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를 키우던 아버지가 송전탑을 반대하기 위해 농약을 먹고 목숨을 끊으셨습니다. 76만5천 볼트의 고압선이 양돈장 근처로 지나가면 돼지 인공수정도 안 돼요. 돼지를 8백 마리 키우고 있었는데 한전 측이 몇천만원 정도로 보상하고 끝을 내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주민들이 반대하는 모임이 생긴 거죠. 그때 환경운동이나 시민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우리 마을을 찾아왔어요.”
나는 침묵하면서 그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운동가라는 사람들이 마을사람들을 교육시켰어요. 송전탑이 지나가면 사람들이 암에 걸려 다 죽는다고 하면서 순진한 마을 사람들을 화나게 했죠. 마을 할머니들은 그 말을 들으면서 ‘아이고 그러면 어쩌노?’하고 걱정하는 무식하고 판단력이 약한 분들이었어요. 운동가라는 사람들이 송전탑이 세워질 부분에 토굴을 파게하고 할머니들은 거기 가서 지키라고 했어요. 경찰버스가 올 거라고 하면서 마을 꼬마들은 경찰버스 앞에서 피켓을 들고 있으면서 버스가 와도 절대 움직이지 말라고 했어요. 운동가라는 사람들은 그런 시위를 직업적으로 하는 꾼들인걸 처음에는 몰랐었죠. 반면에 한전도 나쁜 놈들이었어요. 협상은 하지 않고 마을사람들 중에 몇몇을 포섭해서 앞잡이로 내세워 우리들을 분열 시키는 공작에 급급하더라구요. 국무총리가 점잖게 마을을 다녀간 후에 경찰이 출동해서 토굴 속에 있던 할머니들을 개잡듯 끌어냈어요. 싸움이 격해졌어요. 매일 농성장에 참가하던 아버지는 말이 많은 성격이 아니었어요. 그냥 묵묵히 보고 있었어요. 그러다 아버지는 그들에게 저항하는 뜻으로 농약을 마셨어요. 난리가 났죠. 경찰서 정보과장이 왔다 가고 그날 저녁 뉴스에 수사결과 발표가 나오는데 아버지가 부채가 과다한데 돼지 값이 하락하는 속에 신변을 비관하고 자살했다고 하는 거예요. 기가 막혔죠.”
본질은 없어지고 엉뚱하게 사건이 정치현상으로 변질되어 간 것 같았다. 아들의 말이 계속됐다.
“운동가들이 서울시청 앞에 아버지의 분향소를 설치하고 싸움이 확대됐죠. 높은 공무원들은 점잖은 척 해도 하급공무원들은 태도가 달랐어요. 마스크를 쓴 술 먹은 하급 공무원들이 영정 앞을 지키는 아들인 저를 보고 혀를 내밀고 놀렸어요. 그리고 아버지 영정을 제가 보는 앞에서 들고 패대기치더라구요. 정말 화가 났죠. 야당의원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는데 나보고 거기 와서 말을 하라고 하더라구요. 저같이 돼지나 키우던 사람들은 그런 장소에 서는 게 무서웠어요. 정말 용기를 내야하는 일이었어요. 내가 주저하니까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나 야당의원은 내가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끝까지 투쟁해야 한다고 했어요.”
마을주민이나 자살한 사람이나 모두 뭔가에 속고 이용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들이 덧붙였다.
“시간이 흐르니까 시민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달라졌어요. 대책위를 만든다면서 노골적으로 활동비를 내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그 사람들이 농성장 텐트 뒤쪽에서 싱글거리며 돈을 세는 모습을 몰래 보면서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사람들은 데모를 한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마을 할머니들을 그 추운겨울에 토굴로 몰았으면서도 생각해 보니까 아무 관심도 없고 도와준 것도 없었어요. 대책위 책임자라는 분이 저를 불러 아버지 장례식과 합의에 관한 전권을 위임해 달라고 하면서 위임장에 도장을 찍으라고 했어요. 저는 그 사람이 싫었어요. 그래서 다음부터는 여당의원들에게도 호소하고 다녔죠. 그랬더니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나 야당의원들이 당장 시큰둥하고 냉냉한 태도로 변하면서 나를 욕했어요. 결국 아버지나 저나 마을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양쪽에서 다 당한 것 같아요.”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정치무대 이면의 시궁창을 보는 것같았다. 진심이 없는 광대놀이였다. 모두 탈을 쓰고 있는 가짜들이었다. 나를 찾아온 청년에게 물었다.
“그런 위선과 가짜들 사이에서도 그래도 진실한 부분은 찾을 수 없던가요?”
빛은 아무리 작아도 어둠을 이기는 법이었다. 그가 잠시 기억의 바닥을 더듬는 표정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분향소가 설치됐을 때 당진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분이 아이들과 함께 올라와서 저를 위로해 주셨어요. 아이들이 영정 앞에서 절하고 울더라구요. 그걸 보면서 ‘같이 아파해 주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찡했어요. 그 아버지는 ‘우리가 농사지은 겁니다’라고 하면서 농사지은 쌀 다섯 포대를 주셨어요. 그 농부는 아이들을 데리고 올라와 아픈 사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는 걸 가르치는 것 같았어요.”
진심이 없는 시민운동가는 탈을 쓴 가짜다. 월급과 안정된 자리에 안주하는 공무원도 빙글거리며 헛웃음을 짓고 있는 마네킹이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놀리 키며 이용당하는 수가 많았다. 서울시청 앞에 분향소가 차려진 그 청년의 아버지의 죽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