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회장들 정권 교체 때마다 사정 타깃…정부에 찍힐라 거리두기
지난 8월 24일 한국주택협회는 2017년 제2차 이사회를 개최하고, 김한기 회장 유임을 확정했다. 사진=한국주택협회
한국주택협회는 국토교통부 등 정부 기관에 정책 제언을 하고, 때로는 국회에 업계 요구를 전달하는 역할을 해왔다. 이들의 주장은 한 마디로 요약된다. 분양시장에 대한 규제를 풀어달라는 것이다.
실제 한국주택협회는 지난 대선 기간 각 후보 캠프에 후분양제와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를 반대하는 내용의 요구안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분양가 상한제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이들 정책은 현 정부가 도입했거나 장기적으로 시행을 검토하고 있는 부동산 대책이다. 문재인 정부가 역대 어느 정부보다 강력한 부동산 규제를 예고한 상황에서 건설사들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투기 과열지구에 대해 전매 제한을 거는 등 업계를 압박하는 상황에서 결국은 각자 도생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했다.
업계가 휘청거리는 가운데 총대를 메야 할 한국주택협회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당장 어렵사리 11대 회장에 오른 김한기 전 대림산업 사장(현 고문)은 지난달 10일 사장직에서 물러나며, 협회 회장직도 잃을 위기에 처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이사회에서 유임이 확정됐다. 한국주택협회 정관에 따르면 협회 회장직은 현직 건설사 임원만 맡을 수 있는데 김 전 사장이 대림산업 고문으로서 현직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유임을 결정한 것이다.
제9대 한국주택협회장을 역임한 박창민 전 대우건설 사장.
또 공교롭게도 회장을 맡았던 CEO들은 모두 정권 교체와 함께 새 정부의 ‘타깃’이 됐다. 업계 일각에서 한국주택협회 회장직을 ‘독이 든 성배’라고 부르는 이유다. 2012~2016년 한국주택협회 회장을 역임했던 박창민 당시 현대산업개발 사장은 대우건설 사장으로 ‘영전’(?)했지만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돼 스스로 옷을 벗었다.
박 전 사장의 대우건설 사장 임명 과정은 지금껏 명쾌하게 공개된 적이 없다. 업계 일각에선 박 전 사장이 오랜 기간 한국주택협회 회장을 맡았던 게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대우건설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의 업무수첩에 ‘박창민’이라는 이름이 나오고, 최순실이 당초 다른 사람을 대우건설 사장에 앉히려다 무슨 이유인지 박창민을 선택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최순실이 눈여겨 본 제3의 후보도 한국주택협회와 인연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주택협회가 국내 대형 건설사 CEO들로 이뤄진 단체라는 것을 고려하면 대우건설 사장에 오르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박 전 사장이 협회 회장직을 맡으면서 정부와 유착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박 전 사장의 전임자로 제8대 한국주택협회장을 맡았던 김중겸 당시 현대건설 사장은 이명박 정부 핵심 과제인 4대강 사업에 협조했고,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인 2013년 4대강 사업 입찰 담합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공교롭게도 김 전 사장은 현대건설 퇴직 직후 한국전력공사 사장에 내정됐다. 즉 협회 회장을 맡았던 박 전 사장과 김 전 사장 모두 공기업 사장이 된 것이다. 한국주택협회 측은 “오비이락일 뿐”이라며 “협회와 무관한 개인적인 일로 어려움을 겪은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김한기 현 회장의 친정인 대림산업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총수 일가 사익 편취 의혹에 대한 직권 조사를 받고 있다. 제4대 회장이었던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탈세 의혹 등으로 검찰 수사를 앞두고 있다. 또 국세청이 최근 특별 세무조사에 착수한 현대산업개발은 역대 가장 많은 한국주택협회 회장을 배출한 곳이다. 제5대 회장이었던 이방주 당시 현대산업개발 사장을 포함해 회장에 취임한 현대산업개발 임원은 무려 4명이다. 이사진으로 눈을 넓히면 뇌물, 비자금 조성, 불법 대출 등으로 형사 처벌을 받은 임원이 부지기수다.
이 같은 사정으로 각 건설사들은 한국주택협회와 일정한 거리를 두는 상황이다. 자칫 협회 일에 앞장섰다가 문재인 정부와 각을 세우면 ‘응징’을 당할지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한국주택협회 관계자는 “김한기 현 회장이 남은 임기를 모두 마칠 것”이라며 “업계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