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선 따뜻한 기부자 집에선 롤리타 색마
▲ 사진 왼쪽부터 사건의 주범 제프리 엡스타인, 모델 지망생 시절 엡스타인의 ‘성노리개’였던 나디아, 그를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트렌스젠더 모델 막시밀리아. | ||
엡스타인의 명성이 추락하기 시작한 것은 3년 전부터였다. 그가 정기적으로 10대 소녀를 저택으로 불러서 마사지 서비스를 받고 심지어 성관계까지 맺었다는 사실이 처음 발각됐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 3월, 팜비치 경찰에 한 건의 제보가 접수됐다. 한 여성이 “내 14세 의붓딸이 어떤 갑부에게 성추행을 당한 것 같다”면서 수사를 요청한 것이다. 이 소녀는 “아는 언니로부터 큰 돈을 벌 수 있다며 일자리를 소개 받았다. 부잣집에 가서 마사지를 해주면 200~300달러(약 20만~30만 원)를 벌 수 있다고 했다”고 진술했다. 그렇게 해서 엡스타인의 팜비치 저택에서 반나체로 마사지 서비스를 했던 소녀는 당시 300달러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고가 접수된 후 경찰은 11개월 동안 엡스타인 자택 근처에서 잠복 근무를 실시했다. 저택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신원을 파악하고, 전화 내용을 녹취하고, 또 쓰레기통을 뒤지면서 수사를 벌인 끝에 마침내 엡스타인이 미성년자들을 상대로 매춘 행위를 하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쓰레기통에서는 소녀들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가 여러 장 발견됐고, 이 중에는 ‘소녀의 학교가 오전 11시 30분에 끝나니 다음날 오겠다’는 등의 내용이 적힌 쪽지도 있었다.
엡스타인의 저택을 수색한 결과 그가 원조교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욱 확실해졌다. 집안 곳곳에서 소녀들의 누드 사진이 여러 장 발견됐던 것이다. 수사 결과 엡스타인은 소녀들에게 장당 200~300달러(약 20만~30만 원)를 제공한 것으로 밝혀졌다.
가정부들 역시 “엡스타인은 팜비치 저택에 머물 때마다 하루에 두세 번씩 출장 마사지 서비스를 받았다”고 증언했으며, 어떤 가정부는 “한번은 10대 소녀에게 연극 공연이 끝난 후 학교로 꽃다발을 보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런 물증과 증언을 바탕으로 결국 엡스타인은 지난 2006년 5월 소녀들로부터 퇴폐 마사지를 받고 성행위를 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처음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던 엡스타인은 “소녀들의 나이를 몰랐다. 모두들 자신이 18세 이상이라고 속였다”고 주장했다. 또한 클린턴 스캔들 당시 특별검사였던 케네스 스타, 하버드 법대 교수인 앨런 더쇼위츠, 할리우드 전문 변호사인 제럴드 르푸코트 등으로 이루어진 엡스타인의 변호인단은 “소녀들의 주장이 과연 신빙성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엡스타인한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소녀들의 뒷조사를 실시한 결과 대부분이 마약과 음주를 하는 비행청소년인데다가 절도 전과가 있는 소녀도 있었다는 것이었다.
▲ 매춘이 이뤄진 팜비치 저택. | ||
그렇다면 엡스타인의 팜비치 저택 안에서는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걸까. 지금까지 경찰 수사 결과 엡스타인에게 출장 마사지 서비스를 하고 성추행을 당한 것으로 알려진 소녀는 모두 다섯 명이다. 대부분 팬티만 입거나 혹은 알몸을 강요당한 채 마사지를 했고, 마사지 도중이나 혹은 끝난 후에는 반강제적으로 성관계를 맺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소녀들의 나이를 몰랐다는 엡스타인의 주장과 달리 당시 15세였던 한 소녀는 “이곳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떠들고 다니면 나쁜 일이 생길 것”이라고 협박했다고 증언했으며, 16세였던 소녀는 “고등학교 생활이 어떠냐고 묻기도 했다”고 진술했다.
엡스타인에게 소녀들을 연결해주는 ‘뚜쟁이’ 역할을 했던 할리 롭슨(20)이라는 이름의 여대생의 증언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 역시 17세 때 출장 마사지를 하면서 엡스타인을 알게 됐다고 말하는 롭슨은 “그가 다른 소녀들을 더 데리고 오면 소개비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단 ‘어릴수록 좋다’고 덧붙였다”고 말했다. 한 번은 23세 여성은 어떠냐고 하자 “너무 나이가 많아서 싫다”고 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당시 엡스타인의 저택에는 그가 ‘섹스 노예’라고 부르는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 출신의 모델 지망생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한 소녀의 증언에 따르면 이 모델 지망생은 현재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나디아 마르친코바라는 이름의 여성이며, 엡스타인은 그녀를 돈을 주고 사왔다고 했다. 보통 그녀는 마사지가 끝난 후 엡스타인의 지시에 따라서 소녀들과 레즈비언 섹스 행위를 하곤 했다.
또한 지난해 말에는 막시밀리아 코르데로라는 트렌스젠더 모델이 엡스타인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그를 고소하기도 했다. 자신이 16세였던 때 엡스타인이 “나와 성관계를 맺으면 모델로 성공하도록 도와 주겠다”고 유혹했으며, “네 나이 또래 소녀들이 좋다”라며 다른 친구들을 소개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엡스타인이 체포된 후부터 자신 역시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소녀들이 줄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올해 초에도 벌써 두 명이 비슷한 일을 당했다면서 엡스타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모두들 수천만 달러의 배상금을 청구한 상태며,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소녀들이 소송을 걸어올지 모르는 일이다.
그동안 외식도 자제하고, 언론 인터뷰도 거절하고, 또 웬만해선 사진이 찍히는 일이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사생활을 지켜온 덕분에 ‘미스터리 억만장자’라고 불리어 왔던 엡스타인은 결국 이렇게 ‘한방’으로 완전히 벌거벗은 신세가 되고 말았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