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L 효과 톡톡…상품 알리고 주가 올리고 ‘꿩 먹고 알 먹고’
지난 열흘간의 연휴를 앞두고 만난 한 지상파 예능국 PD는 이렇게 말했다. 방송가에는 흐름이 있다. 리얼 버라이어티 시대를 거쳐 2010년 이후에는 연예인 가족이 출연하는 육아 예능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그 바통은 ‘먹방’(먹는 방송)이 이어 받았고, 힐링과 욜로(YOLO) 시대에 맞춰 이제는 여행 예능이 주류로 자리매김했다.
KBS 2TV <배틀트립>, MBC <오지의 마법사>, tvN <신서유기>, JTBC <패키지로 세계일주-뭉쳐야 뜬다>, 올리브TV <원나잇 푸드 트립> 등의 프로그램이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콘셉트로 인기를 얻었다. 맛있는 음식을 직접 해먹는 시절을 지나 현지로 여행을 떠나 맛집을 탐방하는 것이 더 매력적인 시기가 왔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지난 추석 연휴 기간에는 KBS 2TV <혼자 왔어요>와 <하룻밤만 재워줘>, SBS <내 방 안내서>, <트래블 메이커> 등 여행을 전면에 내세운 프로그램이 대거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편성됐다.
유행이 발생하면 반드시 수혜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여행 예능의 인기가 치솟으며 최대의 수혜를 입은 곳은 여행사와 해외 관광청 등이다. 시청자들이 웃으며 챙겨보는 여행 예능 속에는 사실 여행사와 해외 관광청 등이 배치해놓은 갖가지 마케팅이 포진해있는 셈이다.
사진=JTBC ‘뭉쳐야 뜬다’
# <뭉쳐야 뜬다> 효과 톡톡히 본 여행사
하나투어의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뭉쳐야 뜬다’라는 코너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 예능의 공식 로고까지 붙인 이 코너를 클릭하면 ‘화제의 인기상품! 뭉쳐야 뜬다 방영지역별 상품은 이곳에서’라는 홍보 문구를 만날 수 있다. 또한 MC 4인방이 둘러본 코스가 고스란히 담겨 있고 ‘MC 4인방이 다녀온 바로 그 상품 예약하기’를 누르면 곧바로 예약까지 가능하다.
이는 하나투어가 <뭉쳐야 뜬다>의 제작지원업체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 프로그램의 출연진은 MC 4명과 게스트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을 담기 위해 함께 출국하는 제작진의 규모는 50명 안팎. 비용도 많이 들지만 이 인원들의 해외 일정과 동선을 짜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패키지여행을 구성하는 것 역시 전문 여행사가 아니면 쉽지 않다. <뭉쳐야 뜬다>의 제작진은 하나투어와 손을 잡으면서 이러한 수고를 덜게 된 셈이다.
여행사 입장에서 무엇보다 괄목할 만한 변화는 패키지여행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과거 패키지여행은 가족 여행이나 효도 관광의 전형처럼 여겨졌다. 젊은이들은 직접 여행 계획을 일일이 짜는 배낭여행을 선호했다.
하지만 <뭉쳐야 뜬다>는 이런 편견을 바꿨다. 정해진 기간 내에 해당 국가를 가장 효과적으로 관광할 수 있는 방법은 현지에 대한 정보가 풍부한 여행사를 통하는 것이 제격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앞서 언급됐던 예능 PD는 “<뭉쳐야 뜬다>는 ‘패키지여행도 즐길 만하다’는 발상의 전환만으로 새로운 재미를 이끌어냈다”며 “TV 속 여행은 항상 화려하고 고가의 비용이 든다는 편견을 뒤로 하고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여행을 제시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유가증권 시장에 상장된 여행사들의 주가를 통해 증명된다. 1년 전 6만 원대 초반이던 하나투어의 주가는 현재 9만 원이 넘는다. 모두투어 역시 1년 전에는 주당 가격이 2만 원이 되지 않았으나, 현재는 2만 7000원을 웃돈다. <뭉쳐야 뜬다>가 지난해 11월 첫 방송된 것을 고려하면 이 기간 동안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분석할 수 있다.
사진=tvN ‘도깨비’ 홈페이지
# ‘도깨비’ 방망이를 쥔 캐나다관광청
올해 가장 성공한 드라마는 케이블채널 최초로 시청률 20% 고지를 넘은 <도깨비>라 할 수 있다. 이 드라마의 시작은 캐나다 퀘벡이었다. 주인공인 도깨비가 캐나다에서 오래 전부터 호텔을 경영해왔고 한 여고생이 그곳에 함께 오게 되면서 인연을 맺는다. 이 장면은 캐나다관광청의 지원 아래 지난해 10월 퀘벡에서 촬영됐다. 방송 직후 <도깨비> 촬영지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이 폭발했다. 지금도 각종 블로그에서는 <도깨비>에 등장한 퀘벡의 명소를 소개한 무수한 글을 확인할 수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한류 팬들의 폭발적 관심을 이끌어 낸 드라마 <꽃보다 남자>는 뉴칼레도니아관광청의 지원 아래 현지 촬영이 진행됐다. 이 방송 전까지 뉴칼레도니아는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꽃보다 남자>가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관광객들의 문의도 크게 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도 현재 방송 중인 MBC 드라마 <20세기 소년소녀>는 홍콩관광청의 지원 속에 현지 로케이션 촬영이 진행됐다.
각국 관광청들이 한국 드라마나 예능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자연스러운 노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비싼 광고비를 들여 TV나 가판 광고를 노출시킬 수 있으나 이것이 광고임을 인지하고 있는 대중에게 크게 어필하기 어렵다. 하지만 인기가 높은 드라마나 예능은 시청자들의 주목도가 높고 출연 스타들이 현지를 즐기는 모습을 통해 광고라는 느낌을 주지 않는 광고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방송사 관계자는 “해외 촬영에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현지 촬영허가를 받아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여행사와 관광청의 협조를 구하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고, 높은 광고 효과를 누리기 위한 양측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기 때문에 최근 여행 예능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