 상황 속에서도 한류스타들의 사진을 내린 적이 없다.
빅뱅을 모델로 내세운 농푸산취안 음료 광고.
A 씨는 “이미 광고 모델료를 지급한 업체 입장에서는 광고 효과가 높은 한류 스타의 사진을 삭제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며 “한한령의 수위가 낮아지면서 또 다른 한류 스타들을 모델로 기용하려는 업체들의 조심스러운 문의가 오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 배우들이 출연한 중국 드라마가 현지에서 방송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배우 이종석이 주연을 맡은 드라마 <비취연인>을 비롯해 한채영이 출연한 <중이전> 역시 하반기에 방송될 것이란 풍문이 심심치 않게 돈다. 이런 작품은 이미 촬영까지 모두 마치고 편성 채널까지 정해졌기 때문에 한한령 해제가 본격화되면 언제든 대중과 만날 채비를 갖췄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종방된 배우 최진혁 주연 드라마 <터널>의 경우 중국의 대표 SNS인 웨이보 조회수가 800만 건에 육박했다. 중국에 정식으로 수출된 적이 없지만 이미 드라마 <상속자들> <운명처럼 널 사랑해> <구가의 서> 등이 중국어권에 소개된 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최진혁을 향한 중국민들의 관심이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결국 중국도 한류 콘텐츠에 목말라 있다는 증거다.
# 한한령 완전 해제 시점은 언제일까?
대다수 한류 콘텐츠 공급자들의 공통된 궁금증은 한한령이 해제되는 ‘시점’이다. 해빙 무드는 충분히 조성됐으나 아직 확실한 물꼬는 트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전문가들은 “그런 신호는 없을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놓는다. 그 이유로는 “한한령 자체가 중국의 공식 입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은 한번도 한한령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이 없다. 분명 중국 정부의 공식 지침은 없었다. 중국의 여러 소식통을 통해 정부가 각 업체들에 한류 콘텐츠 수입을 자제하라는 구두 경고 정도만 줬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어느 순간 중국에 유통되던 한류 콘텐츠는 자취를 감췄고, 한류스타들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만약 중국이 한한령 해제를 공식 선언한다면 스스로 한한령 조치를 취했다고 인정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에 그런 신호는 없을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게다가 사드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숙제다.
대한민국이 탄핵 정국에 돌입했을 때는 중국이 대화를 나눌 공식 창구가 없었다. 하지만 5월 초 ‘장미대선’을 통해 새 정부가 출범하자 중국은 곧바로 대화를 재개했다. 이와 동시에 중국의 압박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사드 문제로 다시금 양국이 대립한다면 한한령의 해제 역시 늦춰질 수밖에 없다.
중국 웨이보 조회수가 800만 건에 육박한 드라마 ‘터널’. 사진출처=드라마 ‘터널’ 공식 홈페이지
결국 한한령은 민간 차원에서 먼저 풀리기 시작할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빅뱅이 다시 광고 모델로 등장했듯 K-팝 스타들의 공연이 잡히고, 한국 드라마가 다시 수출되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한한령은 마침표를 찍게 될 것이란 예상이다.
# 예전 같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마냥 핑크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한령이 해제돼도 예전 같은 호황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많다.
중국 내 한류는 지난 2013년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로 촉발된 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회당 2만~3만 달러에 수출되던 한국 드라마의 몸값은 불과 3년 사이 <보보경심 려-달의 연인>이 회당 40만 달러에 팔릴 정도로 크게 상승했다.
하지만 공산주의 사회인 중국은 “한국이 중국에서 돈을 벌어간다”는 것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 내 활동은 하지 않고 광고 출연 등을 통해 손쉽게 돈을 버는 한류스타들에 대한 반감도 커졌다.
한한령 이전에도 중국은 각 방송사마다 한국을 비롯한 외국 콘텐츠 수입량을 조절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사전 심의를 받으라고 하는 등 규제를 강화했다.
또 다른 중국에 정통한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한한령을 통해 한국은 중국 시장의 절실함을 느꼈고, 중국 역시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 길들이기에 성공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향후 양국의 교역이 재개되더라도 중국의 검열이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