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 덮친 ‘죽음의 그림자’ 공주마저…?
▲ 지난 2004년 18세 생일을 맞은 알레그라. 마르다 못해 뼈만 앙상하다. 로이터/연합뉴스 | ||
지난 2004년 18세가 되던 해에 1억 5000만 달러(약 5500억 원)의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으면서 억만장자 대열에 합류한 알레그라는 베르사체의 창시자인 잔니 베르사체의 조카다.
잔니 베르사체는 지난 1997년 7월 마이애미의 자택 앞에서 연쇄 살인범이자 동성애자였던 앤드류 커나난이라는 남자에게 권총으로 살해되면서 비운의 생을 마감했다. 당시 알레그라의 나이는 11세. 누구보다도 자신을 친딸처럼 아끼고 사랑했던 삼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그녀는 오랜 세월 충격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항간에는 그녀가 거식증을 앓기 시작한 것도 삼촌의 죽음 때문으로 해석하고 있다. 살해되던 날 아침 자신에게 사줄 잡지를 사러 나갔다가 봉변을 당한 것으로 믿고 자책하고 있다는 것이다.
▲ 알레그라는 지난 3월 엄마 도나텔라 베르사체와 함께 <하퍼스 바자>와 인터뷰했다. | ||
살해되기 2년 전 암 투병 중이던 잔니 베르사체는 유언장을 통해 알레그라에게 자신의 재산의 50%를 물려준다고 밝혔다. 형인 산토에게 30%, 여동생인 도나텔라에게 20%를 물려준 것에 비하면 분명 파격적인 것이며 평소 그가 얼마나 알레그라를 아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했다.
그의 죽음과 함께 유언장이 공개되면서 알레그라는 언론의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억만장자 10대 상속녀로서 알레그라는 보디가드에 둘러싸여 지냈으며, 마피아나 갱단의 끊임없는 살해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18세가 돼 유산을 상속받은 후부터 스트레스는 더욱 심해졌다. 삼촌의 패션제국을 물려받아야 한다는 책임감에 이탈리아를 떠나 뉴욕으로 이주해 패션 공부를 시작한 그녀는 지난해 말부터는 다시 전공을 바꿔 LA로 거처를 옮겼다. 현재 그녀는 UCLA에서 연기 공부와 함께 불어와 예술사를 전공하고 있다.
삼촌의 죽음 이후 줄곧 겪어온 이러한 스트레스와 부담감 때문인지 그녀는 날이 갈수록 말라가고 있다. 현재 168㎝의 키에 몸무게는 고작 31㎏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에선 그녀가 이렇게 거식증을 앓고 있는 것이 어려서부터 자라온 환경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패션 모델이나 디자이너 틈에서 자란 탓에 늘 날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려왔다는 것이다.
▲ 극진한 애정을 베풀었던 삼촌 잔니 베르사체 생전에 남동생 다니엘과 함께 찍은 사진. | ||
이런 그녀가 최근 <하퍼스 바자>와 처음으로 심도 있는 인터뷰를 해서 화제가 된 바 있다. 엄마인 도나텔라와 함께 여섯 면짜리 화보 촬영까지 한 그녀는 자신의 어린 시절과 엄마와의 관계에 대해서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화려하고 언론의 주목을 받기 좋아하는 엄마와 백팔십도 다른 자신에 대해 그녀는 “나와 남동생은 대범하고 활동적인 엄마와는 많이 다르다. 가끔 엄마는 우리에게 ‘어떻게 내 뱃속에서 나온 자식들인데 이렇게 나랑 다를 수 있니’라면서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녀는 남달랐던 어린 시절에 대한 일화도 소개했다. “초등학교 때 엄마는 내게 실크드레스를 입혀서 학교에 보내곤 했다. 유치원에 다닐 때에도 마찬가지였는데 하루는 유치원 선생님이 나를 그냥 집으로 돌려보낸 적이 있다. 그날은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는 날이었는데 도무지 드레스를 입고는 그림을 그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처럼 어려서부터 결코 평범하지 않은 생활을 해왔던 그녀는 가급적 평범하게 살길 희망하고 있다. 그녀가 엄마와 함께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극히 드문 것도 이런 까닭이다.
현재 평범한 대학생으로 생활하고 있는 그녀가 언제쯤 베르사체 경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지 아직 알 수 없다. 잔니 베르사체의 죽음 이후 경영난에 시달려왔던 베르사체가 최대 의사 결정권자이자 최대주주인 그녀의 등장으로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을지도 아직까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전공을 패션에서 영화로 바꾸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녀의 속내가 무엇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상태다.
어찌됐든 현재로서는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인 ‘거식증’이라는 발등의 불부터 끄는 게 급선무인 것만은 틀림없는 듯하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