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는 5년 전 참고인 조사받았던 50대 남성, 추가된 증거 없이 정황 근거로 체포 초기 부실수사 ‘도마 위’
용의자를 코앞에 두고도 놓아준 꼴이 되면서 경찰의 허술한 수사가 도마 위에 오르게 됐다.
지난 26일 충남 아산시 송악면 인근 야산에서 ‘갱티고개 살인사건’의 용의자 A씨(모자, 검은색 후드)가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 DNA‧원한관계에 몰두한 경찰, 조사하고도 용의자 풀어줘
아산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2002년 4월 충남 아산시 송악면 갱티고개 인근 야산에서 발견된 40대 여자 노래방 업주 사체의 사건 용의자는 무직인 A씨(50)였다.
A씨는 지난 2012년 피해자가 운영하던 노래방에서 명함이 발견돼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용의선상에는 오르지 않았다. 피해자의 차량에서 발견된 혈흔의 DNA가 A씨와 일치하지 않았으며 피해자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경찰은 피의자를 특정하지 못한 채 2013년 미해결 장기사건으로 분류했다.
이번 체포과정에서도 새로 추가된 증거는 없었다. 다만, 통신기록 및 주변인물 재분석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노래방 주변과 피해자의 차량 이동 경로, 현금인출 경로를 재추적했으며 범행현장 인근 통화내역 1만 7000여 건을 다시 분석했다. 그러던 중 사건과 관련해 지난 2012년 참고인 조사를 받았던 A씨가 범행시각 노래방 근처에서 받았던 휴대전화 수신기록 1통을 발견했다. 또한, 조사결과 A씨에게는 동종전과가 있으며 어릴 적 갱티고개 아랫마을에서 살아 주변 지리에 밝다는 정황이 추가됐다. 초기 수사에서 발견하지 못한 용의자가 새롭게 떠오른 것이다.
동종전과자 추적은 각종 사건 수사의 기초로 알려져 있다. 살인이나 강도의 경우 용의선상에 오를 만한 동종 전과자가 많지 않기에 초기 수사 대상에 올렸다면 범인 검거에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참고인 조사 당시 A씨는 이미 전과가 있었다.
더욱이 갱티고개는 아산지역 주민들에게도 널리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유명해졌을 뿐이다. 즉, 유기장소 인근에서 살았던, 지역지리를 잘 알고 있는 참고인을 용의선상에서 배제했다는 사실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결국, 경찰은 DNA와 이해관계 여부에만 몰두, 허술한 수사를 벌였다는 비판을 받게 됐다.
사건을 담당한 아산경찰서 관계자는 “초기 수사 당시에는 피해자와의 이해관계, 금전관계, 원한관계가 있는 주변 인물을 용의선상에 올렸다”며 “통신기록 1만7000여 건을 수작업으로 분석하다 보니 용의 선상에 오른 인물을 위주로 수사를 진행했다. 당시에는 A씨가 피해자와 관계가 없어 주목받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 새롭게 떠오른 공범의 존재
붙잡힌 A씨는 경찰 조사에서 피해자를 직접 살해한 것은 폐기물처리업체에서 함께 일했던 밀입국 조선족 B씨(당시 20대 후반 추정)라며 공범의 존재를 주장했다.
A씨의 진술에 따르면 당시 회사를 그만두고 B씨와 여관 등을 전전하던 그는 유흥비 및 생활비 마련을 목적으로 강도를 계획했다. 그들은 평소 자주 이용하던 노래방의 여주인을 표적으로 삼았다. 범행당일 그들은 날카로운 흉기도 준비했다.
용의자 A씨(모자, 검은색 후드)가 피해자 사체를 유기한 장소 앞에서 경찰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노래방 앞 노상에서 기다리던 그들은 술에 취한 채 나오는 피해자에게 접근,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며 피해자의 차에 함께 탑승했다. A씨는 운전석, B씨는 뒷 자석에 타고 피해자는 보조석에 태웠다.
아산시 온양6동 청댕이 고개를 지나던 A씨와 B씨는 돌변, A씨는 피해자의 목에 흉기를 겨누고 B씨는 주먹으로 폭행하며 돈을 요구했다. 피해자는 가지고 있던 현금 30여만 원과 체크카드, 카드 비밀번호를 넘겼다.
목적을 이룬 이들은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할 것을 염려해 살인을 결심했다. B씨는 안전띠로 피해자의 목을 졸랐다. A씨는 운전을 하며 발버둥 치는 피해자의 옆구리를 가격하고 팔을 붙잡아 움직이지 못 하게 했다. 사체 발견 당시 피해자의 갈비뼈는 부러져 있었다.
이들은 피해자의 시신을 갱티고개 정상 인근 야산으로 옮겼다. 피해자가 다시 깨어날 것을 두려워한 B씨는 흉기로 피해자 목을 훼손하고 시체를 골짜기로 밀었다. 사체유기 후 이들은 피해자의 차량을 버리고 도주했다.
그러나 경찰은 아직 공범의 실존여부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A씨가 다녔던 폐기물처리업체에는 조선족 근로자가 있었지만 A씨가 말한 이름과는 달랐다. 또한 밀입국자였는지도 파악되지 않았다.
아산경찰서 양광모 수사과장은 “공범이 있다는 A씨의 진술에 신빙성은 있다”면서도 “아직 공범이 중국인 인지는 특정할 수는 없다. A씨를 상대로 거짓말 탐지기를 사용할 의사는 있다”고 밝혔다.
# 2건의 갱티고개 살인사건, 용의자는 다르다?
A씨가 살해한 노래방 업주의 사인은 다발성 경부절창으로, 목이 졸려 가사상태에 빠진 뒤 흉기로 목이 베였다.
노래방 업주의 사체가 발견된 지 불과 3개월 뒤인, 2002년 7월 갱티고개에서 또 다른 40대 여자의 사체가 발견됐다. 7월에 발견된 사체의 사인은 경부압박질식사였다. 이번에도 목이 졸려 가사상태에 빠져있다 차량에 밟혀 살해됐다. 살해수법의 유사성과 가까운 장소에 유기됐다는 점으로, 동일범의 범행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A씨는 2002년 7월 갱티고개에서 발견된 또 다른 40대 여자 사체의 범행은 자신이 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경찰도 아직 7월 사건의 사체와 A씨와의 연관성을 찾지 못했다. 또한 7월 사건에 대한 진전된 수사결과도 내놓지 못했다. 7월 사건은 여전히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다.
경찰은 A씨의 여죄를 조사하는 한편, 공범 B씨의 존재여부를 파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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