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후 태도 바꾼 ‘갑’…대금 미지급·계약 불이행에도 계약 파기는 ‘을’ 탓
A 업체가 지난해 8월부터 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한 건물 외관 모습.
김 씨는 “일방적인 계약 파기로 공제조합으로부터 보증업무가 중단돼 공사가 들어와도 계약을 못한다”며 “악질적인 원사업체를 잘못 만나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태”라고 말했다. 이 같은 이유로 지난달 A 업체는 B 업체를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했다.
그렇다면 두 업체 사이엔 어떤 일이 있던 것일까. 사건은 약 10개월 전인 지난해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A 업체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업체는 지난해 8월 1일 B 업체로부터 사우디아라비아 알라지뱅크의 전기 인테리어 공사를 계약했다. 계약 전 B 업체의 파견 요구에 따라 계약하기 2개월 전인 6월부터 사우디 현장에 소장과 공무 등을 파송하고 8월엔 기능공 8명을 파송, 선급금 및 계약 이행 보증서도 제출했다.
하지만 계약 후 B 업체의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먼저 B 업체는 발주처인 알라지뱅크로부터 15%의 선급금을 받고 계약 이행 보증서 제출 이후 30일 이내에 선급금 10%를 준다고 약속했지만 A 업체는 이 같은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건설공사 표준하도급계약서에 따르면, 선급금의 10%를 선급금 이행 증권 제출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기성금 지급 지연도 계속됐다. A 업체에 따르면, 당초 10월부터 지급하기도 돼 있던 기성금이 지연되자 A 업체는 수차례 기성금 지급을 요청했다. 그러자 B 업체는 11월 사우디 현지 자재 수급처에 직불형태로 자재비 및 인건비 등만 지급해 A 업체는 겨우 공사를 이어갔다. 하도급계약서에 따르면, 기성금 지급은 발주처로부터 수령 후 하도급 업체에 지급하는 back to back 방식으로 수령 후 21일 이내에 지급하기로 돼 있다.
지난 2월 인건비를 받지 못한 현지 직원들의 파업 모습.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기성금 지급이 지연되자 현지 직원들의 파업이 있는 등 문제가 심상치 않자 올해 1월 B 업체는 미지급된 16억여 원의 기성금 중 2억 원만 지급했다고 A 업체 측은 전했다.
이런 가운데 B 업체는 지난 3월 자재 부적합, 현장공사 절차 관리, 공정률 지연, 현장 작업자 파업 등을 이유로 계약 타절(해지) 공문을 보냈다. 아울러 B 업체는 A 업체의 계약이행 불이행에 따른 보험금 7억여 원을 전기공사공제조합에 청구했다. 이에 따라 A 업체는 급작스런 계약 파기로 해외는 물론 국내 전기공사공제조합으로부터의 보증 업무가 중단돼 공사가 들어와도 계약을 못하는 상태에 놓였다.
김 씨는 “계약서에도 나와 있듯 자재승인이나 관리감독은 갑이 진행해야하는 사항이고, 현장 파업은 갑이 인건비를 주지 않아 전체 현장에서 파업한 것”이라며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우리의 책임으로 몰고가 너무 억울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건설 사업은 주로 ‘발주자-원도급자(종합건설업체)-하도급자(전문건설업체)-2차 협력자(자재·장비업체 및 현장근로자)’로 이어지는 생산 구조를 갖추고 있다. 발주사가 한 곳의 종합건설사에 공사를 맡기면 해당 종합건설사가 각 공종별로 각각의 여러 전문건설사에 하청을 주는 방식이다. 전문건설사는 역할에 따라 자재 구매, 건설 기계 임대, 현장 근로자 고용 등을 통해 공사를 진행한다.
이 같은 구조 속에 ‘갑을’ 관계가 형성된다. 특히 원도급자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규모가 작은 하도급 업체에 공사대금을 미지급하거나 처음 계약에 없던 작업을 지시하는 등 불공정 행위가 발생한다. 1일 공정거래위원회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의결·재결 및 심사관 경고서 분석을 통해 공정위가 지난해 건설업 불공정 하도급 행위를 적발·조치한 내용을 살펴본 결과, 건설업의 불공정 하도급 행위 건수는 총 142건에 달했다.
한편, 원도급자인 B 업체는 A 업체 측이 주장한 ‘갑질’ 의혹에 대해 말을 아꼈다. B 업체 관계자는 “당시 사우디아라비아 공사건을 담당하던 직원들이 현재는 모두 퇴사한 상태”라며 “관련된 사항에 대해선 특별히 드릴 이야기가 없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