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만 비즈니스석’ 논란…‘회장 호화 취임식’ 구설수도
2017 그랑프리 세계여자배구대회 2그룹 결선라운드에 진출한 여쟈배구 대표팀. 연합뉴스
[일요신문] 대한민국 여자배구 대표팀이 지난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이후 첫 국제대회인 ‘2017 그랑프리 세계여자배구대회’에서 결선 라운드에 진출하며 선전했다. 약 1년 만에 열린 국제대회에서 대표팀은 호성적을 거두며 이제 우승까지 바라보고 있다. 실제로 대표팀은 불가리아, 폴란드, 수원을 오가는 예선 리그에서 전체 12개 팀 중 1위(8승 1패)를 차지한 바 있다. 예선 리그의 마지막 결전지인 수원실내체육관에서는 만원 관중이 몰리며 한국 배구의 위상을 다시 한 번 확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선수들을 지원하는 대한배구협회가 갖가지 구설에 올라 모처럼 달아 오른 배구 열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어 아쉬움을 주고 있다. 어찌된 영문인지 그 내막을 들여다봤다.
김연경이라는 월드스타를 보유한 대한민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그동안 세계무대에서 꾸준히 상위권 성적을 내왔다. 그럼에도 이번 대회를 앞두고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효희, 남지연, 황연주 등 지난 몇 년간 대표팀서 손발을 맞춰온 베테랑선수들이 빠졌기 때문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각 포지션(세터, 리베로, 라이트)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맡아오던 선수들이었다. 특히 세터 포지션을 두고 우려가 많았다. ‘배구는 세터 놀음’이라는 말이 있듯이 세터가 배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세대교체가 진행 중인 대표팀에 부상이 연이어 발생하기도 했다. 이전부터 대표팀에 드나들던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자매는 부상으로 소집조차 되지 못했다. 14명의 대표팀 명단이 발표된 이후에도 부상은 이어졌다. 강소휘가 황민경으로 교체된 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배유나와 이소영이 연이어 무릎 수술을 받아 대표팀에서 하차했다. 결국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홍성진 감독은 14명을 등록할 수 있는 대회에 2명이 빠진 채로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최종 엔트리에 포함된 12명 선수들도 크고 작은 부상을 안고 있어 홍 감독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2그룹에 속해 있다는 부담감도 있었다. 대표팀은 지난 2번의 올림픽에서 4강과 8강에 진출해 정상권 전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지난 2년간 그랑프리에 불참해 이번 대회에선 1그룹이 아닌 2그룹에서 대회를 치르게 됐다. 객관적 전력이 떨어지는 2그룹이지만 오히려 그 부분이 부담이 되기도 했다. 선수들과 홍 감독은 한 목소리로 ‘우승’을 외쳤지만 확신은 없었다.
불안감을 안고 지난 7월 4일 1주차 경기가 열리는 불가리아로 떠난 대표팀은 경기를 치르며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홈팀 불가리아에는 접전 끝에 3-2 패배를 당했지만 독일과 카자흐스탄을 상대로 승리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알렸다. 전장을 폴란드로 옮긴 2주차에는 3승 무패 ‘싹쓸이’로 정상 궤도에 오르더니 3주차 수원에서는 3-0 셧아웃으로 3연승을 기록했다. 2주차부터 2그룹 전체 1위에 올라 자리를 끝까지 지켰다.
경기를 거듭할수록 승점은 쌓여갔고, 경기 내용도 좋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표팀의 기존 주축이던 김연경, 양효진 외에도 김희진, 김수지, 염혜선, 황민경 등이 고르게 활약했다. 리베로 김해란도 특유의 끈질긴 수비로 연승을 견인했다.
23일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폴란드전. 선수들이 득점 이후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간 한국 배구는 특정 에이스에게 공격을 몰아주는 ‘몰빵 배구’가 문제로 지적돼 왔다. 공수에서 모두 뛰어난 김연경이 공격 외에도 수비까지 도맡아야 했다. 특히 지난 리우 올림픽에서는 선수들의 리시브 능력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만큼은 문제점으로 지적되던 부분이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다. 다양한 선수들에게 공격이 고르게 분배됐다. 수비적인 부분에서도 황민경, 김미연 등이 역할을 나누며 부족한 부분을 메웠다.
주전 세터로 거듭난 염혜선도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종종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서브가 폭발하며 팀을 도왔다. 지난 7월 21일 카자흐스탄전에서는 서브에이스 8개를 기록하기도 했다.
수원에서 열린 3주차 경기는 한국 배구의 ‘축제’를 방불케 했다. 대표팀은 카자흐스탄, 콜롬비아, 폴란드를 상대로 연이어 3-0 셧아웃을 기록했다. 관중석은 대표팀 경기를 보려는 관중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몰리는 관중에 입석을 포함해 입장권 5500장이 동났다. 대표팀 주포 김연경은 마치 아이돌 같은 인기를 누렸다.
이 같은 활약에도 대표팀은 온전히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다. 선수들을 지원해야 할 대한배구협회가 또 다시 아쉬운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수원시리즈가 성황리에 막을 내린 지난 7월 24일, 배구협회가 국제대회 참가를 위해 해외로 떠나는 남자 대표팀에겐 전원 비즈니스석을 제공하는 반면 여자 대표팀의 경우 선수단 중 절반에는 이코노미석을 제공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키 185cm 이상은 비즈니스로 한다’는 배구협회의 방침은 팬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배구협회 인터넷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항의가 빗발쳤다. 핵심 선수를 대표팀에 보낸 프로 구단도 분통을 터트린 것으로 전해졌다. 26일 결선 시리즈가 열리는 체코 출국을 앞두고 여자 선수단 분위기가 어수선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반쪽 비즈니스석’ 논란은 상황을 보다 못한 IBK기업은행 배구단이 지원금 3000만 원을 내놓기로 하면서 일단락됐다.
과거에도 배구협회는 ‘대표팀 부실 지원’ 논란에 힙싸인 바 있다. 부실 지원 논란은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크게 불거졌다. 대회장에 출입하는 AD 카드가 부족해 김연경이 통역을 도맡아야 했다. 또한 전력분석원이 1명뿐이라 정보전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또한 지난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서 금메달을 따고 인근에서 열린 선수단 ‘김치찌개 회식’은 부실 지원 상황을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배구협회는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열악한 협회 재정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한국배구연맹(KOVO)으로부터 지원금 1억 원을 받았지만 충분하지 못했고, 협회 예산도 충분히 투입되지 못했다는 논리다.
오한남 배구협회 신임 회장의 취임식도 구설에 올랐다. 지난 6월 30일 치러진 선거에서 당선된 오 회장은 7월 25일 취임식을 가졌다. 문제는 취임식이 열린 장소가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호텔이었다는 점이다. 취임식에 사용된 돈은 약 2000만 원선으로 알려졌다. 이는 3명의 선수가 체코 원정에 비즈니스석을 이용할 수 있는 금액이다. 협회는 체코 왕복 비즈니스석이 1인당 660만 원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협회는 논란이 지속되자 26일 취임식이 열린 호텔에서 발행한 청구서를 공개했다. 공개된 금액은 만찬, 음료, 현수막 제작비용을 합해 872만 1200원이었다.
협회의 재정이 바닥난 이유로는 지난 2009년 배구회관 건물 매입이 꼽히고 있다. 협회는 당시 강남구 도곡동에 있는 건물을 매입하려 배구발전기금 70억 원 이외에도 금융기관에서 114억 원을 대출받았다. 이 과정에서 부정이 밝혀지며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이처럼 협회는 100억 원이 넘는 금액을 쏟아 부은 ‘한국 배구의 보금자리’가 있음에도 호텔에서 취임식을 치렀다.
비어있는 V-TOWER 8층.
배구협회가 자리잡고 있던 8층은 현재 비어있는 상태다. 배구회관 안내판.
8층 사무실이 있던 자리는 조금만 손을 본다면 호텔에서 250여 명이 참석한 성대한 취임식은 아니지만 일부 관계자와 협회 식구들이 모여 기념할 수 있는 자리는 만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직접적 비교는 어렵지만 다른 종목의 경우 축구협회는 지난 2013년 정몽규 회장의 취임식을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었다. 김응용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은 지난해 말 선거에 당선된 이후 별도 취임식을 치르지 않았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시무식 할 때 같이 했다. 협회 직원들과 불고기 파티를 했다”고 설명했다. 배구협회의 호화 취임식과는 어쩔 수 없이 비교되는 부분이다.
여자배구 대표팀 선수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들 스스로의 능력으로 위기를 극복해 냈다. 의심의 눈초리가 있었지만 더욱 단단해진 모습으로 결집했고, 호성적으로 이어졌다. 이제는 협회가 나설 차례다. 세계 무대에서 최정상급으로 자리매김한 여자 대표팀의 전력만큼 팬들은 협회의 적극적인 지원이 뒤따르길 바라고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대표팀 붙박이 센터 양효진 “팬들 성원에 없던 힘도 솟아났어요” 국가대표 센터 양효진. 고성준 기자 지난 7월 23일 폴란드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예선을 마무리한 대표팀은 숨돌릴 틈 없이 체코에서 열리는 결선 시리즈에 참가한다. 대표팀은 26일 오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체코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일요신문>에서는 대표팀 출국 전인 24일 밤 팀내 주전 센터로 오랜기간 활약해온 양효진과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체력적으로 힘들다”면서도 “수원에서 많은 팬분들이 오셔서 힘이 됐다”고 말했다. 인터뷰 중에는 양효진의 방에 김연경이 방문하기도 해 여전한 우정을 자랑하기도 했다. 다음은 양효진과 일문일답. ―한국과 유럽을 오가며 9경기를 치렀다. 작은 부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컨디션은 어떤가. “체력적으로 굉장히 힘든 상황이다. 이동도 많았고 경기도 많이 치러서 힘들다. 한국에 도착했을 때는 정말 체력이 고갈되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경기장에 나가니 팬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이 오셔서 놀랐다. 시합 전에는 기진맥진이었는데 경기에서 힘이 났다.” ―세대교체와 관련해 불안한 시선이 있기도 했다. “내외부적으로 우려가 조금 있었다. 세터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는데 (염)혜선이가 잘 버텨줬고 팀워크도 맞아 들어가는 부분이 생겼다. 이미 잘 알고 있는 선수기 때문에 흔들리더라도 서로 커버가 가능하다. 점점 좋아진다는 느낌을 우리 스스로도 받았다. 아직 완전하다는 말은 못하겠지만 도쿄올림픽(2020년)까지 시간이 남았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뭔가를 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여전히 올림픽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정말 올림픽이 대표팀에서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웃음). (김)연경 언니도 그렇고 모두가 올림픽에서 꼭 성과를 내고 싶어 한다.” ―우승에 대한 열망은 드러냈지만 주변의 예상보다 예선전 성적이 더 좋았다. “우승하고 싶다는 생각은 전부터 했다. 말은 쉽지만 유럽팀들을 상대하기가 버겁긴 하다. 다들 쉽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경기를 잘 치렀고 예상외로 전체 1위를 해서 기분 좋았다.” ―수원체육관이 만원 관중을 기록했다(수원은 양효진의 소속팀인 현대건설 홈 경기장). “시즌 때와 다른 기분이 들었다. 대표팀 경기를 수원에서 치르는 건 처음이다. ‘여기가 우리 홈구장이 맞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재밌는 경기였다.” ―본인이나 선수들의 소셜 미디어를 보면 원정경기를 하며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많았던 것 같다. “다른 일로 외국에 잠깐 나가 있어도 한국 생각이 나는데 힘든 여정이라 그런 마음이 더 컸다. 해외에서는 한국과 같은 일상생활을 누리지 못해 답답했다. 한국 음식이 유독 그리웠다. 그런데 한국에 들어와서 수원시 배구협회에서 갈비를 선수단에게 사주셨다. 선수들이 정신을 놓을 정도로 맛있게 먹었다(웃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비즈니스석 관련 보도가 나왔다. 대표팀 분위기는 어떤가. “감독님도 당황하신 것 같다. 선수들에게 말하지 않은 상황에서 기사가 나왔다. 절반만 그렇게 된다는 게 선수들도 민감할 수 있는 상황이다. 다 됐으면 좋겠는데 안돼서 아쉽기는 하다. 정확히 어떻게 진행되는지 몰라 내가 자세히 이야기하기는 조심스럽다(인터뷰 후 26일 비즈니스석 논란은 일단락됨).”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