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짝사랑이 MB를 망친다?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8월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서 박태환이 출전한 올림픽 수영 경기를 보며 응원하고 있다. 이 대통령 왼쪽으로 박재완 수석이, 오른쪽으로 박형준 기획관과 이동관 대변인이 보인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하지만 출범 3개월을 맞는 청와대 2기 참모진에 대해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는 무색무취의 전형적 현상유지형”이라는 비판도 쏟아져 나온다. 참모들이 이 대통령의 눈치만 너무 보면서 과감하고 신선한 국정 쇄신 전략을 도출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참모들을 서로 경쟁시켜 살아남는 쪽의 손을 들어주는 ‘이명박식 리더십’의 산물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참모들이 유기적인 협조 체제를 만드는 게 아니라 대통령의 눈에만 들기 위해 서로 치열한 견제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실수만 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시키는 일만 하는 것에 그치는 경우도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권력투쟁과 보신주의에 머물고 있다는 비판을 듣고 있는 청와대 2기 진용의 중간성적표를 따져보았다.
최근 청와대 2기 참모진이 출범 석 달을 넘기면서 초반의 호평은 온데간데없고 여권 여기저기에서 비판의 목소리들이 터져나오고 있다. 먼저 이명박 대통령 특유의 ‘경쟁을 통한 승자 우선의 리더십’ 때문에 수석들 간 유기적 협조 체제 확립보다는,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서로 치열하게 견제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 A 씨는 “수석들 간의 보이지 않는 견제의 대표적 사례가 바로 이동관 대변인과 박형준 홍보기획관 관계”라고 지적한다. 먼저 이동관 대변인은 지난 청와대 수석진 일괄 교체 때 1기 출신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뒤부터 내부적으로 입지가 강해졌다는 말이 나온다. 그는 이 대통령의 일일 메시지를 총괄하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인물이다. 현안이 터질 때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호출하는 사람이 바로 이동관 대변인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만큼 이 대통령의 신뢰가 두텁다는 것이다. 그래서 청와대 주변에서는 “청와대의 실질적인 2인자는 이동관 대변인이다”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 대변인은 지난해 중반 뒤늦게 이명박 후보 캠프에 합류했지만 빠른 상황 판단과 종합적인 분석력, 핵심을 찌르는 브리핑 능력을 바탕으로 단번에 권력 핵심으로 진입했다. 일부에서는 특정 언론사와의 인연으로 회사 차원에서 밀어준 것도 큰 몫을 했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이 대변인의 경우 오로지 자신의 개인적 능력 때문에 이 대통령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는 분석에 이견은 없는 것 같다.
그런 만큼 청와대 안팎에선 이 대변인에 대한 견제도 많았고 갈등도 적지 않았다. 특히 올해 4월 그의 춘천 땅투기 의혹이 불거졌을 때 당시 정무 라인과 이 대변인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갈등이 상당히 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정무 라인은 “이 대변인이 상처를 많이 입었고, 야권 반발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대통령에게 더 이상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며 그의 퇴진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 대변인 측은 “수석급 가운데 업무 파악이 된 사람이 많지 않은데 당장 이 대변인이 그만둘 경우 홍보업무에 큰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며 퇴진 주장에 완강히 저항했다고 한다.
▲ 청와대 2기 참모진들. | ||
한편 이 대변인이 권력 핵심에 가까이 있게 되면서 2기 참모진 출범 뒤에도 계속 ‘권력 갈등설’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특히 이번에는 박형준 홍보기획관과의 껄끄러운 관계가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있다. 박형준 기획관은 지난 7월 청와대에 긴급 수혈돼 정권의 중장기 어젠다와 정부 전체의 홍보문제를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특히 홍보기획관실이 그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청와대 조직개편의 핵심으로 떠오른 바 있다. 당시 이상득 의원과 소장파의 정두언 의원 간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이 대통령이 박 기획관을 호출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박 기획관의 청와대 ‘착근’은 쉽지 않았다. 당시 일부 참모들이 청와대 직제의 비대화를 구실로 4명의 비서관을 거느리는 수석급인 박형준 홍보기획관의 사무실을 청와대 외부에 두도록 하는 등 보이지 않는 견제를 했다는 것이다. 박 기획관은 자신의 사무실을 청와대 밖에 두도록 했다는 사실을 알고 일부 참모들에게 강하게 항의했다는 후문이다. 최근 청와대로 박 기획관의 사무실이 옮겨오긴 했지만 초반부터 그는 유·무형의 견제를 많이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박 홍보기획관과 이동관 대변인의 관계 설정도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두 조직이 비슷한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도 계속 보이지 않는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좋은 의미에서 선의의 경쟁이 될 수 있지만 부정적인 권력투쟁으로 흐를 경우 청와대 조직 전체의 전력 누수를 부를 것”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 간 신경전은 청와대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도 회자되고 있다. 최근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과 박형준 홍보기획관이 현안 브리핑을 위해 나란히 춘추관으로 들어선 적이 있었다. 이에 기자들 일부에서 “사이도 안 좋은데 왜 같이 들어오느냐”라는 우스갯소리가 터져 두 사람이 순간 당황했다고 한다. 이는 기자들이 농담으로 던진 말이었지만 현재 이동관 대변인과 박형준 홍보기획관 사이의 껄끄러운 관계를 단적으로 대변하는 해프닝이었다.
청와대를 출입하는 한 기자는 이에 대해 “기본적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불편한 편이다. 사이도 그리 좋지 않은 것 같더라. 브리핑 때 보면 두 사람이 얼마나 신경전을 벌이는지 알 수 있다”라고 언급하면서 “최근 생활공감정책 발표 때의 일이다. 한 가지 사안을 두고 두 사람이 따로 브리핑을 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이 대변인은 그동안의 업무 노하우를 가지고 핵심 사안만 먼저 브리핑한 뒤 자리를 떠났다. 그 뒤 그 사실을 모르고 브리핑에 임했던 박 기획관은 이 대변인이 설명할 때의 의문점을 일일이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두 사람이 사전에 조율을 했으면 문제가 없었는데 이 대변인이 자신의 일만 하고 그대로 나가버려 영문도 모르는 박 기획관이 그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혼쭐이 난 적이 있었다. 당시 기자들은 이 대변인이 홍보 업무에 대한 이니셔티브를 유지하기 위해 노련하게 박 기획관을 견제하는 것처럼 느꼈다”라고 말했다.
사실 이 대변인은 지난 6월 추부길 전 홍보기획비서관의 퇴진 과정에서도 갈등을 겪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추 전 비서관이 ‘사탄의 무리’ 발언으로 퇴진 압박을 받고 있을 때 이동관 대변인 등 정식 홍보라인과 갈등이 많았다는 것이다. 이 대변인으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그가 일부 업무 중복이 있는 홍보기획 파트와 필연적으로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는 권력 구조가 돼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논란의 소지가 있을 것 같다.
청와대 2기 참모진이 보이지 않는 견제로 갈등을 겪고 있기도 하지만 일부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냉혹한 평가도 받는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2기 청와대 참모진이 출범 석 달을 넘기면서 정책 결정을 놓고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누어지는데 주로 온건파들이 비판을 두려워한 나머지 이 대통령이나 여권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보신주의에 그치고 있다”라고 말했다. 청와대의 대표적 강경파는 이동관 대변인과 박재완 정책기획수석인 것으로 알려진다. 반면 온건파로는 정정길 대통령실장과 맹형규 정무수석이 해당된다.
정정길 실장의 경우 초반에 몸을 낮추며 ‘소통의 다리’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청와대 내부로부터 갈수록 낮은 점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특히 대선 캠프나 인수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뒤늦게 합류했고, 전임인 류우익 실장이 낙마하는 것을 경험하면서 민감한 사안에 대해 나서기를 꺼리는 것으로 알려진다. 또한 정 실장은 ‘군기반장’을 자처한 류 전 실장과는 달리 ‘자율’을 강조하는 편에 속한다. 청와대를 정무팀(팀장 맹형규 정무수석)과 정책팀(팀장 박병원 경제수석)으로 나눠 가동하면서 특히 정책 분야는 대부분의 사항을 위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정 실장은 대통령이 주재하는 주요 회의에도 참석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이렇게 되자 정 실장이 내부 직원 단속과 화합에만 충실한 채 비판을 받을 만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너무 몸을 사리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맹형규 정무수석의 경우도 비슷하다고 한다. 청와대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맹 수석이 부하 직원들로부터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너무 위축돼서 소극적으로 활동한다는 평가도 있다. 일부에서는 정무기획 파트의 보고서가 맹 수석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VIP(이명박 대통령)에게 직보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정무팀을 총괄하는 맹 수석으로서는 조직 장악력에 허점이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정밀한 스크린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지난 대선 때 원로그룹에서 활동했던 여권 핵심 관계자는 “최근 권력 내부에서 대언론 관계를 위해 발로 뛰는 인사가 없다”며 주변에 어려움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또한 “청와대나 한나라당에서 언론사 간부들도 좀 만나고 접촉도 넓히고 그래야 하는데 그러는 사람도 없고 그렇게 할 생각도 없는 것 같다. 청와대 모 수석한테 그런 기대를 좀 했는데 안 하는 것 같더라. 예전의 박지원 실장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없다”라며 혀를 찼던 것으로 알려진다.
한나라당 친박(친 박근혜 전 대표) 성향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청와대 참모진 2기는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는’ 무색무취의, 전형적인 현상유지형인 것 같다. 지금 여권 모습을 보면 좌충우돌하면서 열심히 뛰고 있는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밖에 없는 것 같다. 참모들이 주군의 입맛에만 맞추지 말고 쓴 소리를 자주 해 이 대통령이 자기만의 세계에 빠지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스’보다 단호하게 ‘노’를 외치는 참모들이 많아야 한다는 여당 의원들의 잇단 주문이 식상하기보다 절박함으로 다가온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