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사촌이 청부’ 700억 재산 두고 골육상쟁…일본 상속분쟁 소문과는 별개
지난 8월 24일 방영된 MBC ‘리얼스토리 눈’에서 배우 송선미의 남편 고 씨의 사망 사건을 다뤘다. 사진=MBC 캡처
배우 송선미(43)의 남편이자 설치미술가인 고 아무개 씨(45)의 사건은 이처럼 재산을 두고 친척들 간의 골육상쟁으로 말미암은 비극으로 드러났다. 재일교포 자산가인 곽 아무개 회장(99)의 외손자인 고 씨는 차녀인 어머니를 도와 외사촌 곽 아무개 씨(38)와 그 아버지인 외삼촌(72)을 상대로 재산 환수 소송을 진행하던 중이었다.
일본 교토에서 유명한 호텔 체인점과 파친코 등 관광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자산가 곽 회장은 알려진 국내 부동산 재산만 680억 원에 이르는 재벌이다. 일본 내의 재산까지 합치면 그의 재산은 수천억 원대로 알려져 있다.
숨진 고 씨가 외할아버지의 국내 재산에 이변이 생긴 사실을 알아챈 것은 지난해 10월~11월 사이의 일이다. 외할아버지 곽 회장의 국내 부동산이 가족 가운데 누구도 알지 못한 사이 외사촌 곽 씨와 그 아버지에게 증여된 것을 발견한 것.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곽 씨 부자가 인척 관계에 있는 법무사와 공모해 곽 회장의 재산 증여계약서를 위조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고 씨는 외삼촌 부자와 계약서 위조를 도운 법무사를 사문서 위조 등 혐의로 곽 회장을 대신해 지난 2월 서울 종로경찰서에 고소했다.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한 경찰은 지난 7월 곽 씨 부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법원은 도주 우려가 없고 이들의 범행을 뒷받침할 만한 소명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곽 씨 부자로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만한 처사였지만 앞으로 고 씨 모자와 민‧형사소송을 진행해야 했다. 당장 곽 회장이 고 씨 모자의 편에 섰고, 증여계약서가 위조된 사실이 발각된 이상 정식 재판으로 간다면 곽 씨 부자에게 불리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가자 외사촌 곽 씨가 직접 나섰다. 2012년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했던 그는 자신과 함께 생활했던 조 씨를 떠올렸다. 무직에 2억 원 상당의 빚까지 지고 있었던 조 씨는 곽 씨의 ‘시다바리’ 노릇을 톡톡히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월부터는 같은 집에서 함께 살며 곽 씨가 시키는 심부름을 도맡아서 해 왔다.
조 씨에게 별 다른 강력 범죄의 전과가 없었다는 점도 그를 범행에 가담시키는 데 좋은 조건이 됐다. 실제로 사건을 조사했던 경찰은 조 씨의 청부 살해 가능성을 배제하면서 “강력 전과가 없다”는 이유를 들기도 했다. 경찰이 초기 수사에서 조 씨와 곽 씨의 ‘커넥션’을 면밀히 조사하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곽 씨는 영장이 기각된 직후인 지난 7월 말 조 씨에게 범행을 사주했다. 그는 조 씨에게 “(범행 후) 필리핀으로 가서 살면 되지 않겠냐. 감옥에 들어가도 변호사 비용까지 다 대주고 가족들의 생활비도 책임지겠다”고 회유했다. 조 씨가 범행 실행을 망설일 때마다 “편의점 알바나 하고 살고 싶으냐”라고 다그쳤다. 그래도 망설이는 조 씨의 눈 앞에 청부 살해의 대가로 20억 원이라는 거금을 내걸기도 했다. 이미 그와 함께 살면서 자산가의 면모를 곁에서 봐 온 조 씨로서는 거금의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곽 씨가 조 씨에게 변호사까지 살해할 것을 청부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숨진 고 씨와 소송을 함께 진행했던 변호사는 고 씨의 매형이기도 했다. 그는 고 씨와 함께 곽 씨 부자를 상대로 한 민‧형사 소송을 모두 맡고 있었다. 곽 씨 부자에게 있어서는 그 역시 눈엣가시였다. “묻을라면 (고 씨와 변호사) 둘 다 묻어야 돼”라는 게 곽 씨의 당초 살인 청부 내용이었다.
그러나 조 씨가 두 명이나 살해하는 것을 망설이자 결국 곽 씨 부자에게 있어 가장 위험인물인 고 씨만을 살해하기로 합의했다. 대신 “변호사의 눈앞에서 살해해 겁을 줄 것”이라는 조건이 붙었다. 겁을 줘서 소송을 지레 포기하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사건 전날까지 조 씨는 흥신소를 통해 조선족을 이용한 살인 청부 등을 알아봤지만 여의치 않자 결국 자신이 직접 범행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 이후부터는 지난 8월 21일 드러난 사건의 면모 그대로였다. 대낮에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사무실에서 조 씨는 미리 준비한 흉기로 변호사의 눈앞에서 고 씨를 살해했다. 곁에 있던 변호사에게도 “네가 더 나쁜 놈”이라며 위협했다.
곧바로 경찰에 붙잡혔지만 범행 동기에 대해서도 미리 곽 씨와 입을 맞춰 놓은 그대로 “(고 씨가) 소송 관련 정보를 받고도 약속한 2억 원을 주지 않아 화가 나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여기까지는 곽 씨가 계획한 대로였다.
그러나 곽 씨는 고 씨가 경찰에 붙잡힌 뒤에도 약속한 20억 원을 주지 않았다. 조 씨의 어머니가 사건 이후 조 씨의 변호사 비용을 요구했지만 이 역시 들어주지 않았다. 돈이 오고 간 흔적이 남을 경우 교사 사실이 발각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자신이 ‘버려진 패’라는 걸 알게 된 조 씨가 검찰 조사에서 조 씨에 대한 살인 교사는 물론, 변호사까지 살해하라는 청부를 받았다는 폭로를 이어가면서 결국 곽 씨의 청부살인 범행이 드러나게 됐다. 곽 씨는 조 씨의 범행 후 포털 사이트에서 ‘우발적 살인’ ‘살인교사죄 형량’ 등을 검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미 사문서 위조 및 행사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곽 씨에 대해 살인교사 혐의를 새로 적용해 추가 기소했다.
이 사건은 바다 건너 일본에서도 다소 자극적으로 소비되고 있다. 비단 ‘한국의 여배우’와 관련된 강력사건이라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고 씨의 외할아버지인 곽 회장이 일본에서도 이름 난 사업가이고, 더욱이 한국의 사건과 유사한 풍문이 일본 내에서도 알음알음 퍼져있었기 때문이다. 고령으로 건강이 좋지 못한 곽 회장을 대신해 일본의 호텔과 관광 사업의 운영권을 물려받은 차남 J 씨(59)가 다른 형제들이 모르는 사이 회사 지분의 절반 이상을 자신의 앞으로 돌려놨다는 이야기다.
다만 <일요신문> 확인 결과 국내에서 발생한 이번 살인사건에 얽힌 재산 상속 문제는 일본 내 곽 회장의 재산과는 별개로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곽 회장의 일본 자녀들 사이에서 발생한 재산 분배 의혹도 문제의 차남 J 씨와 삼남 H 씨(54)가 곽 회장의 사업체를 각자 분배받는 방식으로 종결됐다.
일각에서는 J 씨가 다른 형제들을 제치고 곽 회장의 사업체 가운데 알짜배기를 차지한 것에 대해 “형제간 골육상쟁이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으나 이와 관련해서는 일본 내에서조차 2015년 이후 어떤 보도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다만 현재 일본에서 이처럼 곽 회장의 자녀들이 각자의 사업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곽 회장의 일본 내 재산과 국내 재산은 각 나라에 거주 중인 형제들에게 별개로 이미 상속이 완료됐거나 앞으로 분배가 진행될 예정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편 이번 곽 씨 부자의 사건과 관련해 곽 회장은 고 씨로부터 사건을 전해 듣고 “장손(곽 씨 부자)에게만 재산을 증여하기로 약속한 적이 없다. 그들이 임의대로 증여문서를 위조한 것”이라고 진술해 곽 씨 부자의 기소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곽 회장은 건강이 악화되기 전부터 줄곧 자신의 재산 상속 문제에 대해 “자손들에게 균등하게 나눠줄 것”을 밝혀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장손들과 재산 상속 소송이 진행 중이던 지난 5월~7월 사이 한국을 방문해 딸과 만나 소송 문제를 논의했던 것으로도 알려져 앞으로의 국내 재산의 상속 재판 과정에 적극 관여할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