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혹스러웠던 질병 이젠 많이 좋아져”
초등학생 때 연기를 시작해 벌써 경력이 20년에 가까운 문근영이 30대에 접어들어 선택한 첫 번째 영화는 10월 25일 개봉한 <유리정원>(감독 신수원·제작 준필름)이다. 이야기를 이끄는 영화 주연을 맡기는 꼭 10년 만이다. 2015년 영화 <사도>에 출연했지만 비중이 그리 크지 않았고 크게 존재감을 발휘할 기회도 없었던 탓에 이번 영화는 그에게 각별한 의미다. 개봉을 앞두고 만난 문근영은 좀 더 성숙해진 외모는 물론 꺼내는 말들도 한결 여유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사진 제공 : 리틀빅픽쳐스
문근영은 <유리정원>이 최근 열린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에 선정되면서 영화제를 찾아 여러 무대에 올랐다. 자신의 주연 영화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받기는 처음이다. “설렘과 기대 그리고 부담이 교차했다”며 “영화제 현장에서 경험한 다양한 무대,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배우로서 뿌듯함도 맛봤다”고 했다.
개막식 등 영화제에서 입은 의상으로도 문근영은 화제였다. 속살이 살짝 비치는 의상으로 색다른 매력도 뽐냈고, 이로 인해 포털사이트에는 문근영의 이름 옆에 ‘시스루’라는 연관검색어가 뜨고 있다. 과감한 의상이 대중에게 새로운 이미지를 심어준 결과다. 성숙한 모습을 보이려고 일부러 시스루 의상을 택한 것 같다는 질문에 그는 “의상은 큰 의미가 없었다”고 했다.
“사실 예쁘게 꾸미는 일에는 내가 워낙 관심이 없는 편이다. 예쁜 옷 같은 것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이번 영화 <유리정원>에서도 분장을 거의 하지 않고 나온다. 나는 개의치 않는다. 지금도 사람들은 나더러 ‘동안 외모’라고 하지 않나. 솔직히 그 말이 좋기는 하다. 나이 들어 보인다는 말보단 좋은 거 아닌가. 하하!”
그래도 이제 그의 나이 30대다. 순간 나이를 의식하거나 인식할 때도 있지 않을까. 질문을 받자마자 그는 “피부가 예전 같지 않을 때”라고 답하면서 인터뷰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 웃음을 안겼다.
최근 눈길을 끈 의상이 아니더라도 문근영은 대범한 모습으로 연예계 생활을 해오고 있다. 한창 인기를 누리던 20대 초반 돌연 미국으로 연수를 떠나는가 하면 드라마에 함께 출연한 동료 연기자와의 공개 연애도 숨기지 않았다. 함께 유럽여행을 떠나 사진이 찍힐 때도 주위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그런 성향은 작품 선택에서도 드러난다. 쉬운 길보다 어려운 길을 주로 택했다. 2015년 주연한 SBS 드라마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에서는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를 소화했고 같은 해 영화 <사도>에서는 노역을 마다하지 않았다. 새 영화 <유리정원> 역시 녹록지 않은 선택. 관객이 보고 즐길 만한 소재의 영화는 아니다. 여러 잔상과 함께 이야기를 해석해야 하는 숙제를 던지는 영화는 즉흥적인 재미를 원하는 관객에겐 다소 난해할 수 있지만 ‘토론하는 영화’를 기대하는 관객의 흥미는 자극한다.
<유리정원>에서 문근영은 엽록체를 연구하는 과학도다. 자신이 나무에서 태어났다고 믿는 인물이다.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산속 유리정원에서 자신의 실험을 계속해 나간다.
“극의 분위기가 묘했다. 내가 연기한 재연이라는 인물에 갖는 애정이 컸다. 개인적으로도, 배우로서도 흥미롭고 욕심났다. 촬영이 끝난 지 벌써 1년이 더 지났지만 그 기억은 지금도 뚜렷하다. 무엇보다 감독님과 나눈 수많은 대화, 감독님과의 작업이 좋았다.”
# 수술 뒤 “하고 싶은 일 포기하지 말자” 결심
문근영은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에 한창이던 2월 오른쪽 팔에 급성구획증후군이 발병했다. 공연은 중단됐고 수술도 받았다. 투병 이후 <유리정원>을 알리는 활동에 돌입하기까지 7개월간의 휴식은 그에게 적지 않은 변화를 안겼다.
“그동안 스스로 포기하고 접어버린 일들이 있다. 정말 사소한 것들이다. 예를 들면 여행 가고 싶은데 이것저것 고민하다 관두고, 도자기나 스킨스쿠버를 배우고 싶어서 알아보다가 매니저랑 같이 다녀야 하는지, 여러 가지 생각할 게 많아 스스로 접어버렸다. 생각이 너무 많은 편이다.”
사진제공 : 리틀빅픽쳐스
문근영은 ‘사소한 일들’이라고 했지만 그가 지레 손을 뗀 많은 일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누리는 일상이다. 그만큼 누군가에 쉬운 일이 그에겐 어려운 도전일 수 있다. 어린 나이에 연기를 시작해서 또래보다 평범한 일상의 경험은 더 적다.
“그렇다고 후회는 하지 않는다. 앞으로 포기하지 않고 하나씩 해나갈 거니까. 당장 여행부터 가고 싶다. 그런데 생각이 많은 내 성격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만 같다(웃음). 가끔 20대의 시절도 돌아본다. 그냥 그 나이답게, 철없이 살아도 됐을 것 같다는 생각도 가끔 한다.”
상당히 신중하게 말하면서도 솔직하게 자신을 꺼내 보일 줄 아는 문근영은 요즘 주변에서 ‘편안해진 것 같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실제로 그는 “무언가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마음까지도 전부 사라진 기분”이라며 “예전엔 중요하게 여긴 것들도 이젠 달리 보인다. 요즘 ‘먼지보다 못한 일이야’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우주에서 우릴 보면 그렇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을 꼽아달라고 하니, 고민 끝에 “엄마”라고 답했다. 사실 돌이켜보면 연예계에 기부문화를 정착시킨 일등공신은 문근영이다. 고향인 전남 광주에서 학교를 다니던 고등학생 때부터 그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자신의 출연료를 내놓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공무원이던 부모의 영향이 컸다.
“몰랐는데, 엄마와 내 성향이 거의 비슷하다. 어릴 때 연기를 시작해 엄마와 떨어져 지내다가 요즘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알게 된 사실이다. 내 성격이라고 여긴 상당 부분이 거의 엄마의 성격이더라. 새삼 놀라고 있다. 하하!”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