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위 “장관급 3300㏄ 차관급 2800㏄” 권고 불구 상당수 ‘가이드라인’ 안 지켜
현대차 에쿠스 이미지 사진
<일요신문>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기간(2013~2017) 장관들은 리스(임차)형식으로 관용차량을 탔다. 장관들이 선호한 차종은 3778~3800cc급 에쿠스다. 에쿠스는 현대자동차가 1999년부터 출시한 국내 최고급 대형 세단이다. 3778~3800cc급 에쿠스 가격대는 약 6900만 원~1억 4900만 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은 전부 45명이다. 이들이 선택한 관용차량은 총 50대(교체 포함)다. 이 중 40대가 3778~3800cc급 에쿠스였다. 현대차 3800cc급 제네시스 EQ900(6대), 기아자동차 3800cc급 K9(1대), 현대차 2359cc급 그랜저 하이브리드(1대), 2199cc급 카니발 (1대), 1999cc급 쏘나타 하이브리드(1대) 순이었다. 고급 세단들이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이는 이명박 정부가 규제완화를 이유로 공용차량 운영관리계획을 폐지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2006년 정부는 ‘공용차량 운영관리계획’에 따라 “각 부처는 장관급 3300cc, 차관급 2800cc 수준의 관용차량을 지급해야 한다”라고 권고해왔다. 하지만 신설된 ‘공용차량 관리규정’엔 배기량 기준이 없다. 중앙부처가 사실상 모든 종류의 차량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하지만 국민권익위원회는 2012년 박근혜 정부 출범 직전 “전용차량 배기량은 행정안전부 종전 가이드라인을 참조해 공용차량의 대형화를 자율적으로 억제해야 한다”라고 권고했다. 행안부 가이드라인은 장관급 3300cc, 차관급 2800cc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중앙부처 장관들은 처음부터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초대 장관 17명 중 13명의 관용차량은 3778~3800cc급 에쿠스였다. 현오석(기획재정부), 방하남(고용노동부), 김관진(국방부), 서남수(교육부), 서승환(국토교통부), 이동필(농수산식품부), 최문기(미래창조과학부 장관), 권재진(법무부), 진영(보건복지부), 윤상직(산업자원통상부), 조윤선(여성가족부), 윤병세(외교부), 윤진숙(해수부) 전 장관은 임명 직후 3778cc~3800cc급 검정색 에쿠스를 지급받았다.
행안부 가이드라인을 지킨 장관들도 있었다. 류길재(통일부) 유정복(안전행정부) 전 장관은 재임 초기 3342cc급 검정색 에쿠스를 탔다. 유진룡 전 장관(문화체육관광부)은 취임 직후 2199cc급 은색 카니발을 이용했다. 윤성규 초대 환경부 전 장관은 취임 초기 1990cc급 쏘나타 하이브리드를 이용했지만 약 5개월 뒤 3778cc급 에쿠스로 관용차량을 교체했다.
관용차량 배기량을 ‘업그레이드’하거나 차종을 신형으로 교체한 장관들도 있었다. 상당수 장관들은 취임 직후 전임 장관이 탔던 관용차량을 승계하거나 같은 차종과 배기량으로 관용차량을 다시 임차했다. 하지만 일부 장관들은 교체시기에 맞춰 배기량을 올리거나 새로운 애마를 골랐다.
행자부 장관들의 관용차량 현황에 따르면 유정복 강병규 정종섭 전 장관은 3342cc급 에쿠스를 이용했다. 하지만 2016년 취임한 홍윤식 장관은 취임 직후인 2월 24일 3778cc급 제네시스 EQ900을 임차했다. 제네시스 EQ900은 현대차가 2015년 말 처음 출시한 모델로 가격은 약 7500만~1억 5400만 원이다. 최신형 브랜드인 제네시스가 나온 즉시 홍 전 장관은 자신의 관용차량으로 선택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국토교통부도 마찬가지였다. 2014년 7월 16일 최양희 미래부 전 장관은 최문기 전 장관이 타던 에쿠스 3778cc를 이용했다. 하지만 약 1년 6개월 뒤 최 전 장관은 3778cc급 제네시스 EQ900으로 관용차량을 바꿨다. 김영석 해수부 전 장관 역시 윤진숙 이주영 유기준 전 장관이 타던 3778cc급 에쿠스를 제네시스 EQ900(배기량 동일)으로 교체했다.
반면에 급을 낮춘 장관들도 있다. 2016년 1월 12일 취임한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는 약 4개월간 현오석 최경환 전 부총리가 타던 3800cc급 에쿠스를 이용했다. 유 전 부총리는 2016년 5월 25일 3300cc급 제네시스 EQ900으로 관용차량을 교체했다. 조경규 환경부 전 장관도 윤성규 전 장관이 타던 3778cc 에쿠스를 25일만 사용한 뒤 2359cc급 그랜저 하이브리드로 교체했다. 유 전 부총리와 조 전 장관은 새로운 차종을 구입할 때 배기량을 낮췄다.
그렇다면 중앙부처 수장인 국무총리는 어떤 차를 탔을까. 국무조정실 관용차량 현황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2013~2017) 기간 동안 정홍원 초대 총리는 5000cc급 에쿠스 리무진을 지급받았다. 당시 2012년식 5000cc급 에쿠스 리무진 가격은 약 1억 4000만 원이었다.
이완구 전 총리도 임명 즉시 에쿠스 리무진 5000cc급을 받았다. MB 정부 당시 한승수 정운찬 전 총리는 4500cc급 에쿠스 리무진을 받았지만 김황식 전 총리 시절 관용차량이 업그레이드됐다. 박근혜 정부 마지막 총리인 황교안 전 총리의 관용차량도 5000cc급 에쿠스 리무진이었다. 황 전 총리는 법무부 장관 재임 당시 3800cc급 에쿠스를 탔지만 총리가 되면서 관용차량의 ‘급’을 높였다. 5월 15일 문재인 정부 이낙연 총리도 5000cc급 에쿠스 리무진을 받았다.
일부 ‘차관급’ 처장들이 장관급 관용차를 이용한 행태도 드러났다. 박승춘 전 국가보훈처장은 2013년부터 올해 퇴임 직전까지 3778cc급 에쿠스를 탔다. 제정부 전 법제처장은 취임 직후 3400cc급 에쿠스를 받았지만 2014년 11월 24일 3700cc급 에쿠스로 관용차량을 교체했다. 김승희 전 식품의약안전처장은 2015년 취임 뒤 정승 전 처장이 타던 2799cc급 체어맨을 3778cc급 에쿠스로 바꿨다. 앞서 장관들이 타던 3700cc~3800cc급 고급 세단을 차관급 기관장들이 탔던 셈이다.
16청의 수장들은 대부분 차관급 공무원이다. 차관급 공무원들의 대세는 쌍용자동차의 체어맨이었다. 박근혜 정부 기간(2013~2017) 동안 청장직을 맡은 인물은 총 35명이었고 30대의 관용차량이 이용됐다. 이중 3200cc급 체어맨(13대)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고 2799cc급 체어맨(5대)이 뒤를 이었다. 체어맨은 국산 대형 세단으로 3200cc급 가격대는 약 4000만~5000만 원이다.
일부 청장들도 자신의 관용차량 배기량을 업그레이드하거나 신형으로 바꿨다. 장명진 방위사업청장은 노대래 이용걸 전임 청장이 타던 2800cc급 체어맨에 만족하지 않았다. 장 전 청장은 2014년 11월 18일 취임 직후 2800cc급 체어맨을 지급받았지만 2017년 3월 27일 3300cc급 제네시스로 바꿨다. 한정화 초대 중소기업청장도 3200cc급 체어맨을 약 1년간 타다가 3342cc급 제네시스 로 차종을 바꿨다.
관용차량을 교체하면서 배기량을 낮춘 청장들도 있었다. 나선화 문화재청장은 2013년 말 취임 직후 3199cc급 체어맨을 탔다. 하지만 나 전 청장은 두 달 뒤 2199cc급 카니발로 관용차량을 교체했다. 김영민 전 특허청장 역시 전임 처장들이 타던 3199cc급 체어맨이 아닌 2199cc급 카니발을 새로 빌렸다. 두 사람은 차관급 청장 중 유일하게 2000cc대 관용차량을 이용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
대검은? 관용차량도 상명하복 ‘직급별로 통일’ 대검 관용차량 현황에 따르면 채동욱 김진태 김수남 전 검찰총장의 관용차량은 3800cc급 에쿠스V380이었다. 길태기 임정혁 등 역대 대검 차장은 3200cc급 체어맨 CW600, 기획조정부장 반부패부장 형사부장 감찰본부장 등 다른 차관급 부장 검사들은 2400cc급 그랜저를 이용했다. 승진할수록 관용차량이 그랜저-체어맨-에쿠스로 변했다. 박근혜 정부 기간(2013~2017) 대검 소속 장·차관급 인사는 33명(중복포함). 검찰총장(3)과 차장검사(4)를 제외한 차관급 부장검사 26명의 차는 2400cc급 그랜저였다. 하지만 다른 부처 장·차관급 공무원들의 관용차량은 에쿠스, 체어맨, 제네시스, 그랜저, 쏘나타 등 다양한 종류였다. 차관급 공무원들의 관용차량도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대검 소속 공무원들의 차량은 종류와 배기량이 일관적이었다. 예외 없이 총장급 3800cc급 에쿠스, 차장검사급 3200cc급 체어맨, 부장검사급 2400cc급 그랜저를 이용했다. 마치 ‘일동 차렷’ 자세를 하고 있는 느낌이다. 검찰 관계자는 “좀 특수하다. 검찰은 피라미드식 상명하복 문화가 강하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는 조직이고 검사 개인이 중요한 조직이 아니다. 검찰 총장이 정점을 찍고 그 밑으로 쭉 연결돼있다. 의전부터 딱 맞춘다. 우리는 예외를 두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대검찰청뿐만이 아니다. 법무부 관용차량에도 ‘숨은 일인치’가 있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1호’인 우병우 사단의 그늘이 묻어나오기 때문이다. 안태근 법무부 전 검찰국장은 대표적인 ‘우병우 사단‘으로 분류된다. 안 전 국장은 돈봉투 사건으로 대구고검 차장검사로 전보 조치됐다. 안 전 국장 관용차량은 2999cc 그랜저였다. 안 전 국장은 대검 기조실장 당시 2359cc급 그랜저를 탔고 검찰국장으로 승진하면서 배기량 업그레이드에 성공한 바 있다. 김주현 전 대검 차장도 우 전 수석과 인연이 깊다. 김 전 차장은 진경준 전 법무부 출입국 외국인 정책본부장(검사장급), 우 전 수석과 함께 2006년 법무부에서 일했다. 당시 김 전 차장이 법무부 검찰과장, 진 전 검사장은 법무부 검찰국 검사, 우 전 수석은 법조인력정책과장이었다. 최근 사표를 던진 김 전 차장은 차장시절 탔던 3200cc급 체어맨 CW600을 반납해야만 했다. ‘100억 주식 대박’ 장본인 진 전 검사장은 법무부 기조실장을 맡았을 당시 2359cc급 그랜저를 이용했다. 법무부 출입국 외국인정책본부장으로 승진한 진 전 검사장은 2999cc급 그랜저를 탔다. 하지만 지난해 현직 검사장 사상 처음으로 4억 원대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정점식 전 공안부장은 우 전 수석 서울대 법대 84학번 동기로 ‘우병우 사단’으로 분류된다. 최근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좌천된 정 전 부장은 결국 사표를 냈다. 정 전 부장의 관용차량은 2400cc급 그랜저였다. ‘반우병우’ 인사의 관용차량은 급이 달라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봉욱 전 서울동부지검장을 대검 차장으로 임명했다. 봉 차장은 우 전 수석 라이벌로 알려졌다. 봉 차장은 우 전 수석의 서울대 법대 84학번 동기이자 사법연수원 19기 동기다. 봉 차장은 동기들 중 가장 먼저 검사장으로 승진했지만 우 전 수석 청와대 재임 시절 한직을 떠돌았다. 봉 차장은 이번 승진으로 김주현 전 차장 관용차인 3200cc급 체어맨 CW600을 타게 됐다. [선] |
최순실 사단은? 유진룡이 타던 카니발 김종덕이 에쿠스로 바꿔 문화체육관광부는 탄핵 소용돌이 한복판에 있었다. 최순실은 문체부를 발판 삼아 국정농단의 씨를 뿌렸다.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은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김종 전 제2차관 등을 이용해 최 씨의 국정농단을 도왔다.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은 정유라 승마비리를 조사하다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 찍혀 옷을 벗어야 했다. 문체부 주도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조윤선 전 여가부장관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날렸다. 문체부는 탄핵 정국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문체부 관용차량을 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보인다. 유진룡 전 장관은 재임 시절 초기 2199cc급 은색 카니발를 이용했다. 하지만 김종덕 전 장관은 2014년 9월 취임 직후 3799cc급 에쿠스를 임차했다. 유 전 장관이 타던 카니발을 고급 세단으로 바꾼 것이다. 특검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차 전 단장이 최순실에게 추천한 인물로 알려졌다. 공교롭게도 김 전 장관은 현재 구속 상태다. 2년 뒤 취임한 조윤선 전 장관은 김 전 장관의 3799cc급 에쿠스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특검은 1월 21일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및 실행 혐의로 조 전 장관을 구속했다. 구속 직전까지 조 전 장관 애마는 3799cc급 검정색 에쿠스였다. 김 전 차관은 최순실 국정 농단의 핵심 인물이다. 김 전 차관은 최 씨의 딸 정유라에게 특혜를 주는 데 앞장섰고 최 씨와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이 각종 이권을 챙기는 데 개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차관 관용차량은 3299cc급 K9. 김 전 차관 차는 다른 차관급 공무원의 관용차량과 달리 배기량이 월등한 수준이었다. 조현재 등 문체부(2013~2017) 역대 제1차관 5명은 2799cc급 체어맨을 이용했고 전임 제2차관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2013년 10월 말 취임한 김 전 차관은 체어맨을 타다가 임차 계약이 만료된 뒤 3299cc급 K9로 차종을 교체했다. 기아차가 생산한 K9는 고급 세단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당시 2800cc급 체어맨이 단종돼서 새로운 차량을 임차해야 했다. 김 전 차관이 K9를 원했다. 처음부터 마음에 두고 있었다. 배기량이 높았지만 김 전 차관이 강하게 원했기 때문에 우리가 마음대로 바꿀 수 없었다”라고 해명했다. [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