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뒤에 ‘꼭꼭’ 괘씸하지만 처벌은 글쎄…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가 지난 5월 31일 오후 인천공항에서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엄마 일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른다. 모두 엄마가 한 일이다.”
지난 5월 31일 국내로 강제 송환된 정유라 씨가 취재진 앞에서 반복적으로 언급한 말이다. 국정농단 게이트 관련 의혹은 물론, 그동안 정 씨를 둘러싸고 제기됐던 각종 의혹에 대한 질문에도 그는 “어머니가 시켜서” 또는 “어머니 혼자 한 일”이라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정 씨는 강제송환 직후 이틀 동안 진행된 검찰의 고강도 피의자 신문에서도 아는 것이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검찰이 정 씨에 대해 적용한 혐의는 업무방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 등 두 가지다. 지난해 12월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청구한 체포영장에 기재된 내용과 같다. 현재 검찰 특별수사본부장인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특검 수사팀장이었던 만큼 이번 검찰의 수사 방향도 큰 틀에서 변화는 없었다.
다만 특검은 정 씨에 대해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도 적용했으나, 검찰은 이번 구속영장에서 제외했다. 검찰은 이틀 간의 피의자 신문만으로는 앞서의 혐의에 대한 소명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해 제외했다.
그동안 법조계에선 정 씨가 구속을 피할 수 없다는 게 중론이었다. 그러나 이어질 재판에서 형사 처벌을 받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정 씨의 주장대로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국정농단 게이트 관련 의혹을 실제로 전혀 모르고 있었고, 결과적으로 특혜만 받은 것으로 밝혀지면 형사처벌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 씨는 구속 전 검찰 조사 단계에서 직접 개입은 물론, 공범으로도 엮이지 않을 만큼 범행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반면 검찰과 특검 수사, 앞서 구속 기소된 관계자들의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관계를 종합하면, 정 씨가 정말 모든 것을 몰랐다고 해석하기엔 어려움이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와 관련한 여러 의혹 가운데 그가 직접적으로 얽힌 것으로 드러난 혐의가 있어서다. 청담고 재학 시절 허위로 출석을 인정받거나 봉사활동 실적을 조작한 혐의(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이화여대 부정입학 혐의(업무방해) 등 두 가지다.
특히 이번 국정농단 게이트의 ‘단초’로 평가되는 이화여대 부정입학 의혹과 관련, 박영수 특검은 부정입학은 최 씨의 주도로 벌어졌고 이화여대 교수들이 협력한 것으로 판단했다. 수사 과정에서 정 씨는 입학 면접 당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가지고 가는 등 규정을 어긴 뒤 합격했으며, 출석일수를 채우지 않고도 학점 등에서 특혜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개입한 최순실 씨와 최경희 전 이대 총장 등이 먼저 재판에 넘겨졌고, 특검은 이 혐의에 대해 최근 최 씨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서초동의 검찰 출신 변호사는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가 끝난 것은 물론, 1심 선고까지 앞두고 있는 만큼 정 씨가 최 씨, 이화여대 교수 등과 업무방해 혐의의 공범임을 입증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무방해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에 대해 정 씨는 검찰 조사에서 “어머니가 입학 담당자 분한테 가져가도 되는지 여쭤보라고 해서 여쭤보고 가지고 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메달을 가져간 것은 사실이지만, 업무방해에 해당하는 ‘범죄’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인지하지 못해 ‘고의성’이 없었다는 얘기다.
청담고등학교 재학 중 허위로 출석과 봉사활동 실적을 인정받는 과정에서는 정 씨가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특검 수사에서 파악됐다. 사실과 다르게 작성된 봉사활동 확인서 등에 정 씨가 직접 서명하고 이를 담임교사에게 제출했다는 것. 당시 청담고는 체육 특기생의 국내 대회 출전을 연간 4회로 제한하는 교내 규정을 두고 있었지만, 서울시 교육청 감사 결과 정 씨는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지난 2014년 수업일수 193일 가운데 141일을 공결 처리 받았다. 교육청은 이 중 최소 105일에 해당하는 공문서가 허위 작성됐다고 파악했다. 정 씨는 이 혐의(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에 대해서도 이화여대 부정입학 혐의와 같은 취지로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
정 씨는 이번 구속영장 청구 단계에서는 제외됐지만, 향후 검찰의 추가 조사가 유력한 혐의인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도 받는다. 최 씨가 박 전 대통령과 공모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부터 받은 뇌물이 삼성전자 승마단 전지훈련 비용과 삼성전자의 말 구매 대금인 것처럼 가장하는 과정에서, 정 씨가 이를 도왔거나 인지하고 있었다는 게 특검의 판단이다.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은 뇌물수수, 알선수뢰와 같은 특정 유형 범행에 연루된 범죄수익을 정상적인 재산으로 둔갑시키는 행위를 추가로 처벌하도록 마련된 특별법이다. 범죄수익을 은닉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이 혐의는 최 씨는 물론, 박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까지 얽혀있어 이번 정 씨 피의자 신문에서 검찰이 가장 적극적으로 검토하기도 했다. 앞서 특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미래전략실을 통해 삼성 계열사의 이름으로 미르·K스포츠 재단에 204억 원을 제공했고, 정 씨의 승마 훈련비 명목으로 213억 원의 지원 계약을 맺은 뒤 실제로 78억 원을 최 씨 소유의 독일법인 코레스포츠에 송금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는 지난 2015년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결정되고,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삼청동 안가 독대’가 있고 난 직후 진행됐다.
특검과 검찰은 정 씨가 코레스포츠의 지분을 소유한 점 등을 토대로,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 최 씨 사이에 이뤄진 ‘거래’를 암묵적으로 인지한 것으로 판단했다. 여기에 정 씨는 78억 원의 승마 훈련비를 생활비 등으로 사용했으며, 언론보도와 검찰 수사 등을 통해 돈이 오간 사실이 드러나자, 삼성이 명마 ‘비타나V’를 ‘블라디미르’로 교체하는 등 우회·은폐 지원하는 데 일조했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정 씨는 “삼성이 지원하는 승마선수 6명 중의 1명이라고 알고 있었다. 특혜라는 인식을 하지 않았다”며 “어머니와 (박근혜) 전 대통령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도 전혀 알지 못한다”고 공모 의혹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결국 특검과 검찰이 정 씨와 최 씨 모녀의 공모 관계를 뒷받침할 근거를 얼마나 확보했는지가 혐의 소명의 관건이 될 거라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서초동의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정 씨의 ‘모르쇠’ 주장을 뒤집을 관계자 진술이나 정황 증거 여부도 중요하다”며 “대법원 판례를 보면, 공모가 주관적인 요소라는 점을 고려해 관련성이 있는 간접 사실이나 정황을 통해 이를 증명하는 것도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정유라 추가 혐의는? 뇌물죄 적용 가능성 주목 정유라 씨에게 적용될 것으로 예상되는 혐의 가운데 가장 주목 받았던 것은 뇌물죄다. 이번 검찰의 구속영장에는 뇌물죄가 적시되지 않았지만, 이후 검찰의 기소 전 보강 수사 과정에서 최순실 씨와 마찬가지로 뇌물죄가 적용될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한다. 뇌물죄는 공무원에게 적용되는 범죄지만, 이번 국정농단 게이트에서는 ‘삼성의 최 씨 일가에 대한 승마 지원=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제3자뇌물제공죄’로 규정돼 있다. 삼성이 대통령에게 뇌물을 주는 과정에서 최 씨가 공범으로 얽혀있다는 얘기다. ‘뇌물’의 규모만 총 433억 원이다. 이 가운데 정 씨와 관련된 돈은 213억 원이다. 특검 수사결과를 보면, 삼성은 정 씨의 승마 훈련비 명목으로 213억 원을 지원하기로 계약하고 실제로 78억 원을 보냈다. 전부 받지 않았더라도 약속만 됐다면 뇌물로 규정되기 때문에 정 씨 역시 200억 원대 뇌물혐의를 받을 수 있다. 정 씨가 최 씨와 함께 공범으로 적용돼 뇌물죄로 유죄 판결을 받는다면 실형이 불가피하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상 1억 원 이상의 뇌물죄에 대한 형량은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다. 집행유예는 3년 이하 징역에만 적용된다. 반면 정 씨에 대한 뇌물죄 적용은 쉽지 않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삼성이 뇌물을 제공하도록 하는 행위에 정 씨가 개입했다는 증거가 없고, 실제 돈을 수령한 것은 최 씨였기 때문이다. 또한 삼성이 최 씨에게 삼성물산 합병 건을 부탁하고, 이를 전달 받은 박 전 대통령이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의사 결정에 관련된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과 관련, 일련의 과정에서 정 씨가 구체적인 의사결정이나 연락 등을 담당하는 등 직접 개입한 뚜렷한 정황은 드러나지 않았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제3자뇌물죄는 일반 뇌물죄와 달리 공무원이 부정한 청탁을 받았다는 것까지 입증돼야만 범죄가 성립하도록 규정된다. 제3자가 뇌물을 받았더라도 공무원은 이런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제3자뇌물죄 사건에서 무죄 판결이 많이 나온다”며 “검찰이 정 씨에게 뇌물죄를 적용하려면 최 씨와 박 전 대통령, 삼성과의 관계를 정 씨가 알고 있었다는 것부터 선후 관계까지 모두 입증해야 한다. 뇌물죄 적용이 쉽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정 씨에게 재산국외도피죄가 적용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최 씨와 정 씨는 독일 도피 과정에서 여러 채의 호텔과 주택을 사들였다. 이 가운데 단독주택 한 채를 정 씨 명의로 2015년 12월 하나은행 독일법인에서 대출 받은 돈 4억 5000만 원(약 36만 유로)으로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19세에 불과했던 정 씨가 거액을 빌렸다는 사실에 대해 각종 의혹이 쏟아졌다. 대출은 외환은행(현 하나은행) 압구정지점이 강원도 평창 일대의 땅 등을 담보로 발급한 ‘보증신용장’을 통해 이뤄졌다. 보증신용장은 보통 기업들이 무역거래를 할 때 쓴다. 정 씨는 최 씨의 독일 법인 코레스포츠(비덱스포츠) 재직증명서를 제출했고, 하나은행 독일법인은 정 씨에게 두 차례에 걸쳐 4억 5000만 원을 대출을 승인했다. 이 대출을 승인한 하나은행 독일법인장은 대출 실행 얼마 뒤 임원으로 고속 승진했다. 정 씨는 이에 대해 지난 1월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 몫의 강원도 땅을 내가 인수 받고 외환은행에서 담보를 잡았고, 36만 유로를 대출받았다. 그 대출만으로 이 집을 샀다”고 주장했다. 부동산을 담보로 잡아 대출 받은 돈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해명이었다. 그러나 정 씨가 땅을 팔아 주택자금을 마련했으면 되는데 굳이 복잡한 방법으로 돈을 빌렸다는 점에서 ‘자금 세탁’ 의혹이 제기됐다. 정 씨의 재산국외도피죄 적용 여부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다. 이는 지금까지도 드러나지 않고 있는 최 씨의 은닉 재산과 자금 흐름을 파악하는 ‘변수’가 될 수도 있다. 정 씨는 강제송환 직후 기자들 앞에서 도피 자금 출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조계 일각에선 앞서의 주택 구입을 위한 대출 실행 과정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설명한 점을 볼 때, 이 주장이 거짓일 가능성도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 씨가 사실은 해외 도피 과정에서 사용한 자금 출처뿐만 아니라, 최 씨의 은닉 재산과 자금 흐름 등을 파악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앞서 박영수 특검은 최 씨의 은닉재산이 최소 200억 원이 넘을 것으로 판단했다. [문] |
‘이재용 재판’ 정유라 입에 달렸다? 정유라 씨가 245일 만에 도피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기로 한 것은 더 이상 실익이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최순실 씨 모녀의 변호인 이경재 변호사는 지난 5월 25일 “귀국은 시기의 문제였을 뿐이다”라며 “정치적 불확실성, 재판상 불확실성이 사라져 안 들어올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갑작스러운 결정이 아니라 정 씨 본인이 심사숙고한 끝에 결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에 따르면 최 씨가 정 씨 귀국에 반대했지만, 변호인들이 “드러난 부분들도, 정리된 부분들도 많기 때문이 이제는 (도피가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정 씨는 덴마크 항소심에서 송환 결정이 뒤집히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구금시설에 갇힌 채 시간을 끄는 게 의미가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정 씨는 지난 1월 1일 덴마크 올보르에서 체포된 뒤 5개월 동안 구치소에 구금돼 있었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정 씨가 한국 법원에서 재판을 받아 실형을 선고받을 경우, 검찰 기소 전 외국에서 구금됐던 기간은 복역 기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정 씨의 강제송환이 먼저 열리고 있는 국정농단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어질 정 씨의 검찰 조사는 물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박 전 대통령과 최 씨 등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할 경우,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특히 직접적인 영향이 미칠 수 있는 재판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이다. 정 씨와 최 씨 모녀가 삼성으로부터 승마지원 등 직접 뇌물을 받은 ‘당사자’로 지목된 만큼, 정 씨의 진술에 따라 특검 또는 이 부회장 측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5월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비선실세 최순실 관련 뇌물공여 등 20회 공판에 출석했다. 최준필 기자 실제로 현재 이 부회장의 재판에서 특검과 변호인단이 치열하게 공방을 주고 받고 있는 쟁점 중 하나는 ‘함부르크 프로젝트’다. 삼성은 대한승마협회와 함께 승마선수 6명을 뽑아 훈련을 지원하는 계획을 세웠을 뿐, 정 씨를 단독 지원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최 씨의 욕심과 개입으로 어느 순간 지원이 변질됐다고 주장했다. 특검 측은 정 씨 단독 지원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삼성 측이 급하게 다른 선수를 독일 전지훈련에 포함하려 했다고 맞서고 있다. 이에 대해 정 씨는 검찰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 “삼성이 지원하는 승마선수 6명 중의 1명이라고 알고 있었다. 특혜라는 인식을 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측의 주장과 같다. 이번 사건에서 이 부회장이 받고 있는 혐의는 총 5개다. 이 가운데 4개 혐의가 뇌물죄 및 특가법상 횡령 등이다. 따라서 이 부회장은 뇌물죄와 경영권 승계 특혜 의혹 둘 중 하나만 해소해도 4개 혐의를 한꺼번에 벗을 수 있다. 이 부회장 측의 전략대로 재판이 이어진다면, 기존부터 취해온 ‘강요죄 피해자 입장’을 주장할 수 있게 된다. 이어질 검찰 조사와 재판에서 정 씨의 진술이 주목 받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