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총장 뜰 땐 동생, 현 정권 출범하자 대통령 캠프 출신…정권 바뀌면 사람도 바뀐다
지난해 3월 크레인·특장차 제조업체 광림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동생 반기호 씨를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당시 반 전 총장의 대선 출마설이 한창 힘을 받을 때여서 광림은 단숨에 ‘반기문 테마주’로 떠올랐다. 반 전 이사의 이사 선임 소식이 알려지면서 광림의 주가는 급등했다. 하지만 올해 2월 1일 반 전 총장이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급락했다. 공교롭게도 반 전 이사는 같은 날, 2019년 3월 29일까지인 임기를 한참 남겨둔 상태에서 ‘일신상의 사유’로 광림의 사외이사직에서 중도 퇴임했다.
일각에서는 광림이 사외이사 선임을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보통 법조인, 회계사, 대학교수, 퇴직 관료, 관련 사업 기업 임원 출신 등 기업을 경영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인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한다. 재계 한 관계자는 “법조·관료 출신이 단연 많다“며 ”정치권 인사를 영입하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다”고 말했다.
쌍방울의 최대주주 광림이 정치권과 관련된 인사를 잇달아 사외이사로 영입하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사진은 유튜브 캡처.
반 전 이사와 함께 광림의 사외이사로 활동한 인사는 모두 변호사나 회계사다. 비록 반 전 이사가 보성파워텍, KD파워 대표이사를 지내며 실무 경험을 쌓았지만 모두 에너지 관련 기업으로 광림과 사업 연관성이 거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광림은 지난 3월 31일 김방림 전 민주당 의원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김 전 의원은 대표적인 원로 동교동계 인사로 현재 한국여성정치연맹 총재로 재직 중이다. 김 전 의원은 과거 진승현 전 MCI코리아 부회장 등에게 4억 원의 부정한 돈을 받은 혐의로 2005년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추징금 4억 원을 선고받은 바 있다. 김 전 의원의 사외이사 선임을 두고 도덕성 논란이 나오는 이유다. 이전 사외이사였던 김경민 변호사는 ‘일신상의 사유’로 중도 퇴임했다.
광림은 김 이사의 선임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인다. 광림의 한 관계자는 “과거 문제와 상관없이 김 이사는 지배구조법이 규정하는 사외이사 요건을 충족해서 선임했다”며 “사측에서는 김 이사의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사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광림이 최대주주로 있는 쌍방울도 사외이사 영입과 관련해 수상쩍은 행보를 보인다. 쌍방울은 올해 3월 문재인 대통령 선거대책위원회 출신 이화영 이사를 신규 선임했다. 17대 국회의원 출신인 이화영 이사는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의 자문위원으로 대표적인 ‘친노인사’ 중 한 명이다. 지난 19대 대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소속 동북아평화경제위원회의 공동위원장으로 활동하며 현 정권의 탄생에 일조했다. 쌍방울 한 관계자는 “생산 공장이 중국 길림에 있는 데다 중국 사업 규모가 커지고 있어 경제외교 쪽에 경험이 풍부한 이화영 이사를 선임했다”며 “더군다나 최근 동북아지역에 관심이 많아 이 이사의 시너지 효과가 더욱 기대되는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해당 기업과 크게 관계없는 이력의 정치인 혹은 관계인 영입은 세무조사나 금융당국 조사가 있을 때 한마디라도 해보려는 목적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거나 규모가 작은 기업의 경우 유명 사외이사 영입을 통해 기업가치를 올리고 홍보효과를 노리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정치권 사외이사 영입이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많아야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사외이사의 선임이 그렇게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며 “정치권 인사라 하더라도 교수, 기업 대표 등 전문적인 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다면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9월 29일 금융감독원은 19대 대선 관련 정치테마주 147종목을 모니터링한 결과를 발표했다. 금감원은 이번 발표에서 회사명과 관계자 이름을 밝히지 않았으나 사례로 소개된 A 업체는 반기호 씨가 현재 부회장으로 있는 건축자재 전문 기업으로 확인됐다. 금감원은 A 사의 최대주주 겸 대표이사가 차명주식을 고가에 매도할 목적으로 지난해 9월 당시 반 씨를 위장 영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금감원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반 씨가 A 사에서 어떠한 업무도 수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금감원은 “반 씨 위장영입으로 A 사의 주가가 3배 이상 상승하자 대표이사가 차명주식을 매도하여 부당이득 101억 원을 챙겼다”며 “대표이사를 고발하고 A 사에 과징금을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A 사의 한 관계자는 “베트남 쪽 사업 규모가 커지고 있어 반 부회장님이 지난해 9월부터 지금까지 베트남에 계속 머물면서 태양광 사업에 관여하고 계신다”며 “오해의 소지는 있으나 사실과 전혀 달라 행정이의 신청을 할 계획”이라고 혐의를 부인했다. 금감원 한 관계자는 “이미 고발조치는 한 상태로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개별 기업에 대한 언급은 곤란하다”고 밝혔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