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 즐거운사라, 가자장미여관으로 등 대표작 남겨...음란물 시비로 녹록지 않았던 삶...윤동주 재발견한 장본인이기도
고 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 생전모습. 사진=연합뉴스
[일요신문] 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가 5일 오후 1시 51분 경 자신의 자택(서울시 용산구 동부이촌동 A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한 마 전 교수를 발견한 것은 그의 가족이며 곧바로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경찰은 마 전 교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사인을 조사 중이다.
고인의 유가족과 통화한 <뉴스1>에 따르면 마광수 전 교수는 사망하기 전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고인은 1951년 4월 14일 1.4후퇴 중 서울에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대광고과 연세대 국문과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거쳤다. 문단은 그가 26세 때 스승이었던 청록파 고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데뷔했다.
이후 마 전 교수는 홍익대를 거쳐 1983년 모교인 연세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지난 2016년 8월 정년 퇴임했다.
마광수 전 교수는 장편소설 데뷔작 ‘권태’를 시작으로 ‘즐거운사라’, ‘자궁 속으로’, ‘귀족’ 등 소설과 ‘가자 장미여관으로’ ‘야하디 얄라숑’, ‘나는 찢어진 것을 보면 흥분한다’ 등 시집, 수필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등 수 많은 문제작을 남겼다.
그는 문인으로서 뿐 만아니라 저항시인 ‘윤동주’를 재발견한 학자로서도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이밖에도 마 전 교수는 <동아일보> 신춘문예 심사위원 자격으로 고 기형도 시인, 안도현 시인 등 국내 대표 문인을 발굴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 전 교수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그는 1992년 문제작 ‘즐거운 사라’가 성의식을 왜곡한다는 이유로 검찰에 의해 구속됐으며 결국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의 유죄판결을 받았다.
마 전 교수를 옥죈 것은 법적 판결 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이 사태 이후 문단에서 ‘문제아’로 떠올랐으며 사회에서도 온갖 지탄의 대상이 되곤 했다.
재직 중인 모교에서도 그는 해임 처리 됐고, 우여곡절 끝에 복직 하는 등 심한 부침을 겪기도 했다. 복직 이후에도 그는 철저한 아웃사이더로 지냈으며 퇴임 이후엔 쓸쓸하게 말년을 보내고 있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