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휴양의 공존…이유 있는 핫플레이스
하이번 고개. 아름다운 해안선이 이어진다. 전쟁시절의 벙커. 사진=류기남 다큐멘터리 사진가 제공
[일요신문] 한강(Song Han). 다낭(Da Nang)의 시가지 사이로 흐르는 강의 이름입니다. 베트남 중부의 거점도시 다낭은 옛 언어로 ‘큰 강’이란 뜻입니다. 실제로 한강이라는 큰 강이 도시를 관통합니다. 이 도시의 번영을 이루게 한 것도 ‘한강의 기적’을 이룬 나라에서 온 우리 건설사들입니다. 지금도 우리 국적기와 베트남 항공기들이 한국을 오가며 매일 한 편씩 뜨고 내립니다. 관광객의 숫자를 가늠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다낭은 베트남의 허리 부분에 있습니다. 하노이에서 약 760km, 호찌민에서 약 970km 지점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이퐁, 껀터와 함께 5대 도시로 꼽습니다.
다낭 전경. 사진=류기남 다큐멘터리 사진가 제공
이곳에 오는 여행객들은 두 가지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북쪽의 사이공’이란 별명답게 화려한 유흥도시였습니다. 미군의 군수창고가 있던 최대 기지였고 제1해병사단 사령부가 있었지요. 우리에겐 청룡부대가 철수명령을 받고 귀국선을 타던 장소였습니다. 또 하나는 세계 역사에서 가장 장기간 존속한 왕국이 이 지역에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참파왕국(Champa Kingdom). 2세기부터 17세기까지 약 1500년 넘게 강력한 왕국으로 구축했습니다. 아주 특이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이 왕국은 해양문명을 꽃피웠고 그 중심도시가 바로 다낭입니다.
참족의 민속공연. 사진=류기남 다큐멘터리 사진가 제공
다낭이 여행지로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름답고 긴 해변들과 현대적인 휴양시설도 있지만 주변에 호이안, 미손 등의 옛 유적지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대 참(Cham) 문화의 세계문화유산들이 보존된 곳입니다. 그래서 꼭 한번 들러야 할 곳이 참 조각박물관입니다. 1936년 참파왕국 수도였던 자리에서 유물이 대량 발견되면서 오늘날 박물관의 규모가 되었습니다. 베트남 역사에서 인도와 힌두문화의 영향이 뚜렷이 남은 조각상들입니다.
호이안의 옛 골목길. 사진=류기남 다큐멘터리 사진가 제공
사라진 참파왕국은 2세기경부터 중부지역 해안을 중심으로 성장했습니다. 중국 영향을 받은 다른 왕조와 달리 남인도와 해상무역을 했기에 인도의 영향을 받은 힌두 왕국이었습니다. 바다를 잇는 실크로드를 통해 번영을 누렸고 크메르 제국의 수도인 앙코르를 점령할 정도로 강력한 나라였습니다. 크메르인들이 이들을 얼마나 두려워했는지는 앙코르 톰의 외부 회랑에 새겨진 부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15세기 비엣족, 현 베트남을 이룬 부족에 정복당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차이나 비치 풍경. 사진=류기남 다큐멘터리 사진가 제공
다낭의 볼거리는 해변과 고개입니다. ‘차이나 비치’로 불리는 미케 해변, 길고 긴 논느억 해변, 그리고 하이번 고개입니다. 이 고개로 1번 국도와 기차가 바다를 끼고 돌아나갑니다. 다낭의 아름다운 해안선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호이안으로 가는 길에는 오행산이 있습니다. 다섯 개의 석회암 산입니다. 평지에 산들이 불쑥 솟아 있습니다. 다낭서 40분 거리의 호이안. 다낭이 무역항으로 발전하면서 그 영화를 잃었지만 옛 타운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었습니다. 중국과 일본 상인들이 정착한 마을입니다. 그들만의 오래된 가옥들이 눈길을 끕니다.
미손의 유적지. 사진=류기남 다큐멘터리 사진가 제공
미손은 참파왕국의 종교성지입니다. 라테라이트와 사암으로 만든 붉은 사원들이 슬픈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미손의 정글지대는 전쟁 기간 베트콩의 사령부가 있었기에 미군의 폭격이 수없이 있었던 장소입니다. 미손은 상업시설이 부족하므로 가까운 호이안에서 머물면서 볼 수 있습니다. 다낭은 이제 호이안과 미손, 그 옛날 참파왕국의 번영을 되찾은 도시가 되었습니다. 한강의 기적입니다.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