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은 김일성이 하사한 친형 이름...친형 사망 후 본명 ‘일명’ 버리고 ‘일정’ 물려받아
오일정 당 군사부장. 사진=연합뉴스
오일정 당 군사부장(민방위부장)은 현재 북한 민방위 군을 총괄하는 당직을 수행중이다. 그는 김정은을 지근거리에서 수행하는 대표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오일정은 1954년 북한의 대표적인 항일 빨치산 투사 오진우의 아들로 태어났다. 우선 오진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버지 오진우는 간도지방에서 김일성과 항일 무장 활동을 함께했으며 소련 피난 당시 태어난 김정일을 자기 아들처럼 성심껏 보살펴온 인물이기도 하다.
이런 가문 간의 관계 덕에 오진우는 빨치산들 중에서도 유독 탄탄대로를 걸었다. 오진우는 군 총정치국장과 총참모장, 인민무력부장 등 군 3대 요직은 물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과 국방위 제1위원장을 거쳤다. 군 최종계급은 북한군 최고위 계급인 조선인민군 ‘원수’다. 참고로 북한에서 원수로 추서된 인물은 오진우와 리을설이 전부다. 그 유명한 동북항일영웅 최용권도 북한 군의 첫 차수로 생을 마감했을 정도다.
한때 오진우는 북한에서 김일성-김정일 부자에 이어 3인자로 통할 만큼 권력의 최고 정점에 올랐던 인물이다. 그는 1995년 2월 폐병이 악화돼 사망했다.
오진우 원수
그의 승진 과정에도 물론 위기가 있었다. 오일정은 김정일과 후계구도를 두고 경쟁관계에 있었던 김일성의 차남 김평일과 김일성군사종합대학 동기였다. 그것도 매우 ‘절친’한 친구 관계였다. 김평일이 후계구도에서 탈락했을 즈음 전 호위총국장이었던 전문섭의 아들, 전 정치보위부장 김병화의 아들과 함께 오일정 역시 견제를 받기도 했다. 다만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아버지 오진우의 든든한 그림자 덕에 이러한 위기도 가볍게 넘어설 수 있었다.
하지만 오일정에겐 지울 수 없는 콤플렉스가 있다. 이것은 오진우 가문에 얽힌 다소 비밀스러운 이야기에서 기인한다. 북한 내부관계자를 통해 확인된 바에 의하면 사실 오일정에겐 본인보다 세 살 위인 친형이 있었다고 한다. 그의 형은 대학과 군사복무 시절 뛰어난 실력과 화통한 성격으로 늘 주변으로부터 촉망을 받았다. 당연히 그는 아버지 오진우의 분신이자 정통한 후계자였다.
이와 달리 오일정은 선천적인 소화불량을 비롯해 어렸을 때부터 병약했다. 어린 시절 늘 뛰어났던 형과 비교됐다. 지금도 좋게 보면 과묵한 간부로 회자되지만, 융통성과 자신감이 없는 인물로 평가되기도 한다. 이러한 음지적인 성향이 그의 성장과정에서 비롯됐다는 평가가 북한 최고위층의 제한된 일부에서 돌기도 한다.
그런 그의 운명을 바꾼 것은 늘 비교대상이었던 세 살 위 친형의 죽음이었다. 그의 형은 1960년대 말 판문점 부근에서 군사복무 중 오발사고로 즉사했다.
흥미로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애초 오일정 당 군사부장의 본명은 오일명이었다. ‘일정’이란 이름의 원래 주인은 먼저 세상을 떠난 그의 친형이었다. 그의 친형은 탄생 당시 김일성으로부터 직접 이름을 하사받았다. 가장 가까운 전우의 첫 아들을 직접 축하해주고 싶은 김일성의 마음에서 비롯됐다.
그 이름이 바로 ‘일정’이다. 그 의미 역시 남다르다. 김일성은 당시 “아버지(오진우)의 뒤를 이어 군에서 (주체)혁명(위업)을 보위하는 장군이 되라”는 의미로 자신의 아들 정일의 이름을 앞뒤로 바꾸어 ‘일정’이란 이름을 하사했다. 즉 오일정이란 이름은 김일성이 손수 지어 하사한 대단한 ‘이름’인 셈이다. 이뿐만 아니라 오진우의 장남은 탄생부터 가문의 후계자로 김일성에게 직접 인정받은 인물이기도 한 것이다.
북한 <조선중앙TV>가 5월 5일 방영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서해 장재도방어대와 무도영웅방어대 시찰 장면에서 인민복 차림의 오일정 전 노동당 군사부장(붉은 원)이 포착됐다. 오진우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로 ‘항일 빨치산 2세’의 대표격인 오일정은 한때 공식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좌천설’이 나왔지만, 이날 북한 매체에 ‘노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꾼’으로 김정은을 수행했다고 소개됐다. 연합뉴스
하지만 오진우의 장남으로 태어난 ‘오일정’은 뜻밖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때 오진우는 김일성이 하사한 ‘일정’이란 이름을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결국 이 유서 깊은 이름은 친동생인 오일명이 그대로 물려받아 쓰게 된다. 현재의 오일정 당 군사부장은 이런 연유를 거쳐 개명한 인물이다.
오일정 당 군사부장은 대학 졸업 후 본래의 이름 ‘일명’을 버리고 ‘일정’이란 이름으로 정계에 진출한다. 여기에는 김정일의 직접적인 승인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곧 차남 오일명이 죽은 형의 이름을 받고, 오진우의 후계자로서도 승인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현재 형의 대리인으로서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오진우-오일정 가문의 가족사는 곧 김일성 가문과 항일 빨치산 가문 간의 끈끈하고 특수한 관계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오진우가 장남의 이름을 차남에게 승계한 것은 결국 김일성 가문에 대한 충성심 때문이다. 김일성이 하사한 이름을 함부로 버릴 수 없었던 탓이라고 한다. 또한 그 승계 과정을 김정일에게 보고하고 승인 받았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겸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오일정 출세 속도 한풀 꺾인 까닭은 오일정 당 군사부장은 그동안 적잖은 부침을 겪어왔다. 오일정은 지난 2015년 9월 청년중앙예술선전대 공연 당시 김정은을 수행한 이후 지난 2월까지 한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2015년 12월 김정은 최고사령관 추대 4주년 기념식 때 관람석 멀찌감치 목격됐을 때 2계급 강등이 확인되기도 했다. 필자는 내부관계자를 통해 오일정의 최근 신변 변화에 대해 확인했다. 그 결과 그는 지난 2015년 자신이 맡고 있던 민방위 산하 교도부대 관리 부실 지적이 이어졌고, 이 때문에 계급 강등 조치를 당한 것으로 확인된다. 여기에 오일정은 최근 몇 년간 진행되고 있는 북한 군 내부 개편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 것도 어느 정도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