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시장 ‘대권 도전’ 치적 쌓기vs현대제철 ‘GBC 문제 해결’…삼표는 ‘버티기’ 수순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 삼표레미콘 공장 전경. 박정훈 기자
삼표그룹 계열사인 삼표산업은 이 숲 한가운데 부지 면적 2만 7828㎡ 규모의 레미콘 공장을 운영 중이다. 레미콘 산업은 공장입지가 중요하다. 공장에서 출하된 레미콘은 보통 90분이 지나면 굳기 시작하기 때문에 공사 현장과 가까워야 한다. 성수동 공장은 서울 강남북을 잇는 요충지로서 송파 풍납공장과 함께 수도권 공사 현장의 레미콘 공급을 도맡았다. 1977년부터 영업을 시작했으니 올해로 딱 40년째다.
건설경기 회복에 힘입어 삼표산업의 지난 3년간 매출은 2014년 4963억 원, 2015년 5667억 원, 2016년 6858억 원으로 늘었다. 한국레미콘공업협회가 공개하는 ‘산업추이’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전국 레미콘 출하 실적은 2014년 1억 3644만㎥, 2015년 1억 5251만㎥, 2016년 1억 7154만㎥로 매년 증가했다. 같은 기간 수도권(서울·경인)에 출하된 레미콘 비중 역시 35.6%, 37.8%, 41.4%로 증가했다. 즉 수도권 시장의 중요도가 더 커진 셈인데 실제 삼표 성수동 공장은 회사 내에서 레미콘 생산량 1~2위를 다투고 있고, 경쟁업체 공장과 비교해도 시간당 가장 많은 레미콘(최대 1100㎥)을 생산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1970년대만 해도 허허벌판이던 성수동 일대는 도심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외부 인구가 유입됐다. 일부 지역은 주거시설과 여가·체육시설을 갖춘 부촌(富村)으로 변해갔다. 올해 기준 성수동의 한 초고급 주상복합 아파트는 35억 원에 매매됐다. 삼표 측은 “공장이 먼저 들어서고, 나중에 주택이 들어왔다”고 항변하지만 기피시설인 레미콘 공장을 반길 주민은 거의 없었다.
성수동 주민들은 수년 전부터 ‘삼표레미콘 공장에서 발생하는 분진과 소음 등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며 서울시에 민원을 제기했다. 박 시장은 2015년 재선에 성공한 뒤 “공장 이전 문제를 임기 내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지지부진하던 삼표 공장 이전 문제는 지난 7월 10일 서울시가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재점화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17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학교에서 열린 ‘한국지방자치학회 학술대회’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이날 서울시는 삼표산업과 삼표레미콘 공장 이전에 대해 잠정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서울시가 제시한 협약에 따르면 삼표산업은 2022년 내로 성수동 공장을 비워야 한다. 그러나 삼표 측은 “합의된 것이 없다”며 서울시의 주장을 반박했다. 삼표 관계자는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으며, 대체부지 마련 및 공장 이전에 대해 현재로선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삼표는 지난 7월 14일 ‘성수동 공장 이전 협약식’을 앞두고 이례적으로 당일 서울시에 불참을 통보했다. 재계 관계자는 “공장 이전에 대한 보상 문제를 매듭짓지 못한 것 아니냐는 말이 파다하다”고 했다. 이성창 서울시 도시재생본부 공공개발센터장은 “삼표가 아닌 토지(삼표 공장 부지) 소유주인 현대제철과 협의를 진행했으며, 협약의 큰 틀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표에 공장 부지를 임대해 온 현대제철은 난감한 상황이다. 표면적으로는 지역 민원 등을 이유로 서울시에 협력하고 있지만 특수관계에 놓인 삼표 측의 피해보상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제철은 현대차그룹 계열사며,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은 같은 경복고 출신이자 사돈지간이다. 정 회장의 장남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과 정도원 회장 장녀 정지선 씨는 부부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삼표가 합리적인 협상안을 제시하면 들어줄 계획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현대차는 성수동 부지에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건립 계획을 세웠지만 서울시가 반려하면서 옛 한전 부지를 10조 5500억 원에 매입했다. 이마저도 서울시가 건축 심의를 늦추면서 GBC 착공이 지연되는 상황이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현대차가 GBC 문제 해결을 위해 삼표 공장 이전에 협조한 것으로 안다”며 “박 시장도 임기 내 서울숲 개발을 자신의 성과로 남기고 싶어 하는 상황에서 양측의 니즈(필요)가 맞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성창 센터장은 “현대(차)가 성수동 부지에 대한 전략적 필요성을 잃어 매각을 시도하는 것”이라며 “GBC와 연결짓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최근 성수동을 도시재생사업지구로 선정하고, 레미콘공장 부지를 매입해 친환경공원으로 탈바꿈시킨다는 계획을 세웠다. 박 시장이 추진한 서울역 고가 보행길(서울로 7017) 사업이 기대 이하의 평가를 받은 가운데 서울숲 개발 성패는 그의 대권 행보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성수동 부지 시가 등을 고려하면 서울숲 개발 사업에는 서울로 7017 사업 예산인 600억 원보다 최소 3배 이상의 국고가 지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삼표는 현대차의 GBC 개발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핵심 납품처를 잃을 수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삼표는 풍납 공장에 대한 국토교통부의 이전 결정에 불복하고,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성수동 공장에 대해서도 똑같은 절차를 밟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현대차는 삼표가 공장 이전에 합의해야 GBC 건립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상황이라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