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불가 ‘피리다벤’ 제품 버젓이 허가…오래전 생산 중단 제품 여전히 등록 상태
지난 8월 15일부터 17일까지 3일 동안 이어진 정부의 전국 산란계 농장 전수조사 결과가 18일 오후 발표됐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전국 산란계 농장 1239개(친환경 농가 683개, 일반농가 193개)를 검사한 결과 전체 산란계 농장의 4%에 달하는 49개 농가에서 사용이 금지되거나 기준치 이상 검출되면 안 되는 살충제 성분이 나와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닭에 사용할 수 없는 성분인 ‘피프로닐’이 검출된 농가는 8곳, 달걀에서 검출돼선 안 되는 ‘플루페녹수론’이 나온 농가가 2곳, ‘에톡사졸’, ‘피리다벤’이 나온 농가는 각각 1곳이었다. 나머지 37개 농가에선 일반 달걀에 사용할 수 있는 ‘비펜트린’이 허용기준치(0.01㎎/㎏) 이상 검출됐다.
이런 가운데 그동안 정부가 허가한 닭 진드기용 살충제품에 대한 관리 문제가 드러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요신문>이 18일 농림축산검역본부로부터 받은 ‘닭 진드기용 살충제 등록 현황’에 따르면, 현재 정부는 양계농가에 총 13개의 살충제품 사용을 허가하고 있다.
유효성분에 따라 분류하면 싸이퍼메스린이 가장 많다. 싸이퍼킬-WP(제조업체 : 성원. 허가년도 1982년), 싸이퍼킬-골드액(성원. 1982년), 싸이퍼-30(한국썸벧. 1988년), 싸이퍼-15EC(한국섬벧. 1990년), 싸이퍼 킬러(중앙바이오텍. 1982년) 등 5개 제품의 유효성분이 싸이퍼메스린으로 나타났다. 또 카바린분제(삼우메디안. 1981년)와 바라살-P(한국썸벧. 1981) 등 2개 제품은 비피엠씨를 유효성분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어 와구프리(팜한농. 2012년)는 개미산과 피리다벤을, 와구프리 옐로우(팜한농. 2015년)는 클로피리포스메틸과 클로르페나피르를 유효성분으로 표시했다. 마지막으로 에소다린유제(한동. 1988년), 와구프리 블루(팜한농. 2014년), 일렉터 피에스피(한국엘랑코동물약품. 2015년), 볼포(바이엘코리아. 1978년)는 각각 날리드, 비펜트린, 스피노새드, 프로폭서 등을 유효성분으로 표시하고 있다.
16일 오후 피프로닐이 검출된 남양주 산란계 농가에서 방역 관계자들이 계란 5만 3000개를 전량 폐기처분하고 있다. 임준선기자
문제는 닭 진드기용으로 사용할 수 없는 ‘피리다벤’이 함유된 제품이 버젓이 허가를 받았다는 점이다. ‘닭 진드기용 살충제 등록 현황’ 목록을 보면 2012년 4월에 허가받은 ‘팜한농㈜’의 ‘와구프리’는 유효성분으로 개미산과 함께 피리다벤을 함유하고 있다. 또한 같은 회사 제품으로 2014년 7월 허가받은 ‘와구프리 블루’의 유효성분으로는 이번에 문제가 된 ‘비펜트린’이 표시돼 있다. 즉, 양계농가 전수조사에서 검출된 5가지 살충제 성분(피프로닐, 비펜트린, 에톡사졸, 플루페녹수론, 피리다벤) 중 2가지 성분이 정부가 허가한 일부 살충제품에 포함돼 있었다.
특히 피리다벤은 감귤, 고추, 가지, 오이, 멜론 등 농산물에 기생하는 진드기를 없애는 데 쓰이는 것으로 양계 농가에서는 사용이 금지된 성분이다. 농식품부와 식약처에 따르면 피리다벤은 낮은 독성 물질이다. 식약처는 “급성독성이 경구 흡입 경로에서 나타난다”며 “피부 노출로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피리다벤에 인체가 장시간 노출되면 급격한 체중 감소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비펜트린의 경우 양계 농가에 사용이 허가됐지만 역시 인체에 흡수될 시 치명적인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공시한 독성정보에 따르면 흡입, 섭취, 피부 투과에 의해서 흡수될 수 있다. 또 미국에서는 비펜트린을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식용 목적의 닭에 쓸 수 있지만 잔류허용기준(0.01ppm)을 초과할 수 없는 성분이다.
게다가 정부는 ‘비펜트린’ 성분이 포함된 허가 받은 살충제를 일부 친환경 산란계 농가에 공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농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닭 진드기 살충제 구입비를 서울·부산·울산·대전·을 제외한 전국 13개 시·도에 지원했다. 방제 약품 구입비는 총 3억 원(약 150만 마리분)으로 국비·지방비가 각각 1억 5000만 원씩 소요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각 지방자치단체는 방역협의회를 열고 배정받은 예산으로 방제 약품을 구입해 농가에 배포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지자체의 경우 친환경 농장은 살충제 사용이 금지된 사실을 모르고 농민을 지도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이번에 살충 성분 ‘비펜트린’이 검출된 전남 나주의 친환경 산란계 농장도 정부로부터 허가 받은 살충제품인 ‘와구프리 블루’를 사용했다.
또 이를 제조한 업체는 지난해까지 ‘팜한농㈜’이라는 이름으로 영업을 해왔으나 올해 초 동물용의약외품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퓨오바이더스’로 이름이 바뀌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정부의 ‘닭 진드기용 살충제 등록 현황’에는 ‘팜한농㈜’이라고 적시돼 있다.
이 같은 지적에 ㈜퓨오바이더스는 “비펜트린과 피리다벤이 와구프리와 와구프리 블루 제품에 각각 주요성분으로 사용되고 있는 게 맞다”면서 “정부로부터 동물용의약외품 살충제로 정식 허가받은 제품이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발표하는 살충제 성분, 전수조사를 봤을 때 혼란스러운 점이 많은데 농가 사육 실정에 맞도록 하루빨리 제도 개선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농림축산검역본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2012년도 (와구프리) 허가 당시 안정성 등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며 동물독성 전담부서로와의 접촉을 권유했다. 이 부서에 접촉을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아 정확한 입장을 듣지 못했다.
한편 취재 결과 허가받은 13개 살충제품 중 5개 제품이 현재 생산 중단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 1988년 허가받은 ㈜한동의 제품은 20년 전 이미 제조가 중단됐음에도 버젓이 정부에 허가받은 제품으로 등록돼 있다. ㈜한동 관계자는 “현재는 동물용의약외품을 아예 취급하지 않는다”며 “20여 년 전에 이미 (허가받은 것으로 등록된) 제품 생산을 중단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무허가 살충제를 사용하거나 허가받은 살충제지만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비펜트린이 포함된 와구프리 블루는 빈 축사에 뿌려야 하지만 이 같은 방식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허가증엔 빈 축사에만 뿌려야 한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진드기도 내성이 생기기 때문에 매년 뿌려보면 효과가 반감된다”며 “한 번 닭을 키우면 3~4년까지 키우는데 한 번 뿌릴 때 효과를 보려고 축체를 향해 뿌리는 경우도 있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비펜트린이 포함된 살충제의 경우 오래전부터 사용됐고 권장을 많이 하지만 실질적으로 비싼 게 문제”라며 “더 값싼 살충제를 찾다보니 독성 강한 피프로닐과 공업용 약제를 섞어 싸게 파는 비허가 살충제가 암암리에 거래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