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추경 통과도 압박 예고…인사파동 넘어 예산·법안 통과 파동으로 이어질 수도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후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 ‘의원 입각’ 고육지책 내놨지만
오랜 기간 문재인 대통령은 ‘대세론’을 형성하며 1등 후보로서 가장 앞서 달렸다. 덕분에 후보 시절 문 대통령에게는 많은 인맥이 몰렸고 다양한 공약도 개발됐다. 진보 후보답게 기존 정치권이 만들어내지 못했던 공약도 과감히 내놨다. 그러한 공약에 국민들은 호응했고 “역시 문재인은 다르다”라며 표를 몰아줬다.
하지만 결국 그 공약이 문 대통령 임기 첫 시련을 만들어내는 단초가 됐다.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제시했던 인사 5대 원칙(병역면탈·부동산투기·탈세·위장전입·논문표절 인사 공직 배제)이라는 높은 기준은 취임 한 달이 지나도록 내각을 완성하지 못하는 사태를 만들어냈다.
천신만고 끝에 인준이 이뤄지긴 했지만 이낙연 국무총리가 위장전입 조항에 걸려들었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도 이 기준에 걸려 논란을 피하지 못했다. 더욱이 청와대는 강 후보자 자녀 위장전입과 이중국적 사실을 미리 공개하며 양해를 구하는 등 역대 어느 정권보다 도덕성 검증에 대해 신경 썼음을 밝혔지만, 증여세 늑장납부과 부동산투기 의혹 등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검증시스템에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인사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면서 고육지책도 나오고 있다. 17개 부처(6월 초 정부 직제기준) 중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와 강경화 후보자를 내정한 지 9일이 지나서야 김부겸(행정자치부)·도종환(문화체육관광부)·김현미(국토교통부)·김영춘(해양수산부) 등 상대적으로 청문회가 수월한 의원들을 내정한 것이다. 이는 국회 청문절차에서 현역 의원이 탈락한 점이 없다는 전례를 감안했다는 분석이다. 인사검증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부담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현역 의원을 내각에 대거 참여시키는 것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당장 야당에서는 “의원내각제 하는 것이냐”라는 비판이 나오고, 국무위원과 국회의원을 겸직하면서 빚어지는 의정 공백 시비도 뒤를 잇는다. 이처럼 온갖 방안을 다 써보는 중이지만 내각 구성원들은 아직 절반도 확정되지 못했다. 남은 11개 부처 장관 인선을 진행 중이지만 조기 발표는 쉽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 청와대 안팎의 기류다.
# 청와대 참모진 인사도 구설
6월 5일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한 통의 문자가 날아왔다. 김기정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5일 사의를 표명했다는 내용이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메시지를 통해 “김 차장이 업무 과중으로 인한 급격한 건강악화와 시중에 도는 구설 등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오늘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윤 수석은 이어 “김 차장은 현재 병원에 있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궁금증이 커졌다. 새 정부 들어 수석비서관급 이상 청와대 공직자가 사의를 표명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던 데다가 김 전 차장 사의 시기가 이해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는 5월 24일 외교·통일·정보융합·사이버 안보 분야를 총괄하는 안보실 2차장에 임명돼 6월 말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 준비와 관련한 업무를 맡아왔다. 새 정부 출범 이후 한미동맹을 재점검하는 첫 한·미 정상회담을 코앞에 두고 책임자가 자리를 그만둔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었다.
김 전 차장이 2차장에 임명된 이후 연세대 교수 재직 시절의 품행과 관련된 제보가 잇따랐으며, 이에 따라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면밀히 조사를 벌여온 것으로 전해졌다. 야권은 이를 두고 “청와대가 또다시 인사검증 시스템의 실패를 드러냈다”고 맹비난했다. 김명연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김 전 차장의 부적절한 처신이 무엇이었는지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성희롱, 여성 비하 등이 문제라는 제보도 들어온다”며 “사실이라면 고위공직은 물론 교수직도 수행할 수 없는 심각한 흠결”이라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 전 차장에 대한 인사검증이 부실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지적을 아프게 받아들이지만,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며 “새 정부는 국민의 기대에 따라 (인사검증과 관련해) 과거와는 다른 잣대를 적용하면서 인사발표가 늦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김 전 차장이 신원조회 절차를 거쳐 임명이 최종 확정되기 이전에 사의를 표명한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는 이런 해명을 내놨지만 내심 큰 충격을 받은 모양새다. 외교안보 전략과 실무를 맡았던 김 전 차장이 사의를 표명함에 따라 한·미 정상회담 준비에 비상이 걸리게 됐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까지 국회 청문절차 통과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터져 나온 대형 악재였다.
이에 앞선 6월 초 청와대는 안현호 청와대 일자리수석비서관에 대한 내정 인사를 취소했다. 5월 말 문재인 정부 초대 일자리 수석에 내정돼 청와대에서 근무했으나 내정 취소에 따라 출근하지 않고 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 역시 인사 검증 등의 결과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자신의 저서에서 여성비하 발언을 해 물의를 빚은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도 청와대 관계자들의 ‘인사 스트레스’를 불렀다. 야당은 “탁 행정관은 여성의 신체를 비하하고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편협한 시각을 드러냈다. 탁 행정관의 청와대 근무는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한다”며 공세를 펴고 있다.
# 야3당 일제히 십자포화
인사를 둘러싼 잡음이 계속되자 야당에서는 파상공세를 이어갔다. 청와대는 ‘믿었던’ 국민의당마저 강경 입장으로 돌아서자 힘들어하는 모습이다. 국민의당은 6월 8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 심사경과보고서 채택 문제와 관련, “경과보고서 채택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정리됐다”고 밝혔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는 보고서 채택에 응하기로 했지만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는 일부 의혹에 대한 감사청구 등을 조건으로 협조한다는 입장을 정했다.
자유한국당은 연일 문재인 정부에 십자포화를 퍼붓고 있다. 이제 제법 ‘야성(野性)’이 살아났다는 평도 나오면서 문재인 정부 첫 내각 인선은 더욱 꼬여드는 형세다. 자유한국당은 8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의 부인인 조 아무개 씨의 불법 취업 의혹과 관련해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장녀 위장전입 의혹 역시 검찰에 고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자유한국당 정우택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도대체 청와대 사전검증이 제대로 있기나 한 것인지 대통령이 불러주는 이름을 그대로 발표만 한 것인지 의심스러운 지경”이라며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숱한 의혹과 비리 혐의가 밝혀지고 부적격으로 드러난 인물을 일방적으로 임명을 강행할 경우 이 정부는 감당하기 어려운 위기에 부딪힐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일자리예산 등 추경예산 통과에서 문재인 정부를 압박하겠다는 입장도 한국당이 분명히 내놓으면서 향후 정국은 인사 파동을 넘어 예산안 및 법안통과 파동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낳고 있다. 정 권한대행은 “이런 식의 불통·독선·독주의 인사를 강행하고 협치의 정신을 포기한다면 이 정부는 법률안과 예산안 등 앞으로 국회에서 다뤄져야 할 더 많은 과제에서 심각한 난관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지적했다.
상대적으로 온건하다는 평을 받아온 바른정당도 문재인 정부의 행보에 연일 비판을 날을 세우고 있어 이 부분 역시 정부 여당에는 부담이다. 바른정당은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3인에 대해 공식적으로 ‘부적격’이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주호영 바른정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대다수 장관은 발표조차 되지 않은 상황이다. 청와대 내부 인사도 제대로 되지 않고 여러 문제를 드러냈다. 외교안보 부분은 공백이 심각한 상황”이라며 “자신들만이 정의라는 오만과 독선을 버리고 겸허한 마음으로 민심을 듣고 제대로 된 인사를 하기 바란다”고 쏘아붙였다.
최경철 매일신문 서울 정경부장 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