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이별’ 지독한 슬픔을 노래하다
조동진 5집 앨범 속의 모습.
겨울비 내리던 밤 그대 떠나갔네/바람 끝 닿지 않는 밤과 낮 저편에/내가 불빛 속을 서둘러 밤길 달렸을 때/내 가슴 두드리던 아득한 그 종소리
그를 생각하면 가을, 나뭇잎, 꽃, 강, 나무, 바람, 비가 생각납니다. 그리고 느림이 생각납니다. 그의 삶 자체가 느렸다고 합니다. 노래도 서두름 없이 천천히 흐릅니다. 삶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서정시로 녹여냈습니다. 슬픔도 곱씹으면 때로는 삶의 힘의 원천이 됩니다.
미얀마의 대중음악은 참 밝고 명랑합니다. 고음으로 올라갔다 떨어지는 고저도 별로 없고, 속삭이듯 감미롭고 듣기 편한 노래가 많습니다. 너희 나라는 왜 애절하고 호소력 강한 노래는 없느냐고 물어봅니다. 그러자 아까 들은 노래가 아주 슬픈 노래라고 합니다. 가사를 보면 아주 슬픈 가사인데 제 귀는 그냥 밝고 명랑하게만 들립니다.
얼마 전 양곤의 한 공원에서 열린 미얀마 팝 공연에 구경갔습니다. 팝 무대와 팝의 레퍼토리가 우리의 70년대와 비슷합니다. 그 공연에 제가 아는 차세대 가수가 출연했습니다. 미얀마인 친구의 아들입니다. 그 가수의 아빠는 서울에서 저와 자주 만나는 사이였습니다. 아빠와 아들이 서로 본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아빠는 한국에서 난민 판정을 받아 귀화했습니다. 아들은 의과대학을 다니다 그만두고 작곡에 노래까지 합니다. 미얀마 작사작곡 콩쿠르에서 우승도 했습니다. 제가 이 나라에 와서 작사한 ‘우베인 다리를 걷는 여인’에 곡을 붙인 이가 바로 이 아들입니다. 아주 슬프게 작곡했습니다.
미얀마 가수겸 작곡가 퉁푸의 공연 모습.
공연을 재밌게 보고 왔습니다. 요즘엔 슬픈 노래도 많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슬픈 노래 하면, 포르투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70년대 아말리아 로드리게스(Amalia Rodrigues) 공연실황을 듣습니다. 머나먼 이베리아 반도의 노래입니다. 결코 밝고 명랑하지 않은 가수입니다. 파두(Fado), 포르투갈의 민속음악. 로드리게스는 세계 대중음악의 한 장르를 만든 주인공입니다. 제가 직장 신입 시절, 이 가수의 공연을 직접 보려고 포르투갈로 갔던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파두 가수들은 아무리 유명해도 자신이 데뷔한 레스토랑이나 카페 무대에서 평생 일하는 관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스페인에 일하러 갔다가 리스본행 특급열차를 타고 리스본으로 갔습니다. 어슴푸레한 새벽에 리스본에 도착했습니다. 검은 드레스에 검은 숄을 걸치고 눈을 감고 부르는 파두. 가슴을 긁어내는 12줄 포르투갈 기타 소리. 슬픔의 극치에서 터지는 맑은 고음의 산봉우리들. 이 나라의 노래는 왜 이리 슬프디 슬플까. 로마의 지배, 스페인 식민지, 독립 후 군부정치로 점철된 슬픈 역사 때문일까. 그래도 15, 16세기 ‘대항해 시대’엔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식민지를 주름잡던 나라인데.
당시 파두의 가사들은 감수성이 짙은 시적인 말들입니다. 바다, 배, 해변, 조국, 운명이란 단어들이 많습니다. 그 단어들만 보아도 그들의 정서를 알 것 같습니다. 이 나라 국민들은 즉흥시를 짓는 것을 즐겨 했다고 합니다. 누군가를 바다로 보내야 하고, 또 떠나서는 조국을 그리워하고. 그래서인지 노래도 서정적입니다.
앨범 재킷에 실린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의 젊은 시절 모습.
무슨 운명, 무슨 저주인가/이토록 헤어져 방황하는 우리는./우리는 침묵 속의 두 울부짖음/서로 엇갈린 두 숙명/하나가 될 수 없는 두 연인./그대가 준 차디찬 고독/생명도 죽음도 아닌 것을.
너무도 처절해 노랫말을 더 쓸 수가 없습니다. 이런 운명도 있을까요? 보들레르의 ‘지나가는 여인에게’란 시처럼 어둡습니다. ‘섬광 뒤 암흑, 군중 속을 지나가던 상복을 입은 여인, 그녀가 나의 길을 모르듯 나도 그녀의 길을 모르니, 영원 속의 순간처럼’. 보들레르의 시와 노랫말이 대비됩니다. 시로 설명할 수 없는 음악, 음악으로 설명되지 않는 시, 엇갈리면서도 서로 그 무엇을 주고받는 음악과 시구들. 이것을 로드리게스가 노래했습니다.
1999년 10월 6일. 그녀가 세상을 떠나던 날, 포르투갈은 즉시 3일 동안의 국가애도 기간을 공표했다고 전합니다. 그녀는 조국의 역사와 국민의 한을 가슴에 담아 노래했기에 포르투갈 국민의 사랑을 흠뻑 받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날 리스본, 그녀의 단골무대를 찾아갔지만 그녀의 노래를 결국 듣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뒤를 잇는 후배가수의 파두를 바로 앞 좌석에서 들었습니다.
밝고 명랑하게 읊조리는 미얀마의 노래, 애절하고 서정적인 포르투갈의 노래. 각 나라의 노래는 그 나라의 역사와 국민성을 닮았습니다. 비 오는 밤, 미얀마 거리. 한국의 진정한 ‘아웃사이더’ 조동진 노래가 이어서 흐르고 제 마음에도 비가 내립니다.
겨울비 내리던 밤 그대 떠나갔네/방안 가득 하얗게 촛불 밝혀 두고/하늘 보며 천천히 밤길 걸었을 때/내 마른 이마 위에 차거운 빗방울이.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