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투어 공연 앞두고…경찰 “자살이다” 동료 “사고사다”
1998년 5월 히데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목 매달아 숨진 채 발견됐다.
밴드 해체를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했지만 파국을 막진 못했던 히데는 이후 새로운 밴드를 중심으로 활동한다. 1993년부터 밴드와 솔로 활동을 병행해오던 히데는 미국에서 ‘질치’라는 그룹을 결성해 앨범을 녹음했고, 이후 ‘히데 위드 스프레드 비버’라는 그룹을 만들어 자신의 세 번째 솔로 앨범 작업을 했다. 그는 이처럼 왕성한 활동을 하던 시기에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난 날은 1998년 5월 2일. 연초부터 3개월 동안 LA에 머물며 ‘질치’의 앨범 작업을 했던 그는 4월 27일에 일본에 돌아왔고, 5월 1일엔 ‘히데 위드 스프레드 비버’의 멤버들과 함께 TV 쇼 녹화를 마치고 술집에서 회포를 풀었다. 동생이자 매니저인 마츠모토 히로시가 형 히데를 차에 태워 도쿄의 미나미-아자부 지역에 있는 아파트까지 데려다 준 건 아침 6시 30분. 그는 한 시간 후인 7시 30분에 아파트 욕실 문손잡이에 수건을 걸어 목을 매단 채 발견되었다. 손잡이는 높이 1미터에 달려 있었다. 황급히 병원에 실려 갔지만 발견되었을 때부터 의식이 없던 그는 결국 사망 진단을 받는다. 아침 8시 52분이었고, 경찰은 조사 결과 자살로 발표했다.
5월 7일은 도쿄의 5월치곤 이례적으로 더웠다. 그리고 이날은 히데의 장례식으로 도시는 더욱 열기를 더했다. 5만 명의 인파는 지하철역부터 늘어서 긴자의 비즈니스 지역을 가득 메웠고, 그들이 가져온 조화로 인근은 꽃내음이 가득했다. 대부분 10대 소녀들이었고, 상당수는 히데처럼 붉게 염색한 머리였다. 운구차가 지나갈 때 절규하듯 “사요나라!”를 외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추앙하던 아이돌의 죽음을 현실로 맞닥뜨리자 거대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틴에이저들은 결국 졸도했고, 60여 명이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향했다. 현장에서 응급 처치를 받은 사람은 200명에 달했다. 통제를 위해 100명이 넘는 경찰이 투입되었고, 헬리콥터는 도쿄 상공에서 장례식 현장을 주시하고 있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경찰 보트도 대기 중이었다.
비보는 장례식 전부터 들려왔다. 세 명의 소녀가 히데를 따라 목숨을 끊었다. 도쿄에 사는 15세 소녀는 침실에서 목을 매달았고, 히로시마의 14세 소녀와 오사카의 17세 소녀도 그렇게 세상을 등졌다. 도쿄의 교각에서 히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투신한 소녀와 손목을 칼로 그은 여학생은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결국 엑스재팬의 리더였던 요시키는 기자회견을 열고 “제발 히데를 따라 목숨을 끊지 마세요. 자살은 절대 안돼요. 히데를 천국으로 편안히 보내주세요”라며 팬들에게 간절히 부탁했다. 전후 일본 사회가 이런 현상을 겪은 건 처음이었다.
한편 그의 죽음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유서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로 볼 때 자살로 보기 힘들며, 사고사의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가장 힘을 받았다. 요시키나 타이지의 증언에 의하면, 기타리스트들은 등과 목 부분의 통증을 풀기 위해 종종 문손잡이에 수건을 걸고 거기에 목을 감아 아래로 잡아당긴다는 것이다. 그날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간 히데는 술이 깨지 않은 상태에서 평소처럼 목을 풀다가 잠이 들어버렸고, 결국 질식사했다는 것이 지인들의 주장이었다.
몇몇 열성 소녀팬들은 히데를 따라 목숨을 끊었고 장례식엔 5만 명의 인파가 모였다.
밴드 ‘질치’의 베이시스트인 폴 레이븐도 히데가 자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죽기 며칠 전에 만났는데, 지쳐 보이긴 했지만 그 어떤 자살의 느낌도 받지 못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이 시기 히데가 음반 작업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긴 했다고 덧붙였다. 죽기 직전에 작업했으며 사후에 싱글로 발매된 노래 ‘Pink Spider’의 가사에 죽음에 대한 암시가 숨어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이 노래의 가사는 삶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언젠가 깨닫겠지/ 자신이 누군가의 손 안에서/ 날고 있었다는 걸/ 그걸 자유라 불렀던 것도/ 빌려온 날개로는 제대로 날지 못하고/ 곤두박질하며 추락한다/ PINK SPIDER 이젠 틀렸어/ 하늘은 보이지만/ 실패다.”
히데의 고질적인 저혈압, 그럼에도 그쳐지지 않던 폭음, 쉴 새 없이 피워대는 담배…. 다양한 원인들이 죽음의 이유로 제시되었지만, 확실한 건 없었다.
죽을 당시, 히데는 두 장의 싱글과 일본 전역을 누비는 투어 공연을 기획하고 있었다. 그런 압박감이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유가 되었는지 모른다. 혹은 요시키의 말처럼 사고사인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엑스재팬 해체가 그에게 큰 충격을 준 것만큼은 확실했으며, 에너지 넘치는 34세의 뮤지션은 제2의 인생에 들어서는 문턱에서 삶을 마감했다. 약 20년 전에 세상을 떠난 기타리스트 히데. 지금도 그를 잊지 못하는 수많은 팬들이 그를 추모하고 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