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체제’ 탄생 신호탄…현정부 ‘일자리 늘리기’ 적극 협조…신동주와 화해의 전기 마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 5월 23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기업 592억 원 뇌물관련 첫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현장풀.
신동빈 롯데 회장의 집무실과 거주지도 롯데월드타워에 마련될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에 따르면 신 회장은 18층에 집무실을 두고, 복층 레지던스인 70~71층에는 주거 용도로 입주해 이른바 ‘수직 출퇴근’을 한다. 여기에 신 회장이 공언한 경영쇄신안에 따라 신설된 경영혁신실(옛 정책본부), 컴플라이언스위원회, 사회공헌위원회, 유통·호텔·식품·화학 4개 BU(비즈니스 유닛) 등 핵심 조직이 모두 입주하면 롯데월드타워 일대가 ‘타운화’된다는 것이 롯데의 설명이다.
이 경우 롯데의 기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온 소공동 본사는 그 영향력을 잃는다. 소공동 롯데호텔 34층을 집무실 겸 주거지로 써온 신 총괄회장도 마찬가지다. 롯데는 롯데월드타워 108~114층에 신 총괄회장의 새 주거지를 마련한다는 계획이지만 95세로 워낙 고령인 데다 소공동에 애착이 큰 신 총괄회장이 이주에 동의할지는 미지수다. 이미 한·일 롯데 지주사 격인 일본 롯데홀딩스는 지난 6월 24일 주주총회에서 신 총괄회장의 이사직 퇴진을 의결했다.
잠실 본사 이전은 ‘신격호 체제’가 저물고, ‘신동빈 체제’가 탄생했음을 알리는 신호로 풀이된다. 재계 관계자는 “롯데월드타워가 신 총괄회장의 숙원사업이었는데 본인이 그 영광을 누리지 못하는 아이러니”라고 했다. 롯데월드타워 신축 과정에서 신 회장은 인근 고도 제한 등을 우려해 60~70층 수준으로 설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신 총괄회장은 123층 높이를 고집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박근혜 정부 당시 롯데는 형제간 경영권 분쟁에서 촉발된 국적 논란에 휩싸였고, 대부분 오너 일가가 비리 혐의에 연루돼 기소되는 비극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신 회장의 ‘오른팔’과 다름없던 그룹 최고위 임원은 목숨을 잃었다.
서울 송파구 제2롯데월드 타워 전경. 고성준 기자.
롯데월드타워 면세점 인허가 로비 의혹으로 재판 중인 신 회장은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롯데 관계자는 “시점을 보면 정부가 신규 면세 특허 발급을 결정한 이후 독대가 이뤄졌다”며 “뇌물을 제공한 것이 결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롯데가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밉보였다는 것은 거의 정설”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미운 오리’였던 롯데는 문재인 정부 들어 정부 정책에 협조하며 ‘경영 리스크’ 해소에 공을 들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 핵심 공약인 ‘일자리 늘리기’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향후 5년간 신규 인력 7만 명 채용을 공언했다. 신 회장은 지난 5월 그룹 공식 행사에 참석해 “고용이 최고의 복지”라고 말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대선 과정에서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고 한 것에 대한 화답으로 해석된다.
다만 롯데의 신규 채용이 문재인 정부 정책 기조인 ‘중소상공인 보호’와 충돌할 여지는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유통회사가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것은 결국 점포를 더 내겠다는 것”이라며 “백화점 한 곳을 내면 보통 200~300명의 정규직 인력이 충원된다”고 말했다. 또 롯데는 최근 중국 사업에서 입은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시장에 투자하고 있는데 해외 투자는 국내 고용 유발 효과가 적어 내수 증대에 큰 보탬이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은 지난 6월 29일 형인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전격 독대하면서 화해의 전기를 마련했다. 롯데 관계자는 “대화의 물꼬를 텄다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고 했다. 그룹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지주사 전환을 추진 중인 신 회장은 신 전 부회장의 협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현재 롯데의 순환출자 고리는 67개인데 주요 고리마다 신 전 부회장이 지분을 갖고 있어 향후 그룹의 의사 결정을 방해할 여지가 있다. 문재인 정부는 재벌의 자발적인 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촉구하고 있다. 재계 일각에선 계열 분리 가능성까지 언급되지만 롯데 측은 “전혀 실현 가능성 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잠실 시대’를 개막한 신 회장은 안으로는 형을 설득해 지배구조를 강화해야 하고, 밖으로는 정부와 협력하는 한편 진행 중인 재판에선 실형을 면해야 한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지만 사안마다 변화의 전기를 맞았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재계 또 다른 관계자는 “지난 대통령 방미 때 동행하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기다리면 기회는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