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지정 신규 공시집단 살펴보니…네이버·넥슨 등 포함 제조업 외 산업군으로 확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일요신문DB
공정위가 작성한 ‘2017년도 핵심정책토의’ 자료를 보면 김 위원장은 공시집단 신규 지정 및 해외계열사 출자현황 공시 등을 통해 재벌 소유구조 개선을 유도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또 총수 일가 사익편취를 차단하기 위해 현행 30%로 묶인 지분율 기준을 강화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법 위반 혐의가 있는 기업은 규모와 관계없이 직권조사를 약속했다. 즉 10대 재벌뿐 아니라 공시집단에 지정된 준대기업까지 모두 공정위의 사정권에 놓이는 셈이다.
이번 발표에서 공시집단으로 신규 지정된 곳은 동원그룹(37위)과 SM그룹(46위), 호반건설(47위), 네이버(51위), 넥슨(56위)이다. 이 가운데 동원은 동부익스프레스 인수와 지주사격인 동원엔터프라이즈가 보유한 종속기업 주식 가치 상승 등으로 자산 규모가 8조 2000억 원으로 급등했다. 최근 수년간 공격적 인수합병(M&A)에 따른 차입 부담이 누적돼온 동원은 이번 공시집단 지정으로 내부거래를 통한 재무구조 개선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오너 일가 지분율이 92%에 달하는 동원엔터프라이즈는 동원산업, 동원에프앤비, 동원시스템즈 등 계열사에서 388억 원의 영업수익을 올리고 있다.
SM은 대한상선, 동아건설산업 등 19개 회사를 인수하면서 올해 기준 보유자산이 7조 원까지 증가했다. 공정위가 파악한 SM 계열사는 61개로 재계 서열 2위인 현대차그룹(53개), 5위인 포스코그룹(38개)보다 많다. 우오현 SM그룹 회장과 동업관계였던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은 공정위 기준 58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계열사가 많아질수록 복잡한 지배구조를 갖는다는 점에서 SM은 공정위로부터 소유구조 개선에 대한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SM은 현재 지주사가 없다.
호반건설은 분양 사업 호조에 따른 계열사의 현금 증가로 총 7조 원의 자산을 쌓았다. SM과 마찬가지로 기업 규모에 비해 계열사가 많은 편이며, 오너 일가가 각 회사 지분을 교차 소유하고 있다.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과 부인 우현희 태성문화재단 이사장, 장남 김대헌 호반건설주택 상무, 차남 민성 씨, 장녀 윤혜 씨 모두 호반건설주택, 호반베르디움 등 핵심 계열사 지분을 들고 있다. 오너 일가 지분이 절대적으로 많지만 상장 회사는 단 한 곳도 없어 경영 투명성 제고가 요구된다. 경쟁사인 부영그룹은 재계 서열 16위 기업으로 수직 성장했지만 상장 절차 없이 불투명한 경영을 고집하다 공정위의 집중 조사를 받았다.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재벌구속특별위원회 회원 20여 명이 지난해 12월 서울 여의도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 건물 로비에서 ‘재벌총수 구속’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다. 고성준 기자
공정위 발표를 앞두고 가장 이목을 끌었던 쟁점은 네이버의 이해진 창업주를 총수로 인정할 것인지 여부였다. 이 창업주가 직접 공정위를 찾아가 “네이버는 총수가 없는 기업”이라고 설득했지만 김 위원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산총액 6조 6000억 원에 이르는 네이버의 동일인(총수)은 이 창업주였다. 공정위는 “네이버, 라인플러스 등 주요 계열사의 실적 개선과 법인 신설 및 인수를 통한 계열사 증가로 네이버가 신규 지정 공시집단이 됐다”고 밝혔다. 네이버 측은 “공정위 판단을 따르겠다”면서도 “네이버는 제조업 중심의 재벌 집단과 달리 순환출자가 없고, 이 창업주를 제외하고는 특수관계인의 지분이 전혀 없는 회사인데 기준이 일괄 적용돼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했다.
넥슨도 자산 5조 5000억 원을 기록하면서 공시집단에 지정됐다. 네오플 등 주요 온라인게임 계열사 매출이 늘면서 자산이 증가했다고 공정위는 설명했다. IT업계 관계자는 “네이버와 넥슨의 공시집단 지정은 제조업에 한정됐던 대기업집단이 다른 산업군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신규 지정된 기업들을 포함해 기존 공시집단 기업들은 공정위 규제를 피하기 위해 과거 논란이 됐던 회사 지분 처분을 검토하는 등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특히 자발적인 개혁 압박을 받고 있는 5대 그룹은 공정위의 타깃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공정위는 “상위 5개 기업(삼성, 현대차, SK, LG, 롯데)의 전체 자산 총액이 53%(975조 7000억 원), 매출은 56.2%(693조 2000억 원)“라며 “공시집단 내 상하위 집단 간 양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재계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오는 12월을 데드라인으로 못박은 만큼 재계 상위 집단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선 공정위가 관리해야 할 기업집단이 늘어난 것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공정위가 가용할 수 있는 인력이 한정돼 있는데 ‘전선’이 넓어지면 효율성이 그만큼 떨어지지 않겠느냐“며 ”감시 대상 확대가 재벌 개혁에 도움이 될지 생각해 볼 문제“라고 말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