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백남기 농민 사건 남은 의문점 밀착취재
# 등산복 차림으로 등장한 백 교수…경찰 부탁받고 수술 강행?
백 농민의 사망과 관련해 가장 큰 의문점은 소생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진행된 수술과 그 후 300여 일 동안 진행된 연명치료다. 백 농민은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이송됐을 때부터 뇌탈출증 및 두개골 부위 등의 다발성 골절로 인해 이미 의료진들로부터 수술이 무의미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뒤늦게 등산복 차림으로 병원을 찾은 백선하 교수는 수술을 진행했고, 이후 300여 일간의 연명 치료가 이어졌다.
고 백남기 농민의 영결식.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백 농민의 수술 및 연명 치료는 외부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경찰이 백 농민 사망에 따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백 교수에게 수술을 부탁했으며, 수술 이후 연명 치료가 비상식적으로 오랜 기간 진행됐다는 것이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신경과 전문의인 김경일 전 서울시립동부병원장은 <일요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이 같은 견해를 밝혔다.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비극이다. 수술을 시작한 것부터가 경찰의 부탁을 받았다는 생각이다. 병원의 모든 의료진이 수술할 수 없는 상태라고 했는데 백 교수가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병원에 나오지도 않을 시간에 나와 수술을 진행했다. 특별한 의도가 있기 전에는 한밤중에 주임교수, 과장이 수술하는 경우는 없다고 본다. 경찰이 수술을 요구했다는 의혹이 충분히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자신들이 이 사람을 즉사시키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그런 식으로 몰고 간 것이다. 경찰이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려고 불행을 더 크게 만든 비상식적인 경우다.“
이어 300여 일간 이어진 연명 치료에 대해서도 김 전 원장은 “이런 경우 다른 사람 같았으면 한 달도 안 되어서 벌써 다른 병원으로 옮겨졌을 것이다. 경찰의 특별한 부탁이 아니고서야 열 달씩이나 연명 치료를 계속할 일이 없다”라며 “이러한 호의를 베푸는 경우 상식적으로 판단해봐야 한다. 이런 경우 대부분 임상실험이나 정치적 이유 등 의사가 얻는 이득이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이보라 교수 또한 비슷한 견해를 전했다.
“무의미하게 생명을 연장하는 여러 치료를 했던 것 자체는 비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문제는 백남기 어르신 본인이 그러한 치료를 받기를 원치 않으셨던 뜻이 있었다. 가족들 또한 사망이 임박한 상황에서 수혈 및 투석, 승압제 사용 등은 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으나 병원에서는 승압제도 사용했고 수혈도 했다. 진료와 관계가 적은 윗선에서, 내과의 다른 의료진이 지시 혹은 개입을 한 것은 통상적인 경우와 아주 다르다. 개인적인 견해는 다르지만 이러한 점 때문에 ‘사망진단서의 사망 원인을 바꾸려고 그렇게 열심히 연명 치료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백 농민의 수술이 강행된 것에 경찰 측의 부탁이 있었다는 사실은 지난 2016년 3월 백남기 농민 유족 측이 강신명 전 경찰청장과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상대로 낸 국가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경찰이 제출한 답변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답변서에는 ‘혜화서장은 당시 주말 야간이어서 응급실 인턴밖에 없던 상황에서 서울대병원장에게 긴급히 협조 요청하여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최고 전문의인 백선하가 급히 병원으로 와서 백남기의 진료 및 수술 집도를 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유족 측 법률 대리인단장을 맡은 이정일 변호사는 “경찰 측이 구조 의무를 다했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백 교수에게 수술을 지시한 사실을 밝혔다”라며 “수술 없이 돌아가셨을 때 경찰이 정치적으로 부담해야 할 부분이 크기 때문에 일단 살려놓고 보자는 의도에서 수술을 지시하지 않았을까 추정할 수 있다. 수술이 의미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의도에 의해 수술이 진행된 정황으로 비친다”고 말했다.
# 대통령 주치의 출신 서창석 병원장, 청와대와 ‘커넥션’ 의혹
이정일 변호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주치의였던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이 백 농민의 상태를 청와대 등 ‘윗선’에 수시로 보고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수술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주치의였던 서창석 병원장이 서울대병원장에 취임했다. 경찰 수뇌부와 청와대가 수시로 백 농민에 대한 건강상태를 체크하고 서 원장이 이를 보고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라며 “가족들도 아버지의 건강상태를 파악하기 어려운데, 오히려 경찰이나 정부가 더 잘 알고 있던 상황에 비춰보면 서울대병원 측에서 건강상태에 대해 미리 이야기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만약 서 원장이 이를 청와대에 보고했다면 이것은 의료정보를 제공한 것이기 때문에 법 위반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0월 14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종합감사에 참석한 故 백남기 농민 주치의 백선하 서울대병원 교수와 서창석 서울대병원장.
서 원장은 앞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의료 농단에 핵심 인물로 꼽히며 구설에 오른 바 있다. 그는 지난 2014년 9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박 전 대통령의 주치의를 맡았고, 서울대병원장에 공모하기 위해 주치의를 그만둔 것으로 알려졌다. 서 원장은 지난 4월 특검 조사에서 최순실 씨의 주치의 역할을 했던 이임순 순천향대 교수의 추천을 통해 박 전 대통령의 주치의가 됐으며, 이후 서울대 병원장 출마 권유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현재 서 원장은 최 씨의 단골 성형외과 원장 부부에게 특혜를 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는 병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김영재 원장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외래진료 의사에 위촉했으며, 김 원장의 부인이 운영하는 업체의 성형 봉합사를 서울대병원 의료 재료로 등록했다.
이에 박 전 대통령, 최순실 씨 등과의 커넥션이 있었던 서 원장이 백 농민 사망 사건과 관련해서도 일종의 ‘눈치 보기’를 하며 개입을 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병원장에 임명되는 과정에서 최 씨와 박 전 대통령의 입김이 작용한 만큼, 서 원장이 백 농민 사망에 대한 정권의 부담을 덜기 위해 ‘병사’ 기재 등의 과정에 압력을 행사하고 백 농민의 건강상태를 수시로 청와대 등에 보고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의료연대본부와 서울대병원 노조는 성명서를 내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연결되는 의료 농단 사태와 백 농민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를 촉구했다.
의료연대본부는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에서 서울대병원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라며 “박근혜-최순실은 낙하산인사를 통해 서창석을 서울대병원장으로 임명하고, 김영재 원장 특혜부터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 문제까지 제1의 국가병원인 서울대병원을 사적으로 휘둘렀다”고 주장했다.
박경득 서울대병원 노조 사무국장은 <일요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사망 원인을 병사로 작성한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백 교수와 고인의 의료정보를 유출한 서 원장은 범죄적 행위에 대한 조사 대상이 돼야 한다”라며 “진단서뿐만 아니라 경찰 측이 세부 전공이 다른 백 교수로 하여금 수술을 진행하게 한 내용 등 백남기 어르신 사망 사건 전반의 조사와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한다”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