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아마추어리즘’ 논란에 부처 정책 혼선…갈등 조정자 부재 지적도
문 대통령은 야권의 이낙연 국무총리 인준안 반대도 높은 국민적 지지도를 고리로 정면돌파를 택했다. 트럼프식 행정명령인 ‘업무지시’를 통해 검찰과 재벌 개혁 등에도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쯤 되면 ‘문재인의 원맨쇼’다. 동시에 이는 문 대통령의 딜레마다. 출범 한 달(6월 10일)을 앞두고 ‘문재인 딜레마’는 한층 뚜렷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 31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총리 임명장 수여식에서 이낙연 총리에게 임명장을 수여 하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작은 파격만 있고 큰 그림이 없다.” 문재인 정부를 평가한 박주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말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고민 지점이다. 문 대통령 광폭 행보로 전 국민의 스포트라이트는 청와대로 집중됐다. 문제는 조직의 유기성이다. 조직 곳곳에서 위기 징후가 포착된다. 대통령 혼자 국정을 이끄는 시대는 끝났다. 각 조직이 선택과 집중을 통해 대통령 국정과제를 뒷받침해야 한다. 때로는 속도 조절을 통한 시간 벌기, 또 때로는 시간차 공격이나, 기습 작전 등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진짜 실력은 위기에서 드러난다. 문 대통령의 파격 인사와 전방위 업무지시로 ‘만점 행보’를 할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던 위기 징후가 이낙연 국무총리 인준안 난항 직후 불거졌다. 가장 큰 문제는 문 대통령을 보좌하는 이들의 아마추어리즘과 충성 경쟁이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고 고의 누락 파문을 둘러싼 진실공방이 대표적이다. 문 대통령은 5월 30일 국방부의 사드 보고 고의 누락 의혹과 관련해 “충격적”이라며 민정수석실 등에 진상조사를 전격 지시했다.
정부여당 인사들은 사실관계 확인 과정에서 엇박자를 내면서 혼선을 자초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같은 날 4시 40분께 예정에도 없던 브리핑을 자처했다. 국정기획위 박광온 대변인과 이수훈 외교안보 분과위원장은 서울 통의동 국정기획위에서 “사드의 4기 추가 배치 보고가 누락됐다. 국방부는 2기가 들어와 있다고 보고했다”라며 “(위원들이) 여러 차례 물었다고 한다. 국방부가 보고를 거짓으로 할 거라고 상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앞서 5월 25일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사드 관련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는 의미였다.
청와대 설명은 달랐다. 한 관계자는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관련) 질문은 없었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논란이 일자 박 대변인은 1시간 후 다시 긴급 브리핑을 열고 “(업무보고 당시 사드의 추가 배치에 대한) 질의는 없었다”라며 “다시 확인했다”고 말했다. 국방부의 고의 누락에 방점을 찍은 셈이다.
청와대 측이 관련 논란에 대해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 없이 발설한 의혹도 제기됐다. 한 핵심 관계자는 ‘(관련 질문이) 사드 반입이냐, 배치냐’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알아보겠다”고 했다가, 그 자리에서 몇 분 뒤 “반입으로 정정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한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5월 30일 사드 고의 누락과 관련, 한민구 장관과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청와대로 불러 조사키로 했다고 밝혔다.
시점을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진행 중이라는 뉘앙스에 힘이 실렸다. 하지만 다른 핵심 관계자는 “확인해 줄 수 없다”며 “(소환 조사 등) 전부 다 알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하루 뒤인 6월 1일 청와대 관계자는 한민구·김관진에 대한 조사를 시인했다. 국방부의 고의 누락 여부와 관계없이 ‘안보 아마추어리즘’이 빚은 촌극이라는 지적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야당은 일제히 비판을 쏟아냈다. 정우택 한국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사드에 스스로 문제 제기하는 것은 자해행위”라고 말했다. 당의 한 관계자는 “이 총리를 비롯해 양파 껍질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방패 카드”라고 꼬집었다.
엇박자는 공룡 기구로 부상한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도 발발했다. 특히 정부조직개편의 칼날을 피하려는 각 부처의 충성 경쟁과 맞물려 문재인 정부의 정책 혼선은 한층 가중됐다. 국정기획위는 5월 25일 교육부 업무보고 직후 브리핑을 열고 “내년부터 어린이집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전액을 국고 부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획재정부 측은 “협의가 없었다”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새 정부 출범 이후 ‘축소설’에 시달렸던 교육부가 문 대통령을 향해 충성 약속을 한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교육부 권한의 시·도 교육청 이관 등 문 대통령의 공약은 일단 스톱됐다. 국가교육위원회 등은 오는 2019년 이후 출범할 전망이다.
갈등의 조정자 역할 부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김진표 국정기획위 위원장은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부회장이 정부 핵심 정책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비판하자, “개혁에는 고통이 따르는 법”이라며 재계 군기 잡기에 나섰다. 공직사회를 향해선 “기존 정책의 길만 바꾸는 ‘표지 갈이’가 눈에 많이 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당 한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대통령 지시에 대해 이견을 제시하는 것은 의무라고 하지 않았느냐. 이견 제시는 청와대 사람들만 대상인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의 행정학과 교수는 “완장 찬 점령군”이라며 “법적 근거도 불명확하고 구속력도 없는 국정기획위가 공직사회 길들이기에 나섰다. 공무원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일부 인선도 파열음을 내고 있다. 보수진영에 몸을 담았거나 보수적 입장을 견지한 이들이 청와대에 입성하자 일각에선 ‘왼쪽 깜빡이를 켜고 오른쪽으로 돈’ 참여정부 실패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명박 정부에서 지식경제부 제1차관을 지냈던 안현호 전 한국무역협회 부회장은 청와대 일자리 수석으로 내정됐다. 논란이 일파만파로 확산하자 청와대는 6월 1일 인사 재검증 과정에서 철회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인사 검증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이뿐만 아니다. 노조 파괴 기업 비판을 받는 갑을오토텍 사 측 변호사였던 박형철 대전고검 검사는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으로 갔다. 박 비서관은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팀 부팀장을 지냈다. 박근혜 정부 당시 법무부의 위헌 정당단체 관련 대책 태스크포스(TF)에서 일했던 이인걸 전 대전지검 검사는 반부패비서관실 행정관으로 지명됐다. 박지원 전 국민의당 대표는 문 대통령이 ‘공직자 5대 비리 배제 원칙’에 시달리자, “문재인 정부의 그랜드 디자이너가 안 보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고 충고했다.
문재인 정부 초대 총리인 이낙연 인준안은 막판 진통 끝에 통과됐지만, 향후 정국은 살얼음판이다. 야권의 한 당직자는 “이 총리 하나 얻고 (야권이)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전병헌 청와대 민정수석이 국회를 찾아 물밑 협상에 나섰지만, 되레 정국 경색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이에 따라 향후 정국은 정치적 사안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등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정부여당과의 빅딜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차재원 부산 가톨릭대학교 교수는 “과반 의결 정족수가 필요할 땐 국민의당이, 국회 선진화법에 걸리는 입법 등에선 바른정당이 키를 쥐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정국 주도권이 야당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얘기다. 해결사 찾기가 문재인 정부 국정안정의 필수조건인 셈이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