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 개인 비리 수사는 장기적 호재일 수도…“수사 대상을 잘 보라” 조언
검찰이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협력업체를 압수수색하는 모습(왼쪽)과 한국거래소 시황판. 사진=연합뉴스·박은숙 기자
6만 2300원(7월 14일 종가)에서 4만 7950원(7월 18일 종가)까지. 최근 나흘 만에 30% 가까이 주가가 떨어진 곳은 바로 한국항공우주사업(KAI). KAI를 덮친 악재는 방산비리 관련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의 전격 압수수색이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첫 사정수사라는 타이틀 속에 검찰은 강도 높은 수사 의지를 거듭 밝혔고, ‘수리온’ 등 KAI의 핵심 장비 부품 문제까지 거론되며 주가는 속수무책으로 떨어졌다.
논란을 의식한 검찰은 “기업에 미치는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면서도 KAI 협력업체에 이어 KAI 본사에 대한 2차 압수수색에 나섰는데, 다행히(?) 주가는 바닥을 찍은 모양새다. 검찰의 KAI 추가 압수수색 소식에도 KAI 주가는 5만 1800원(7월 27일 종가 기준)까지 회복하며, 18일 종가 대비 8% 오른 상태로 거래를 이어가고 있다.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지난해 여름, ‘최강 화력’이라고 불리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3곳을 동원한 검찰의 수사를 받아야 했던 롯데그룹. 28만 원까지 거래되던 롯데쇼핑의 주가는 검찰 수사라는 악재 속에 19만 1000원(2016년 7월 29일 종가)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1년 사이 주가는 제자리를 되찾았다. 성주 롯데골프장 매각에 따른 사드 보복까지 잦아든 분위기 속에 주가는 68% 오른 32만 2000원까지 치솟았고, 최근 조금 주가가 떨어졌지만 28만 7500원(7월 27일 종가) 거래를 마치며 검찰 수사 전 흐름을 완전히 되찾은 분위기다.
KAI나 롯데처럼 검찰 수사 대상 기업의 주가는 수사 돌입 직후 거의 대부분 급락하는데, 법조계에서는 ‘기업을 향한 검찰 수사는 장기적으로 호재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기업 수사통으로 불리는 특수부 부장검사의 설명이다.
“우리는 절대 (검찰 수사로) 죽을 기업은 건드리지 않습니다. 검찰이 국가 경제 성장에 이바지해야 하는 기업을 잘못 건드렸다가 망하기라도 하면, 그 비난을 우리(검찰)가 져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건드려도 망하지 않을, 그러면서도 기업 오너의 비리가 확실히 보이는 곳만 수사 대상으로 꼽습니다.”
실제 지난 박근혜 정부하에서 검찰이 수사 대상으로 올렸던 곳(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관련 기업 제외)을 살펴보면 그의 같은 설명이 더욱 힘을 받는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관련, 현대건설 등 건설사를 필두로, 효성과 농협, 오리온, KT&G, 동국제강, 대우조선해양, 롯데그룹, 부영그룹, 네이처리퍼블릭 정도가 지난 정부에서 검찰 수사를 받았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부도날 위기에 처할 정도로 궁지에 몰렸던 상황은 아니었다.
앞서의 부장검사는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실을 비롯, 여기저기서 들리는 각종 기업 오너들의 비리를 시작으로 수사 대상을 고르지만 빠른 속도 성장하고 있는 기업은 가급적이면 더 지켜봤다가 수사 대상으로 선정한다”며 “검찰의 수사는 기업에 일시적으로는 악재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 강조했다. 기업 오너의 횡령과 같은 비리를 검찰이 털어내는 게 기업 가치에는 더 좋다는 주장이다.
“기업 오너는 통상 회사가 정상적으로 취해야 할 거래금액 중 일부를 빼돌리는 방법으로 비자금을 만듭니다. 근데 검찰 수사라는 외부의 칼로 오너 일가의 비리를 처벌하면 오너 일가는 그런 부분을 깔끔히 정리하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처벌이 끝나고 나면, 정당하고 깨끗한 방법으로 돈을 받아가게 되죠. 당연히 기업 가치에는 긍정적이지 않겠습니까?”
특수 수사 전문 다른 검사도 같은 맥락의 주장을 펼쳤다.
“기업 오너가 구속되거나 재판을 받게 되면, 그 과정에서 문제가 있는 기업 내부의 다른 문제들도 한꺼번에 손보려 하는 게 일반적이다. 검찰 수사를 만나면 기업 스스로 한 차례 내부 정비할 수 있는 모멘텀이 되기 때문에 검찰 수사를 꼭 악재로만 볼 필요는 없다.”
실제 롯데 외에 지난해 검찰 수사를 받았던 곳도 일정 기간 후 주가를 회복하는 흐름을 보여줬다. 장세주 전 회장의 비자금을 향한 검찰 압수수색 소식과 함께(2015년 3월 30일) 주가가 순간 6.7% 하락(5880원)했던 동국제강은 1달 만에 7000원 대를 회복(4월 16일 7140원)했다. 비슷한 시기 검찰 수사를 받았던 포스코그룹 역시 압수수색 소식과 함께 포스코ICT, 포스코강판 등 계열사의 주가가 6~8%씩 급락했지만, 이후 한 달 만에 기존 주가를 모두 회복했다.
하지만 ‘어떤 범죄 혐의로 검찰 수사를 벌이는지도 지켜봐야 한다’는 게 검찰 특수통 출신 변호사의 조언이다.
“기업 오너의 횡령과 같은 범죄는 2~3주면 끝날 수사이기 때문에 단기간에 악재를 털 수 있지만, 기업이 추진하는 핵심 사업 전체 과정에 대한 수사는 길게는 2~3개월도 이어질 수 있고 이 과정에서 다른 사업 영역에서의 추가 범죄가 발견돼 수사가 더 길어질 수 있다. 검찰이 어떤 범죄 혐의로 기업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잘 알아야 한다.”
최민준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