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연줄’로 금배지 사수 아등바등
▲ 선거법 위반으로 1, 2심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은 김일윤 의원과 의원직을 상실한 이무영 이한정 전 의원(맨위부터 시계방향으로). | ||
지난 11일 창조한국당 이한정 의원(비례대표)과 무소속 이무영 의원(전북 전주 완산갑)이 대법원 확정판결로 의원직을 잃었다. 이한정 전 의원은 창조한국당이 제기한 ‘당선무효소송’에서 패소해 의원직을 상실했다. 이 전 의원은 이미 공천헌금과 학력위조 혐의 등으로 기소돼 1, 2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상태다. 이무영 전 의원은 상대후보에 대한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벌금 300만 원이 확정됐다.
국회의원은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 원 이상이 선고되거나 형사사건에서 금고형 이상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잃도록 규정돼 있다. 그런데 18대 의원 가운데 형이 확정된 이무영, 이한정 전 의원을 제외하고도 선거법 위반 혐의로 1심 또는 2심에서 ‘의원직을 상실하는 형’을 선고받은 경우가 12명이나 된다. 한나라당이 4명으로 가장 많고 친박연대가 3명, 민주당과 무소속이 각각 2명, 창조한국당이 1명이다.
이 가운데 이미 1, 2심에서 의원직 상실에 해당하는 형을 선고받고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의원은 6명이다. 대법원이 형량을 판단하는 곳이 아니라 무죄여부를 판단하는 법률심을 하는 곳인 점을 감안할 때 대법원의 파기환송 결정이 없다면 이들의 형은 2심대로 확정된다. 의원직을 잃을 위기가 코앞에 닥쳐온 의원들은 친박연대 3명, 민주당 2명, 한나라당 1명, 무소속 1명 등이다.
무소속 김일윤 의원(경북 경주)은 금품제공 등의 혐의로 이미 1, 2심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은 상태다. 한나라당 구본철 의원(인천 부평을)과 민주당 김세웅 의원(전주 덕진)도 사전선거운동으로 1, 2심에서 벌금 400만 원과 500만 원을 각각 선고받았다. 이밖에도 친박연대 서청원 김노식 양정례 의원(이상 비례대표) 등 3명도 1, 2심에서 공천헌금 수수 혐의로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치열한 공천경쟁과 선거전이라는 악전고투 끝에 금배지를 달았다가 1년도 안돼 의원직을 상실할 위기에 처해진 이들 의원들의 생존전략 중 하나는 고위법관 출신인 이른바 전관변호사 구하기다. 특히 1, 2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은 의원들 가운데 대법원 확정판결을 앞두고 전직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을 선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력을 허위로 선거공보에 올린 혐의를 받는 구본철 의원은 손지열 변호사를,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기소된 김세웅 의원과 김일윤 의원은 박재윤 변호사를 선임했다. 지난 2000년 대법관이 된 후 2006년 7월 함께 퇴임한 박재윤 손지열 변호사는 가장 최근에 대법관에서 물러난 케이스다. 의원들이 이른바 ‘전관예우’를 기대하며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선임한 것으로 보인다.
1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받은 의원들 가운데 상당수도 이들처럼 대법관 출신이나 고법원장이나 법원 고위직 출신 변호사들을 물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대법관 등 법원 고위직 출신 전관 선임비용은 거액으로 알려져 있다. 이 비용에 대해서 해당 의원들은 쉬쉬하고 있지만 주변 의원들은 성공사례비를 포함하면 3억 원이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나라당 한 의원은 “17대에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 상실형을 받았다가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수임해 의원직을 지킨 의원이 3억 5000만 원을 썼다고 말한 것을 들었다”며 “18대에는 오르면 올랐지 내려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다보니 선거법 위반 의원들 가운데 거액의 수임료를 마련하기 어려운 젊은 초선의원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한 초선 의원은 “선거법 위반 혐의가 가볍다고 판단해 아는 변호사에게 변론을 맡겼는데 1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받았다”며 “2심에서는 재판장과 같이 일했던 전관을 쓰라고 주변에서 하도 권해서 알아봤는데 고가의 수임료 때문에 이마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위기’의 의원들이 법원 고위직 출신 변호사를 선임하려는 것은 이들의 법원 인맥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실제로 상당수 의원들은 선거재판과 관련해 재판부와 안면이 있는 전관 변호사를 어떻게든 구하려고 백방으로 수소문하기도 한다. 다른 형사재판과 달리 선거법 재판에 이같이 전관들이 나설 수 있는 것은 전관예우를 막으려는 대법원 규정이 선거재판에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형사사건 전관 변호사와 6개월 이상 같은 법원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법관들로 구성된 재판부에는 가급적 사건을 배당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두고 있는데 이 규정이 선거재판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또 선거법은 다른 범죄와 달리 유죄가 인정되더라도 벌금이 100만 원 미만이면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친분을 통한 ‘벌금 몇 십만 원을 깎아달라’는 식의 온정주의식 변론이 통할 여지가 있다. 이 때문인지 선거법 재판에는 다른 재판에서 보기 힘든 벌금 90만 원 형이 종종 나온다. 이번 총선 재판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전과기록을 누락한 혐의로 기소된 한나라당 임두성 의원도 1심에서 벌금 90만 원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법원 고위직 출신 변호사 선임이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한 예로 상고심을 앞두고 대법관 출신인 손지열 변호사를 수임했던 이무영 전 의원은 원심대로 벌금 300만 원이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정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