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만에 상처투성이로…무슨 일 당했기에?
‘에비타’로 불린 아르헨티나의 퍼스트 레이디 에바 페론은 죽어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슬픔은 깊었다. 국정은 중단됐고, 모든 라디오 주파수는 추모 방송으로 채워졌다. 레스토랑들도 추모의 의미로 문을 닫았고, 극장에선 영화 상영이 중지됐다. 열흘 동안 조기가 게양되었다. 사람들은 대통령 관저 근처로 몰려들기 시작해 주변의 거리를 가득 메웠다. 에바의 시신은 과거 그녀의 사무실이 있던 노동부 건물로 옮겨졌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인파가 몰려, 8명이 압사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8월 10일엔 장례식이 치러졌다. 300만 명에 달하는 군중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거리를 채웠고, 모든 화원은 꽃 매진 사태를 겪었다. 사람들은 발코니에서 꽃을 던졌고 도시는 그 내음으로 진동했다.
그녀의 추모가 이토록 장대했던 가장 큰 이유는, 방부 처리된 미라 상태의 에바가 끊임없이 대중에게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레닌, 마오쩌둥, 호찌민, 김일성 등의 정치인들이 사후 방부 처리되었지만 가장 완벽한 사례는 에바 페론이었다. 닥터 페드로 아라는 완벽한 작업을 해냈다. 비엔나에서 공부한 후 마드리드에서 해부학을 연구하던 페드로 아라의 솜씨는 ‘죽음의 예술’로 불릴 정도였는데, 시체의 혈액을 모두 빼낸 후 글리세린으로 채우는 방식을 사용했다. 뇌를 포함한 그 어떤 장기도 제거하지 않는, 당시로선 혁신적인 방식이었다. 그는 에바가 세상을 떠난 7월 26일 밤부터 그 다음 날 아침까지 꼬박 날을 새며 작업을 끝냈고, 그 결과물은 대중들에게 공개되어 마치 여전히 그녀가 살아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장례식이 끝난 뒤 대중에 공개된 에바의 미라.
장례식이 끝난 후에도 에바의 미라는 2년 동안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하지만 1955년 쿠데타가 일어났고, 급하게 망명길에 올랐던 후안 페론은 아내의 시신을 챙기지 못했다. 페론이즘을 전면 금지했던 쿠데타 세력은 미라 전시를 중단시켰다. 그리고 이후 약 20년 동안, 죽은 에바는 긴 여정에 오른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에 의하면 군부는 시신이 든 관을 이곳저곳으로 옮겼고 결국은 군 정보부 건물에 보관했지만 그 어떤 곳으로 가든 사람들이 꽃과 촛불을 들고 몰려들었다는 것. 결국 아르헨티나 밖으로 내보내는데, 교황청과 비밀스러운 교섭 끝에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어느 성당 지하실에 ‘마리아 마기’라는 가명으로 에바의 시신은 안치되었다. 1957년의 일이었다.
에바를 그리워하는 아르헨티나 민중들은 도시의 담벼락에 “에바의 시신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낙서를 남겼다. 10년 넘게 에바를 찾던 그들은 1970년 결국 과격한 행동에 나섰다. 페론이즘 게릴라 그룹인 ‘몬토네로스’는 쿠데타 세력이며 전직 대통령이자 에바의 시신 유출을 관장했던 페드로 유제니오 아람부루를 납치한 뒤 정부에 에바의 미라와 아람부루를 교환하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1년 후, 군부는 붕괴하고 페론의 추종자들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그러면서 에바가 밀라노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당시 후안 페론은 세 번째 아내인 이자벨과 함께 스페인에 있었고, 에바의 시신은 그곳으로 옮겨졌다.
복원 과정을 거쳐 대중에게 다시 공개된 에바의 미라.
후안의 아내인 이사벨은 솜과 물로 10년 넘게 방치된 시신을 정성스레 닦았다. 한 손가락 끝이 유실되었는데, 이것은 군부가 시체가 에바가 맞는지 확인하려고 잘라낸 것이었다. 코 부분에 큰 함몰이 있었고, 얼굴과 가슴 부위도 타격의 흔적이 있었다. 무릎에도 큰 상처가 있었다. 세간엔 군부에서 에바의 시체를 매단 후에 채찍질했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하지만 작은 관 속에 세워서 보관한 탓에 발 부분에 큰 손상이 있었던 건 사실이었다.
후안 페론은 1973년에 아르헨티나로 돌아와 다시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다음 해 세상을 떠났다. 부통령이자 아내인 이사벨이 대통령 자리를 이었고, 그녀는 에바의 시신을 복원해 후안의 시신과 함께 대중에게 공개했다. 복원을 맡았던 도밍고 텔레체아는 미술품 복원 전문가. 그는 생애 최고로 복잡한 작업이었다며 에바의 모습을 되살렸고, 그녀는 조국을 떠난 지 19년 만에 다시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하지만 1976년 다시 쿠데타가 일어났고, 에바의 시신은 지하 5미터의 깊은 곳에 묻혀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고 있다. 33년의 짧은 삶을 살았지만, 미라가 되어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었던 에바 페론. 혹자는 지금도 그녀의 모습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을 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