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여인’ 동밍주 회장 “싸게 팔지 마” 유통업체에 경고
거리전기의 최신형 에어컨. 사진=거리전기 홈페이지
[비즈한국] 에어컨의 계절이다. 그렇다면 에어컨 판매 전 세계 1위 기업은 어디일까. LG ‘휘센’을 떠올렸다면 그것은 옛날 광고의 기억이다. 최근에도 그 광고를 본 기억이 있다면, 그것은 제습기와 착각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더더욱 아니다. 정답은 중국 에어컨 전문 가전기업 ‘거리(格力)전기’다.
# ‘철의여인’ 동밍주 회장 성공 신화
거리전기는 1991년 중국 광둥(廣東) 주하이(珠海)시에서 직원 200명, 연간 생산량 2만 개에 불과한 작은 생산공장에서 출발했다. 이후 성장을 거듭해 5년 만에 서전(深淺) 증권거래소에 상장해 자본력을 축적하고, 2002년부터 9년 연속 중국 에어컨 판매 1위를 차지하며 승승장구한다. 급기야 2009년에는 LG전자와 공동으로 세계 최대 가정용 에어컨 제조업체에 등극한다. LG전자가 세계 1위를 내주며 역전당한 시점이기도 하다.
거리전기 급성장을 얘기할 때 동밍주(董明珠) 회장을 빼놓을 수 없다. 동밍주 회장은 회사 설립 초창기 말단 영업사원으로 시작해 저돌적이고 화끈한 영업 능력을 인정받아 CEO(최고경영자)까지 오른 입지적인 인물이다. 2004년부터 무려 10년간 <포춘>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사업가 50인에 들었으며, 2003년에는 세계화교여성기업회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중국 비즈니스 우먼에 선정되기도 했다.
중국을 대표하는 여성 CEO이자 철의 여인으로 통하는 동밍주 거리전기 회장. 사진=거리코리아 홈페이지
동 회장을 둘러싼 전설적인 일화는 무수히 많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일화가 바로 ‘안휘성 전투’다. 35세에 말단 영업사원으로 거리전기에 입사한 그녀는 안휘성에 있는 한 유통업체로부터 에어컨 납품대금 42만 위엔(약 7000만 원)을 떼일 위기에 처하자 돈을 회수하기 위해 파견된다.
그녀는 돈을 받을 때까지 그 업체 사무실에서 무려 40일간 숙식을 하며 완강히 버텼다. 그러던 중 그 업체가 대금을 지불하지 않은 이유가 에어컨을 한 개도 판매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심지어 일부러 창고에 쌓아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처음부터 에어컨을 떼어먹을 심산이었던 것이다.
동 회장은 그 업체에 더 잘 팔리는 신형 에어컨으로 바꿔 주는 조건으로 창고에 있는 에어컨을 돌려달라고 협상했다. 그 업체는 다시 한 번 사기를 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인지 협상에 응했다. 이에 동 회장은 5톤 트럭을 동원해 조수석에 타고 에어컨을 차에 싣자마자 무려 1000km 이상 떨어진 주해 본사로 곧장 내뺐다. 그 업체에 다시는 거래하지 않겠다는 말을 남긴 채 말이다.
# 중국산은 싸서 잘 팔린다…거리전기는 달랐다
동 회장은 중국 가전 유통시장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당시 중국에서는 물건을 먼저 납품하고 판매가 어느 정도 이뤄진 다음 대금을 정산하는 방식이 관행으로 굳어져 있었다. 입사 4년 만인 1994년 영업이사 자리에 오른 그녀는 밀린 미수금 60억 원을 받아냈을 뿐 아니라, 돈을 먼저 받기 전까지는 제품을 납품하지 않겠다는 정책을 밀어붙였다.
대신 납품한 에어컨 판매가 늘어날 경우 유통업체에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이러한 그녀의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매출은 전년 대비 무려 130%가 증가했고, 유통업체와의 매출 채권은 하나도 없었다. 결국 그 이듬해에 거리전기는 중국 서전거래소에 상장한다.
중국 가전업체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은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빠르게 성장하는 내수시장을 공략해 덩치를 키웠을 뿐, 기술력은 보잘 것 없다는 시각이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거리전기는 오히려 반대의 전략으로 성공했다. 당시 중국 에어컨 시장은 매년 두 배씩 급격하게 성장했다. 중국의 도시화가 빠르게 이뤄지면서 에어컨 수요가 크게 늘었던 것이 주요한 요인이다. 당연히 치열한 가격 경쟁이 이어졌다.
동밍주 회장은 과도한 마케팅과 출혈 경쟁 대신 품질을 높이고 입소문 마케팅을 즐겨 사용했으며, 가격 인하에 대해 항상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사진=거리전기 홈페이지
하지만 동 회장은 “가격 경쟁을 하면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것은 제조업체”라며 “수준 이하의 부품을 사용해서 저렴하게 판매했다가 제품이 고장 나면 그것을 누가 고치느냐”고 강경하게 나갔다. 그리고 일단 유통업체에 가격을 절대 인하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대신 각 성에 직접 운영할 판매회사를 설립하고 다른 유통업체들을 인수하기 시작했다. 유통망을 최대한 장악하고, 이를 따르지 않는 대형 유통업체에는 제품 공급을 중단하는 초강수까지 뒀다.
도박에 가까운 그녀의 승부수는 적중했고 매출은 전년 대비 더욱 늘었다. 결국 동 회장은 2001년 최고 경영자 자리에 오른다. 그 과정에서 미데아, 하이얼 등 수많은 공룡 기업들이 등장했지만 거리전기의 매출은 그녀가 CEO에 오른 뒤 무려 6배가 늘었다.
거리전기가 살벌한 중국 내수시장에서 가격 경쟁에 뛰어들지 않은 자신감은 품질에서 나온다. 다른 경쟁업체들이 매출의 5~20%를 마케팅 비용으로 쏟아 부을 때, 거리전기는 1% 미만을 사용했다. 대신 연구 개발 비용을 아끼지 않았다. 주장훙(朱江洪) 거리전기 창업자 2001년 일본에서 기술을 도입하려다 실패한 다음 “핵심 기술이 없는 기업은 척추가 없는 것과 같다”며 “척추가 없는 사람은 결코 일어설 수 없다”고 말했다.
# 성장 한계, 스마트폰 전기자동차 ‘쓴맛’
거리전기 역시 커다란 도전에 직면에 있다. 에어컨을 중심으로 소형 가전만 생산하던 이 기업은 성장에 한계를 느끼고 새로운 사업 아이템으로 스마트폰과 전기 자동차를 선택했다. 스마트폰 사업은 재미를 보지 못했고, 2조 원을 투자해 전기자동차 기업을 인수하려 했지만 주주들과 내부 반대에 부딪쳐 무산됐다.
설상가상으로 동밍주 회장은 인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그룹 총회장직에서 물러나 현재 거리전기만을 이끌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전기가 여전히 중국 가정용 에어컨 시장에서 점유율 40%를 차지하며, 세계 최대 에어컨 기업이라는 사실은 흔들림이 없다.
봉성창 비즈한국 기자 bong@bizhankook.com
※이 기사는 축약본으로, 비즈한국 홈페이지(‘LG 아니었어?’ 중국 에어컨은 어떻게 세계 1위가 됐을까)에 가시면 더욱 자세한 스토리를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