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상님 왜 또... 지팡이 불끈 쥐나
▲ 정치권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MB정부를 향한 강경 발언 배경을 놓고 갖가지 해석을 내놓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
정치권 관계자들은 DJ가 오는 20일 공식 출범하는 ‘오바마 시대’를 맞아 부활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가동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야권 일각에서는 4월 재·보선과 2010년 지방선거를 통해 ‘호남당’ 재건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DJ의 복심과 맞물려 이른바 ‘DJ 신당설’도 고개를 들고 있는 실정이다. 새해 벽두부터 현 정부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이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DJ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과 연계된 ‘DJ 신당설’의 실체를 들여다봤다.
“지금 권력을 잡은 사람들은 우리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감옥에 가고 사형당하고 고문당할 때 독재자의 편에 섰거나 방관했던 사람들이다.”
DJ가 새해 벽두에 던진 일성이다. DJ는 1월 1일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서 현 정부와 이 대통령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현 국정 상황을 민주주의·경제·남북관계 위기 등 3대 위기상황으로 규정하는가 하면 “작년 1년 동안 상상도 못했던 일이 벌어져 악몽을 꾸는 것은 아닌지 혼란스러웠다”며 작심한 듯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이날 인사회는 장상 전 총리서리, 한승헌 전윤철 전 감사원장, 임동원 전 국정원장,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등 ‘국민의 정부’ 인사들과 박지원 박주선 박선숙 이낙연 의원, 팬클럽인 ‘DJ 로드’ 회원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이날 참석자들도 3대 위기를 불러온 이명박 정부를 규탄하는 동시에 위기극복을 위해 힘을 합치자고 강조하는 등 현 정권 규탄대회를 방불케 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DJ가 새해 첫날부터 현 정부와 이 대통령을 겨냥해 강성 발언을 쏟아낸 배경을 놓고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DJ는 지난해 11월 5일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흑색 돌풍’을 일으킨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고무된 반응을 보인 바 있다. 진보 성향인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할 경우 경색 국면을 면치 못하고 있는 남북관계에 해빙무드가 조성될 수 있고 자신의 ‘역할론’ 또한 재조명될 것이란 기대감이 투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오바마 당선 소식을 접한 정치권 주변에선 미국 민주당 지도부와 막강 인맥을 구축하고 있는 DJ의 역할론이 부상하는가 하면 여권 일각에서는 DJ나 그 측근을 대북 특사로 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동교동계 일각에서는 DJ가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의 회동을 추진하고 있다는 얘기도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DJ는 97년 수평적 정권교체를 달성한 뒤 클린턴 2기 행정부와 큰 이견 없이 양국관계를 조율하는 등 긴밀한 한·미관계를 조성한 바 있다. 특히 두 사람이 집권할 당시 북한 경수로 지원과 6·15 남북정상회담, 북·미 간 최고위급 지도자 교환 방문 등이 성사되는 등 남북관계에 큰 진전이 있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따라서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하고 DJ와 클린턴의 회동이 성사될 경우 꽁꽁 얼어붙은 남북관계 해법과 맞물려 DJ의 역할론 또한 재조명될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DJ의 강경 발언 배경에는 호남당 재건 의지와 맞물린 ‘DJ 신당’의 꿈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란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 탄생이라는 대외적 호재를 맞은 DJ가 자신의 역할론을 극대화하면서 ‘DJ 신당’을 창당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에 돌입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동교동계와 민주당 일각에서 ‘DJ 신당설’이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DJ는 퇴임 후 현실정치 개입을 자제해 왔지만 지난 대선 정국이나 지난해 4·9 총선 과정에서 막후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여전히 현실정치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자신의 최대 치적인 ‘햇볕정책’을 지속적으로 승계 발전시키는 동시에 호남 민심을 대변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반드시 출현해야 한다는 복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와 관련, 최근 기자와 만난 동교동계의 한 인사는 “DJ는 현 민주당은 다수를 점하고 있는 열린우리당계를 비롯해 친노계, 구 민주계, 동교동계 등 다양한 계파가 불안한 동거를 하고 있어 결코 호남을 대변하는 정당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며 “핵심 측근들을 중심으로 4월 재·보선과 2010년 지방선거를 대비하고 있는 것도 중장기적인 신당 밑그림과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4월 29일 치러지는 재·보선에 동교동계와 DJ 측근들이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도 DJ 복심이 투영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DJ 정부 시절 국정원장을 지낸 신건 전 원장은 전주 덕진 재·보선 출마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역은 김세웅 민주당 의원이 대법원에서 당선무효형이 확정돼 4월 재·보선이 예정된 곳이다.
무소속 이무영 의원의 당선무효형 확정으로 재·보선이 실시되는 전주 완산 갑에도 ‘DJ 맨’들이 출정식을 준비하고 있다. DJ 정부 때 국정홍보처장을 지낸 오홍근 전 처장은 지난 12월 30일 예비등록을 마친 상태고, 동교동계인 한광옥 전 민주당 대표도 출마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DJ와 동교동계는 전주 덕진과 완산 갑 재·보선에 ‘DJ 맨’들이 민주당 공천을 받을 수 있도록 전력투구를 한 뒤 여의치 않을 경우 무소속 출마도 불사한다는 내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DJ는 내년 지방선거 때도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측근 인사들을 대거 출마시키는 등 ‘올인’ 승부를 준비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DJ를 정점으로 동교동계와 구 민주당 세력들이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는 중장기 신당 플랜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DJ가 지난해 10월, 8개월 만에 고향인 목포와 해남을 방문하는가 하면 명량대첩 축제장에서 “이 해전에서 호남인들이 단결해서 나라를 구한 것”이라고 강조한 배경에도 호남당 재건 의지가 투영돼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새해 벽두부터 현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자신의 건재함과 호남당 재건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DJ의 신당 복심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신년 정국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로 부상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