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결단 내리면 경영권 흔들릴 수도”
지난 17일 국회에서 열린 최종구 금융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행 보험업법이 삼성의 금융계열사에 유리하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직권으로 보험업감독규정 개정에 나서면 삼성생명은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주식 수조 원어치를 팔아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수도 있다. 사진은 지난 17일 금융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질의응답하는 모습.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박 의원은 “자산 운용비율을 산정할 때 은행, 증권 등 다른 금융업권이 총자산을 공정가액(시가)으로 하는 것과 달리 유독 보험업권은 취득 원가를 평가 기준으로 적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른 업권은 자산평가를 공정가액(시가) 기준으로 하는데 유독 보험만 취득 원가로 하는 것은 이상하다”며 “현행 보험업법의 혜택을 받는 보험회사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라고 꼬집었다.
그가 유독 삼성 금융계열사들을 문제 삼는 이유는 이렇다. 현행 보험업법은 보험사가 보유한 대주주나 계열사의 유가증권 비중이 전체 자산의 3%를 넘지 못하도록 자산운용을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유가증권 비중을 계산할 때 분자는 취득 원가로, 분모는 시가로 계산하는 ‘예외적’ 방법을 허용해 보유할 수 있는 유가증권이 대폭 늘어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도록 했다.
보험업에만 독특한 규정이 적용되고 있는 것은 사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보험은 대부분 장기 고객이니만큼 이들의 자산을 장기간 안정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다.
증권업의 경우 상당수 고객이 단기 투자자고, 은행 역시 정기예적금 고객이 5년 미만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보험의 경우 종신보험이나 사망보험 등 길게는 수십 년 가입하는 고객이 많다. 보험사는 고객들에게 받은 보험료를 자산으로 삼아 장기간 운용해야 하는데, 주식의 경우 수시로 변하는 시가를 일일이 반영하면 고객의 자산 역시 주가에 따라 요동치는 상황이 발생해 혼란을 줄 수 있다. 반면 취득 시점의 원가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바뀌지 않기 때문에 안정적인 자산평가가 가능하다.
문제는 이로 인해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 7.21%를 보유하게 됐고,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됐다는 점이다. 삼성생명은 1분기 말 기준 삼성전자 주식을 1062만여 주(7.21%)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취득 원가(약 5만 3000원)로 계산하면 5690억 원 규모에 불과하다. 계열사 주식 보유 비중이 삼성생명 총자산(268조 4000억 원)의 3%가 넘지 않아 현행법을 위반하지 않는다. 삼성전자의 현재 시가가 200만 원을 넘나드는 점을 감안하면 다른 업권보다 약 40배의 주식 보유를 허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타업권과 마찬가지로 1060만여 주 평가 기준을 시가로 바꾸면 전일 종가(253만 2000원)로만 26조 8000억 원에 달한다. 이는 총자산 대비 9.9%다. 시가 기준 3% 미만으로 보유하려면 삼성전자 주식 약 18조 7000억 원어치를 처분해야 한다.
삼성생명 서초사옥 전경. 고성준 기자
논란의 핵심은 이 규정 덕에 계열사 주식 보유 한도를 넘기지 않는 보험사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는 박 의원이 “오직 삼성 총수 일가의 지배구조를 공고히 하는 데만 도움이 되는 법이며 금산분리의 원칙에도 위배된다”고 주장한 근거이기도 하다.
삼성 측이 긴장하는 이유는 이 문제를 금융위원장이 직권으로 개정할 수 있는 보험업감독규정만 바꾸면 해결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금융위는 그간 보험사 특유의 장기투자 문화와 해외 사례를 들어 개정을 미뤄왔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최종구 신임 금융위원장이 청문회 과정에서 이 문제에 관해 여당 측의 압박을 받은 상황이니만큼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점치고 있다. 게다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취임 후 첫 과제로 재벌개혁에 과감히 나서고 있다는 점도 최 위원장에게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최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대기업 지배구조에 특혜를 주는 듯한 정책에 대해 “금융위가 나쁜 짓을 했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최 위원장은 일단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는 청문회에서 “규정을 바꾸는 건 가능하지만 그로 인한 영향력을 감안하면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며 “논의 과정에서 이러한 내용들을 감안해 상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보험업 규정 개정으로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처분해야 할 경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이 크게 약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20조 원에 달하는 삼성전자 주식을 살 만한 삼성 계열사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그룹 내에서 이 같은 역할을 해줄 회사는 사실상 삼성물산밖에 없는데, 자금 동원력도 문제지만 만약 이 물량을 사들일 경우 공정거래법에 따라 지주회사로 전환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는다. 최종구 위원장이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한 것은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금융권의 해석이다.
금융권 한 고위 관계자는 “규정이 개정될 경우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을 대부분 제3자에게 매각해야 할지도 모른다”면서 “이 경우 삼성의 경영권이 흔들릴 위험이 높은데, 금융위원장이 직권으로 이런 결단을 내리는 것은 상당한 모험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