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때도 없이 ‘찌릿’ 그들에겐 ‘고통’일 뿐
▲ 연재만화 <파랑새를 찾아서>의 한 장면. | ||
“혼자 전철에 탔는데 갑자기 그 부분에 피가 몰리는 느낌이 들면서 하마터면 신음 소리를 낼 뻔했다. 참느라 힘이 들었다.”
이른바 ‘PSAS(Persistent Sexual Arousal Syndrome·지속성 성 환기 증후군)’로 고민하는 여성들의 증상이다. 최근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환자가 늘고 있는 ‘희한한 병’ PSAS는 도대체 무엇일까.
PSAS란 본인에게 성적 욕구나 흥분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철이 흔들리거나 남성과 눈이 마주치기만 해도 갑자기 오르가슴에 도달하게 되는 증상이다. 더구나 지속성이기 때문에 오르가슴은 금방 끝나는 것이 아니고 며칠에서 길게는 일주일 동안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 연구 조사에서는 하루에 300번 오르가슴을 느낀 여성의 케이스도 보고된 적이 있다. 하루 24시간 언제 어디에서 오르가슴의 ‘습격’을 받을지 알 수 없는 것이다.
PSAS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다. 지난 2001년 미국의 샌드라 레이블럼 박사에 의해 처음 발견됐고 올해 3월에 레이블럼 박사 팀이 영국의 의학전문지 <국제 성병-에이즈 저널>에 논문을 발표하면서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여성에게만 나타나는 이 병은 자칫 ‘기분 좋은 병’으로 오해를 받기 쉬운데 실제로는 그 반대다. 환자들이 느끼는 정신적·육체적 부담은 상상도 하기 힘들 정도라고 한다. 남에게 쉽게 말하기조차 어려운 병이라 병원에도 못가고 고민하다 자살을 생각하는 환자들도 있다.
“한 커리어 우먼은 6년 동안이나 PSAS로 고민하고 있었다. 갑자기 오르가슴이 밀려왔다가 조금 나아졌다고 생각하면 더 큰 오르가슴이 밀려오는 것이다. 자위나 섹스를 통해 일시적으로는 욕구를 해소시킬 수 있지만, 회사에서는 그럴 수도 없다. 그녀는 회사의 책상 속에 자위기구를 숨겨두고 있었지만 회의 중에는 어쩔 수 없이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PSAS에 대한 인식도 없던 때라 스스로를 ‘음란한 여자’라고 자책하기도 했다. 그녀를 지배하는 것은 쾌락이 아니라 육체적 고통과 수치심이었다.” 레이블럼 박사의 설명이다.
2003년 보스턴 대학에 따르면 과거 5년 동안 조사대상 여성 2500명 중 10명이 PSAS였다고 한다. 또한 레이블럼 박사가 2005년에 인터넷으로 조사한 결과 세계 각지에서 400여명이나 되는 여성들로부터 자신도 PSAS일지도 모른다는 고민상담을 받았다.
이러한 PSAS는 주로 폐경기 전후의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혹은 폐경기 후에 호르몬 요법을 받는 여성에게 많이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단계에서 PSAS의 명확한 원인은 해명되지 않은 상태다. 항우울제나 외과 수술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부 연구만 있을 뿐이다. 일본 히비야 클리닉의 성질환 전문의인 야마나카 박사는 “본래 여성이 성적인 쾌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성적인 자극이 필요하다. 그러나 (PSAS라는) 이 증상은 성적인 자극이 전혀 없이 얻어지는 쾌감이라고 하니 이해할 수 없다. 생각할 수 있는 원인으로는 지각 신경의 이상을 생각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PSAS 여성들을 위한 지원단체인 ‘PSAS서포트’의 대표인 자니 앨런 씨는 “3년 전에 시작했을 때는 20명 정도였던 환자수가 지금은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약 300명까지 늘어났다. 그 중에는 아시아 여성도 있다. (PSAS에 대한) 인지도가 낮아서 모르는 것뿐이지 아시아에도 환자가 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말한다.
PSAS는 섹스의존증과는 달리 쾌감이 아니라 고통과 수치심에 시달리는 심각한 병이다. 더구나 환자들은 세상의 호기심어린 눈초리와도 싸워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박영경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