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뭐야? 당신 초등학교 4학년 때 글짓기 상장 받은걸 아직도 보관 하셨네”
아내가 노랗게 바랜 상장을 펼쳐보면서 말했다. 상장의 내용은 이랬다.
‘입선장, 위의 어린이는 제1회 소년한국 글짓기 대회에서 제출한 작품이 심사위원의 추천에 의하여 입선하였으므로 입선장을 줌. 1963년10월26일 소년한국일보사 사장 장기영’
오십사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어머니는 여러 번 이사를 다니면서도 반세기 전 받은 아들의 상장하나를 꼭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가 그 상장을 보면서 말했다.
“나는 미술대회에 나가 수없이 상장을 받았어. 그런데 귀찮아서 다 치워버렸어. 이런 걸 도대체 왜 보관하셨을까.”
“그러지 마, 재주 없는 나는 그 흔한 우등상장 하나 받아보지 못하고 그게 내가 받았던 유일한 상장이야. 그러니까 어머니한테는 귀한 보물이지.”
어머니와 아내의 감성에는 차이가 있었다. 누렇게 바랜 종이를 보면서 나는 청록색 안개 낀 시간 저쪽의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열 살 때 삼십대 회사원이었던 아버지는 어린이세계문학전집을 사가지고 와서 읽으라고 했다. 저녁이면 아버지는 다다미방에 엎드려 아버지가 보물같이 여기던 세계문학을 읽었다. 나는 그 옆에서 아버지가 사다준 톰소여의모험이나 아라비안나이트를 읽었다.
아버지는 어린이 문학전집의 글 하나하나를 잘 살피면서 읽으라고 했다. 늦가을의 어느 날 이었다. 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어디론가 갔다. 경기장 스타디움같이 계단식 의자들이 놓여있었다. 앞에는 어린이 글짓기 대회라는 안내판이 걸려 있었다. 대회주최 측에서 제시할 글 지을 제목이 개방되지 않은 채 액자같이 동그랗게 말려 있었다. 나를 데리고 간 아버지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어떤 제목이 나오던 지 원고지에 네 마음을 솔직히 써야 한다. 절대 꾸미거나 그러면 안 돼. 네 마음이 나와야 해. 알았지?”
“알았어.”
그 어린이 글짓기 대회에서 나는 입선을 했던 것이다. 시상식이 있던 날이다. 특선을 한 아이들에게는 국어사전이 상품으로 주어졌다. 입선을 한 나는 메달 하나였다. 국어사전이 가지고 싶었는데 실력이 모자서 그걸 얻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 초등학교 타본 유일한 상장이었다.
어머니가 그걸 나이 구십까지 보물같이 항상 가지고 다닌 것이다. 나이 육십 대 중반인 지금까지 그럭저럭 글과 인연이 있는 것 같다. 삼십대 중반 ‘월간조선’과 ‘좋은 생각’이라는 잡지에 수필을 쓰기 시작하면서 30년간 일간지 주간지 월간지에 컬럼을 써왔다. 단편소설을 써서 문학지에 게재하기도 하고 장편소설을 써서 몇 권의 소설책을 쓰기도 했다. 상복이 없는 건 타고난 운명 같다. 나를 추천해 등단시킨 원로소설가 정을병 씨는 이렇게 말했다.
“엄 변호사는 상을 타려 고는 하지 마요.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게 문학계풍토요. 나중에 글 쓰는 사람들한테서 ‘법정소설 나부랭이나 쓰는 놈’이라는 소리가 나오면 그게 최대의 상으로 생각하면 맞을 거요.”
나는 지금도 열 살짜리 꼬마 손을 잡고 하던 아버지의 말을 기억한다. 정직한 마음을 원고지 위에 그대로 올리라고 했다. 어머니는 별 재주도 없는 아들의 ‘입선장’을 평생 보물로 간직하다 돌아가셨다.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