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우월주의 표방…남성 게이머와 거친 설전…성희롱 노출 여성들 “완전 사이다야”
‘여성우월주의’ 유튜브 스트리머이자 오버워치 게이머인 ‘갓건배’의 동영상 리스트. 유튜브 화면 캡처.
인기 온라인 게임 <오버워치> 여성 게이머이자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서 게임 방송 진행자(스트리머)로 활동하고 있는 ‘갓건배’는 <오버워치> 유저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닉네임이다. 페미니스트가 아닌 ‘여성우월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갓건배는 남성 게이머들에게는 ‘공공의 적’으로, 여성 게이머들에게는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주는 ‘사이다 게이머‘로 이름이 높다.
주로 <오버워치>에서 게이머로 활동하고 있는 갓건배는 남성 게이머들과의 설전으로 유명세를 얻었다. 대부분의 온라인 게임이 그렇지만 <오버워치>는 남성 게이머들의 이용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여성 게이머들도 간간이 찾아볼 수 있으나 이들은 철저하게 자신의 존재를 감추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여성이라는 점이 밝혀지면 남성 게이머들에게 성희롱이나 모욕적인 발언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갓건배처럼 유튜브 스트리머이자 <오버워치> 게이머였던 또 다른 여성이 자신이 게임 상에서 여성임이 밝혀진 순간 들었던 모욕 발언을 그대로 방송해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줬다. 이 여성은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눈물까지 보였다. 영상을 본 여성 시청자들도 “나도 게임을 하면서 이런 일을 겪고 너무 우울해서 PC방에서 울었다” “이렇게까지 게임을 해야 하나,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내가 피해야 하나 싶었다” 등의 공감 댓글을 이어갔다.
‘오버워치’의 제작사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성희롱 제재 요청글.
갓건배의 주력 게임 방송의 주제는 ‘남혐’이다. 여성 게이머들이 그동안 겪어왔던 심각한 성적 혐오 발언이나 모욕적인 발언을 그대로 되돌려 주는 방식으로 방송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남성 게이머들의 “게임도 못하는 여자는 XX감으로밖에 쓸모가 없다” “여자는 게임을 하지 말고 나랑 XX나 하자”라는 발언에 “남자가 조신하게 게임이나 해야지 어딜 XX란 말을 하냐” “XX도 작은 게 게임도 못하면 어떡하냐”라고 천연덕스럽게 되받아치는 식이다. 이런 발언에 남성 게이머들이 적절한 대꾸를 하지 못하고 당황하는 상황에서 여성 게이머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한편에서는 갓건배가 여성우월주의와 남혐을 표방하고 있다는 이유로 2014년~2016년 득세했던 강경 여성우월주의 커뮤니티 ‘메갈리안’이나 ‘워마드’ 소속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갓건배가 유튜브 스트리머로 활동한 것은 메갈리안과 워마드가 모두 와해된 후인 지난해 12월부터였으며, 인기몰이를 한 것은 지난 3월부터이므로 시기상으로 맞지 않는다. 다만 갓건배의 발언 등에서 미뤄 짐작하기로는 이들 커뮤니티로부터 어느 정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갓건배가 여성 게이머들을 대변하다보니 그에 대한 지지층은 견고하다. 갓건배의 방송 시청자 수는 다른 메이저급 스트리머에 비하면 적은 1만 1700명가량이지만 압도적인 단결력을 자랑한다.
실제로 지난 4월부터 최근까지 이어진 갓건배와 또 다른 스트리머 ‘노래하는 코트’의 맞불 방송에서 그 힘이 제대로 드러났다. 맞불 방송은 주로 남형과 여혐을 둘러싼 분쟁을 다룬 내용이었다. 방송 때마다 갓건배 시청자들의 단결력과 폭발적인 후원금이 노래하는 코트의 방송을 압도했다.
지난 4월부터 갓건배와 남혐, 여혐 분쟁이 붙었던 유명 스트리머 ‘노래하는 코트’가 방송에서 갓건배를 언급하지 않겠다는 공지를 올렸다. 유튜브 화면 캡처.
심지어 후원금이 거의 모이지 않는 노래하는 코트의 방송에 갓건배 방송 시청자들이 몰려가 조롱의 의미로 소액의 후원금을 투척하는 상황까지 연출되자 결국 노래하는 코트가 백기를 들었다. 지난 7월 10일 방송에서 공식적으로 “더 이상 방송에서 갓건배를 언급하지 않겠다”고 언급한 것. 노래하는 코트가 백기를 든 10일 갓건배의 방송에선 후원금이 300만 원이나 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누구나 접근 가능한 게임의 음성 채팅 기능이나 유튜브 방송을 통해서도 다소 과격한 말을 사용해 미성년자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비판도 높다. 그러나 갓건배를 옹호하는 측은 “그런 점을 지적할 것이라면 모든 유튜브 스트리머와 남성 게이머들을 제재해야 할 것”이라고 응수했다.
한 여성 <오버워치> 게이머는 “게임을 하면서 음성 채팅 기능을 켜면 실력과 상관없이 여자라는 이유로만 욕을 먹어야 했다. 게임 공식 커뮤니티에 제재해달라고 하소연해도 누구도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았다”라고 지적하며 “그런 가운데 우리가 여태까지 듣기만 하고 돌려주지 못했던 말들을 갓건배가 해주니 속이 시원할 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여성 게이머도 “이제까지 여성 게이머들이 (모욕적인 발언으로) 힘들다고 자제해달라고 해도 들어준 남성 게이머들이 있었나”라고 반문하며 “갓건배의 방송 덕분에 요즘은 음성 채팅에서 불쾌한 발언을 하려는 남성 게이머들을 다른 남성들이 나서서 막아준다. 아무래도 여성 게이머들이 불쾌해하는 남성들과 자신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남성들로 보이는데 이런 자정작용에 갓건배의 노고가 컸다고 본다”고 말했다.
물론 미러링 자체에 대한 비난 여론도 있다. 남성 게이머의 잘못된 행위를 또 다시 잘못된 행위로 되갚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남성 게이머는 “이로 인해 남성 게이머들의 성희롱과 모욕적인 발언에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며 “갓건배의 행위에 여성 게이머들이 환호한다면 반대로 남성 게이머들의 행위가 다시 이에 대한 미러링이 될 수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놨다.
게임 관계자들 사이에선 “가장 중요한 부분은 게임 제작사와 유튜브가 이런 발언과 행위에 대해 명확한 규제를 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8월부터 끊임없이 여성 게이머들이 남성 게이머들의 성희롱과 모욕적인 발언에 대해 관리자가 직접 제재할 것을 요구해 왔으나 이에 대한 마땅한 대처 방안을 마련하지 않아 빈축을 샀다. 반대로 남성 게이머들이 갓건배에 대한 신고를 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서도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유튜브 역시 마찬가지다. 한 업계 관계자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어느 한쪽만을 제재할 수는 없기 때문에 사측도 반응을 지켜보는 것 같다”라고 귀띔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