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주자들’ 마산서 눈도장 ‘줄줄’
▲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1일 오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친 고 김홍조옹의 빈소가 마련된 경남 마산 삼성병원을 찾아 조문한 뒤 김 전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 ||
끊이지 않는 조문 행렬로 경황이 없는 가운데 이뤄진 YS와 잠룡들의 만남이었지만 정가에선 이들이 나눈 손짓과 말 한마디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모습이다. 지난 사흘간 YS와 잠룡들이 펼친 ‘조문정치’의 이면을 한번 들여다봤다.
조문을 한 차기 대권주자들 중 가장 관심을 모은 인물은 역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정적’이었던 선친(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YS의 관계도 그렇지만 그간 박 전 대표와 YS가 그다지 편한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익히 알려진 대로 YS는 지난해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MB)을 적극 지지해 박 전 대표에 큰 상처를 줬다. YS는 대선후보 경선 기간에 김덕룡 전 의원(현 대통령 국민통합특보)과 서청원 친박연대 대표, 박근혜계의 ‘좌장’ 격인 김무성 의원 등 옛 핵심측근들을 불러 ‘MB 지지’를 종용했었다.
이들 중 당초 박 전 대표 쪽으로 거의 마음이 기울었던 김덕룡 전 의원은 YS의 압박에 결국 ‘MB 캠프행’을 결정해 선대위원장을 맡았다. 서 대표는 박근혜 캠프에 상임고문으로 합류하면서 “YS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토로할 정도였고 YS와 가까운 한 중진은 “당시 상도동 자택으로 불려가 YS에게서 ‘MB를 도우라’는 얘기를 들었다. 단도직입적으로 ‘이제는 그럴 수 없다’고 거절했지만 상당히 곤혹스러웠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이러한 ‘앙금’ 때문인지 박 전 대표와 YS는 경선이 끝난 후 한 번도 대면한 적이 없다. MB에 패한 박 전 대표가 잠행을 한 반면 YS는 MB 측으로부터 ‘경선 승리의 1등 공신’으로 예우 받던 시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한참 달라졌다. 무엇보다 MB와 YS의 관계가 냉랭하다. 특히 YS는 18대 총선 공천과정에서 차남 현철 씨가 과거 비리 경력 때문에 공천신청조차 못하는 수모를 당하고, 김덕룡 전 의원과 김무성 의원 등 옛 가신들이 줄줄이 낙천하자 “버르장머리를 고쳐줘야 한다”며 MB에 대한 불만을 폭발시켰다.
반면 박 전 대표와는 공천 파동을 겪으며 ‘동병상련’의 처지를 겪게 됐다는 것이 주변의 분석이다. 두 사람과 모두 가까운 한나라당 한 중진은 “박 전 대표와 YS 사이에는 서청원·김무성이란 확실한 연결고리가 있다. 한때 두 사람이 박 전 대표 측에 가담했다고 YS가 괘씸해하는 기색이 있었지만 요즘은 전혀 그렇지 않다. YS도 번번이 정계 진출의 길이 막혀 고전 중인 현철 씨의 앞날을 생각해서라도 박 전 대표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 왼쪽부터 김문수, 정몽준, 손학규 | ||
두 사람은 1일 상가 접견실에서 서청원 친박연대 대표와 셋이 나란히 앉은 채로 서로 “내가 박정희 전 대통령 돌아가셨을 땐 장지까지 따라갔다.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도 갔었고…”(YS), “생전에 효를 다하셨으니…. 저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마음이 아프시겠다”(박 전 대표) 등 ‘따뜻한’ 대화를 나눴다. 박 전 대표와 함께 문상했던 한나라당 한 중진은 “심기가 그대로 표정에 나타나는 YS인데 박 전 대표를 배웅할 때엔 온화한 얼굴이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박 전 대표 못지않게 YS와 ‘구원’이 있는 한나라당 정몽준 최고위원도 1일 YS 상가를 찾았다. 정 최고위원은 선친인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1992년 대선에서 YS와 맞붙었다가 패배한 후 현대그룹이 정부로부터 제재를 받는 등 호된 시련을 겪은 바 있다.
YS는 이날 선대의 악연 탓인지 어색해 하는 정 최고위원과 접견실 소파에 함께 앉아 손을 잡고 얘기를 나누는 등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YS는 정 최고위원에게 지난 2001년 3월 정 전 회장 별세 당시 서울 청운동 자택에 차려진 빈소를 찾았던 기억 등을 더듬으며 “열심히 하라”고 덕담을 했다고 한다.
또 다른 여권 내 잠룡인 김문수 경기지사도 2일 조문을 했다. 김 지사는 YS 대통령 재임 시절인 지난 1996년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공천을 받아 당선된 후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 특히 당시 노동운동 출신으로 민중당을 창당했다가 실패해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던 김 지사의 공천에 YS 차남 현철 씨의 역할이 컸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YS와 결코 간단치 않은 인연을 나누고 있는 셈이다. 실제 YS는 조문 온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대화에서 김 지사 등 자신이 신한국당 시절 공천한 사람들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반면 대권주자 중 YS와 가장 인연이 깊다고 할 수 있는 손학규 민주당 전 대표는 의외로 ‘냉대’를 받았다는 평가다. ‘정치적 부자관계’로까지 일컬어졌던 두 사람은 손 전 대표가 지난해 3월 대선후보 경선방식에 불만을 품고 한나라당을 탈당하면서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뒤이어 손 전 대표가 대통합민주신당 대권 레이스에 참여하면서 YS와의 사이는 더욱 더 냉랭해졌다.
손 전 대표는 1일 삼성병원 상가에서 만난 YS에게 “효도하셨다. 백수를 넘기셨더라면 좋았을 텐데”라며 “돌아가신 어른께서 (YS) 재임 중 청와대를 한 번도 찾지 않았다는 보도에 놀랐다”며 ‘옛정’을 되살리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YS는 “아버님은 내가 정치하는 데 어렵게 한 것이 하나도 없다. (단지 내가) 돈 갖다 쓴 것밖에 없다”고 한마디하고선 손 전 대표와 비슷한 시간에 문상을 온 허남식 부산시장과의 대화에 몰두해 손 전 대표를 머쓱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