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살인’ 이어지고 있지만 관련 법안 계류 상태…“형식적 제도 운영 넘어 피해자 중심 보호체계 전환해야”

한 동호회에서 A 씨와 처음 만나 2024년 2월쯤 교제를 시작한 박학선은 만난 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에서 A 씨에게 '결혼을 하자'고 제안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A 씨의 가족은 두 사람의 교제를 반대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수차례 A 씨의 집과 사업장을 막무가내로 찾아간 박학선을 향해 A 씨의 딸 B 씨는 "찾아오지 말라"고 경고했다. 결국 A 씨는 박학선의 폭력적인 모습과 가족의 반대를 이유로 그에게 이별통보를 했다.
"헤어지자"는 말에 격분한 박학선은 평소 본인과 A 씨의 교제를 반대했던 B 씨를 찾아가 흉기를 휘둘렀으며, 비상계단을 통해 도망가던 A 씨를 향해서도 흉기를 휘둘렀다. A 씨는 현장에서 숨졌고, B 씨는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숨을 거뒀다.
당시 피의자 신분이었던 박학선은 법원으로부터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됐다. 서울경찰청은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열고 범행의 잔인성, 피해의 중대성, 유사 범행에 대한 예방 효과 등을 이유로 박학선의 이름과 나이, 머그샷 등을 공개했다.
박학선의 신상정보 공개는 중대범죄신상공개법 시행 이후 검찰이 아닌 경찰이 피의자 신상정보를 공개한 최초의 사례였다.
박학선은 체포 이후 수사 과정부터 재판까지 줄곧 현장에 있던 흉기를 휘두른 '우발적 범행'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박학선이 평소 "A 씨 등을 죽여버리겠다"고 발언한 사실, 신속하게 범행 실행에 착수한 점 등을 근거로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검찰이 구형한 사형에 대해선 "정당한 이유가 명백하게 존재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면서도 "사회에서 격리하고 자유를 박탈해 평생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고 속죄하며 여생을 수감생활하며 보내는 게 맞다고 판단된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후 검찰과 박학선이 항소했으나 2심 재판부 역시 1심과 마찬가지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박학선은 2심 결과에도 승복하지 않고 상고했으나,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원심이 1심 판결의 양형을 유지한 것이 심히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며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그사이 교제살인은 멈추지 않고 발생 중이다. 불과 두 달 전인 지난 3월, 김훈(44)은 경기 남양주에서 과거 교제하던 20대 여성을 스토킹 끝에 살해했다. '남양주 스토킹 살해사건'으로도 불렸던 이 사건 피해자는 약 10개월간 김훈으로부터 지속적인 괴롭힘과 스토킹을 당해 경찰에 수차례 신고했으나 끝내 목숨을 잃었다.
'제2의 김훈'을 막자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뒤에야 스토킹처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피해자가 수사기관을 거치지 않고 법원에 직접 '피해자보호명령'을 청구할 수 있게 됐다.
전문가들은 형식적 제도 운영을 넘어 피해자 중심 보호체계로 전환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 3월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관계성 범죄 피해자 보호조치의 한계 및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김혜미 입법조사관은 "현행 피해자 보호조치는 기간과 연장 횟수에 모두 제한을 두어 보호의 연속성이 단절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연장 횟수 제한을 완화하거나 기본 기간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보호조치의 종료 과정에서 가해자의 위험성 감소에 대한 법원의 심사 기능을 강화하고, 민사적 성격의 피해자보호명령이 실질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인적·물적 기반을 확충하고, 절차 및 판단 기준을 명확히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