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국제사회 제재 맞서 ‘소부대식 변칙무역’ 지시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27일 대륙간 탄도미사일급 ‘화성-14’형 미사일의 시험 발사를 친필로 명령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최근 북한 고위급 내부관계자에 따르면, 김정은이 지난해 11월 중순경 중국을 비롯한 해외 주재 무역회사들을 대상으로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고 한다. 그 목적은 역시 특정자원, 미사일 부품을 비롯한 군수물자, 최고위층 기호품 등 전략물자 반입을 위해서다. 지난해부터 강도 높게 진행되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속에서 북한은 전략물자 반입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어왔다.
특히 지난해 두 차례의 UN안보리 결의에 따라 북한의 강봉무역회사, 금산무역회사, 태성무역회사, 부강무역회사, 남강건설, 만수대창작사, 국제화학합영회사 등 전략물자를 다뤄오던 무역회사들이 대거 ‘제재 리스트’에 올랐다. 물론 이와 관련한 인물들도 ‘제재 리스트’에 공식 포함되기도 했다. 이들 회사 모두 북한의 군 및 당 주요기관에 속한 회사들이다. 표면적으로 리스트에 오른 회사와 인물들은 정상적인 거래가 어려워진 셈이다.
김정은과 북한 당국이 해오던 암거래 및 밀거래는 한계가 뚜렷했다. 특히 중국 안전부와 공안당국의 무역 검열이 강화된 이후 더더욱 어려워졌다. 이를 극복하고자 북한 내 논의 과정에서 귀결된 대책이 바로 ‘소부대식 변칙 거래’였다.
북한에선 ‘소부대식 활동’ ‘유격대(게릴라)식 활동’ 등과 같은 말들이 일선에서 많이 쓰인다. 과거 고 김일성이 1940년대 행한 항일 유격대 전쟁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자평하고 있다. 산업분야건 농업분야건 난관에 닥칠 때마다 북한 당국은 ‘항일 유격대식’으로 이를 극복하자는 말을 반복해 써왔다. 이는 정규조직 및 군 편성에서 벗어나 기동력을 확보하고, 효율성을 극대화해 외부로부터의 어려움을 극복하자는 취지다.
김정은은 대북제재라는 난관 속에서 일선 무역회사들에 다시 한 번 이 ‘소부대식 활동’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즉 제재대상에 오른 기존 무역회사들의 간판으론 더 이상 거래가 불가능하니, ‘변칙 수’를 쓰자는 것이다.
김정은이 ‘특단조치’로 내린 각 무역회사들의 ‘소부대식 활동’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첫번째로 김정은은 제재대상 무역회사에 속한 핵심 주재원들을 2~3명의 소규모 단위로 쪼개 편성하도록 했다. 기존의 제재대상 회사가 ‘간판’을 바꿔 달아봤자 여기에 속한 주재원들의 명단에 변화가 없다면 모니터링을 피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예를 들어 미국과 국제사회의 기존 대북제재 리스트에 오른 창광무역회사, 부흥무역회사 등 주요 전략물자 거래 회사들의 주재원들은 주요 단속 대상이다. 이들이 기존 조직을 유지하면서 과거처럼 간판을 바꿔봤자 이제는 소용이 없다. 게다가 중국 역시 전략물자에 대해선 나름대로 대북제재에 적극 나서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과거처럼 중국 회사에 협조를 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둘째로 이렇게 쪼개져 새로이 편성된 주재원들은 제재 대상에서 빗겨간 복수의 민수물품 무역회사에 상무조로 파견된다. 기존의 조직이 조각조각 찢겨져 복수의 민수물품 관련 무역회사로 파견된다면 (이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파악될 소지가 있지만) 당장 눈을 피하기는 어렵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현실적으로 중국 당국도 지난해부터 유엔의 요구를 수용해 강도 높게 대북제재를 진행하면서도 민수물자에 관해서는 너그럽게 대하는 편이다.
셋째로 전략물자를 다뤄온 이들 파견 상무조들은 자신의 기존 거래 및 영업망을 통해 전략물자를 확보한다. 물론 그 거래는 기존 회사가 아닌 제재 대상에서 제외된 민수물품 무역회사로 들여온다. 이들은 모니터링을 피하기 위해 전략물자들을 모두 분해하여 각 부분품들을 서로 다른 무역회사의 이름으로 민수 물품과 뒤섞어 거래한다.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와 북한 신의주를 연결하는 압록강대교에서 북한으로 향하는 화물트럭들. 사진=연합뉴스
분해된 전략물자와 민수물자는 무 자르듯 구분되는 것도 아니고, 그 목적성에 따라 쓰임이 달라질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모니터링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실례로 현재 ICBM 미사일 이동식발사체계 TEL(미사일이동차량) 등은 이러한 방식으로 부분품들로 쪼개어 북한으로 이송된 후 북한 내에서 자체 조립된 것으로 확인된다.
특히 TEL 부품 중 북한에서 대체하기 어려운 ‘유압식장치’와 ‘각도 보정장치’ 등은 복수의 북한 민수용 무역회사가 ‘광업용’을 빙자해 들여왔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최근 북한이 새로 개발했다는 ICBM용 80톤 추력 엔진의 일부 부품은 북한에서 자체적으로 만들기 어렵다고 한다. 밸브 리프터, 전자석 클러치, 실린더 및 플라이휠 따위 등이다. 이밖에도 북한에서 자체 생산하는 일부 전략 가공품들의 원재료는 수입이 불가피하다.
심지어 미사일을 컨트롤하는 전자부품 중 일부는 한국산으로 보인다는 것이 앞서 관계자의 제보다. 그에 따르면 북한의 중앙당 조직지도부 및 국제부는 지난 1월 9일 주요 무역회사 및 해외 주재 기관들의 책임자들을 대규모 소환했다고 한다. 이렇게 소환된 책임자들은 중앙당 군수공업부 주요 관계자들과 1월 9일과 10일 양일에 걸쳐 회의를 진행했다. 회의 주요 내용은 앞서 김정은의 지시사항을 포함해 향후 ICBM 발사로 인해 강도를 높일 대북제재에 대한 대응책 등이었다.
최근 내부 보고에 따르면, 실제 김정은이 지시한 ‘소부대식 변칙 거래’는 ICBM 및 핵 개발의 성과와 관련한 전략물자 반입 등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결국 북한은 두 차례에 걸쳐 ICBM 발사 실험에 성공했다. 어찌 보면 김정은의 ‘변칙 수’에 국제사회가 호되게 당한 셈이다. 물론 그 뒤에는 중국이 제재를 소홀히 한 측면도 존재한다.
최근 추가적인 대북제재 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국제사회의 시름이 점점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겸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