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패션’ 비난에 일일이 반박, 페미니스트 선언까지…빅뱅·엑소 팬덤과 전면전도 ‘전무후무’
팬이 꾸며준 한서희의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
대마초를 흡연한 아이돌 연습생 A 양 대신 ‘한서희’라는 이름 석 자가 대중들에게 완전히 각인된 것은 지난 9월 21일이다. 하루 앞서 한서희는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자신의 항소심에 출석하면서 명품 브랜드 옷을 착용했다는 이유로 대중들의 질타를 받았다.
각종 매체들에 따르면 이날 한서희가 착용한 가방은 샤넬, 벨트는 구찌 제품으로 확인됐다. 티셔츠는 디올의 제품이었지만 로고가 없었기 때문인지 티셔츠까진 비난하지 않았다. 재판 종결 후에는 법원을 빠져나갈 때 자신의 흰색 스포츠카를 탔다는 다소 불필요한 정보까지 보도돼 이 역시 비난의 대상이 됐다.
일부 네티즌들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켜 반성하는 사람의 옷차림이 아니다”라며 한서희를 비난했다. 대중들에게 사과하는 자리에 서는 만큼 명품 로고는 눈에 띄지 않게 가리고, 단정한 모습으로 임해야 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검은색 재킷과 바지 정장을 차려 입었으나 ‘명품 브랜드’라는 이유만으로 단정하지 않은 차림새가 되고 말았다.
일반적으로 데뷔를 앞둔 연예인 지망생이라면 구설수에 오르지 않도록 자숙하는 모습을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한서희는 오히려 정면으로 맞섰다. 지난 9월 21일, 한서희는 자신의 ‘재판 패션’을 비난한 이들을 겨냥해 “가진 게 명품뿐인 걸 어쩌라고. 여자는 명품만 입어도 빼액! 여자가 어디서 명품을! 아주 그냥 난리 버거지고, 냄저(남자)새끼들은 명품을 입든 뭘 입든 화제 거리도 안 되는 X같은 세상”이라는 글을 SNS에 게시했다.
자신의 법정 출두 패션이 명품이라는 이유로 논란이 되자 이를 비판하는 글을 남겼다. 한서희 페이스북 캡처
대마초 흡연 혐의로 비난하는 기사보다 명품을 입고 법정에 출두한 기사가 더 많다는 것에 대해 “죄를 가지고만 욕을 하면 이러지 않는다. 여자가 고작 명품을 입었다고 생난리를 치는 이 사회를 비판하는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순식간에 1800여 개의 댓글과 2800여 개의 ‘좋아요’가 달린 이 글에는 여성 이용자들의 대거 참전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남자들은 도박하고 마약하고 심지어 성매매를 하고도 TV에 나오는데 여자가 겨우 약 좀 한 게 뭐 그리 큰 흠이냐”라며 한서희에게 “충성할 테니 음악으로 보답해 달라”고 응원하는 메시지를 게시했다. 물의를 일으켰던 남성 가수들이 “음악으로 보답하겠다”라며 연예계에 복귀하는 것을 비꼰 것이다.
‘한남(한국남자)’, ‘재기(전 남성연대 상임대표인 고 성재기의 사망을 조롱하는 단어. 자살이라는 뜻으로 사용)’ 등 여초 커뮤니티에서 자주 쓰이는 말투를 그대로 사용한 한서희에게 반감을 드러낸 이용자들도 있었다. 한서희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여성 커뮤니티 ‘여성시대’ 등 각종 여초 커뮤니티에서 활동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남성 이용자는 “왜 이렇게 자충수를 두냐. 여자 아이돌들이 군대 순회공연 돌면서 남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발판 삼아 스타로 등극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데”라며 “남자들에게 잘 보여야 인기를 얻는데 한서희는 반대로 가고 있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서희는 오히려 “내 소원=남자들이 나 안 좋아하는 거”라고 반박했다. 계속해서 한서희에게 탑과의 관계를 물어 보며 성적인 질문을 한 남성 이용자에게는 “탑하고 네가 (관계)하고 싶은 게 아니냐” “가서 재기(자살)나 해라”라는 답변으로 응수했다. 많은 여성 이용자들이 이런 한서희의 대응에 응원과 환호의 목소리를 보냈다.
2800여 개의 댓글 가운데 대다수가 한서희를 옹호하고 있다. 이름 옆의 ‘7’은 경례를 뜻하는 이모티콘. 한서희 페이스북 캡처
최근 여성들 사이에서 페미니즘이 주류이자 핫 이슈로 자리 잡고 있어 한서희의 페미니스트 선언은 큰 호응을 얻었다. 주로 유튜브 방송을 통해 여성 시청자들과 소통하면서 페미니즘에 대한 여러 견해를 취합하거나 방송이 끝난 뒤 지적 받은 부분을 곧바로 피드백하는 등의 태도도 그의 팬을 자처하는 여성들의 호감을 높였다.
그러나 데뷔 전부터 급증한 팬들만큼 안티도 많을 수밖에 없다. 대마초 흡연 사건으로 함께 이름을 올린 빅뱅의 탑은 물론, 최근에는 아이돌 그룹 엑소의 팬들과도 전면전을 벌였다. 탑의 경우는 한서희가 외국인들의 사용 비율이 높은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하자마자 해외의 빅뱅 팬들이 한서희를 비난하는 댓글들을 달면서 한국의 한서희 팬들과 해외 팬들 사이의 전쟁이 벌어졌다. 해외 팬들이 자신의 나라 언어로 욕설을 달면 그 밑에 한국 팬들이 한글로 욕설을 다는 식이다.
여기에 엑소의 팬들이 가세했다. 지난 2일 한서희가 유튜브 방송에서 엑소의 팬들을 비하하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 화근이었다. 곧바로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사과문을 올렸으나 분노한 팬들이 인스타그램 댓글과 DM(다이렉트 메시지·쪽지)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여성의 인권 신장을 주장하는 페미니즘을 내세우면서 여성이 대부분인 아이돌 팬덤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한서희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는 주장까지 불거졌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한서희는 사과문을 지우고 엑소 팬이 보낸 욕설 쪽지를 공개하며 “커뮤니티에서 짜깁기, 선동질, 정치질하면서 여자애 한 명 매장시키려고 한 게 누구냐”라고 지적했다. 이후 엑소 팬들과의 언쟁이 오가면서 욕설이 심해지자 이들에 대해 고소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황이다. 데뷔 전부터 선배 아이돌 그룹의 대형 팬덤과 공개적으로 적대하게 된 것 역시 걸그룹 연습생으로서는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한서희의 아이돌 데뷔는 내년 1월로 잠정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대마초 흡연 사실을 인정했고, 그에 따라 실형을 선고 받은 예비 연예인의 연예계 생활은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따른다. 특히 공중파 방송의 경우는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에 대해 직접적인 규제를 하고 있어 데뷔를 하더라도 공중파에서 그를 볼 수 없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미 한서희에 비해 적은 형량을 받았던 마약 사범 연예인들도 공중파 방송 출연 금지 명단에 올랐던 바 있다. 실제로 2012년 대마초 흡연 혐의로 징역 1년 2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던 래퍼 이센스도 2013년부터 지상파 출연 금지 조치를 당했다. 한서희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으며, 항소를 취하해 형이 확정됐다.
이에 대해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최근에는 케이블이나 아프리카 TV, 유튜브 영상 스트리밍 같은 실시간 소통처럼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기 때문에 공중파 방송을 뚫기 어려운 중소기획사들이 그쪽으로 많이 빠진다”라며 “한서희 같은 경우는 이미 데뷔 전부터 팬층을 형성했으니 데뷔 후 이런 반응이 이어진다면 굳이 공중파로 나가지 않더라도 활동에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