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과 바꾼 ‘’환각의 나라‘’
이란의 수도인 테헤란에 위치한 카우사르 공원. 아랍어로 ‘천국에 흐르는 강물’이란 뜻의 이 공원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롭기 그지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곳에서는 조깅을 하는 어른들이나 놀이시설을 이용하는 어린이들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잔디 위 혹은 벤치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는 사람들만이 눈에 띌 뿐이다. 이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마약 중독자들’이다.
이들이 이곳에 모여 하는 일은 주사 바늘로 팔뚝에 크랙이나 헤로인 등의 마약을 주입하는 것이다. 이미 환각 상태에 빠진 사람들은 잔디 위에서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누워 있거나 혹은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꾸벅꾸벅 졸고 있다. 잔디 위에는 이들이 사용하고 버린 주사 바늘이 쌓여 있다. 이렇게 이 공원은 본래의 이름과 달리 점차 ‘천국’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말았다.
이란에서 이런 풍경은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니다. 수십 년 전부터 서서히 마약이 성행하는가 싶더니 이제는 어디서나 흔하게 마약 중독자를 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꾸준히 증가했던 마약 중독자 수는 급기야 오늘날 세계 최고 수준이 되고 말았다.
얼마 전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이끄는 이란 정부가 공식 발표한 바에 따르면 현재 이란의 마약 중독자 수는 110만 명이다. 또한 70만 명 정도가 심한 중독성을 보이지는 않지만 마약을 복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실제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란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마약은 헤로인이다. 근래 들어 젊은층 사이에서는 집에서 쉽게 만들 수 있는 크랙, 스피드, 글래스 등과 같은 합성마약들이 유행하고 있다. 메스암페타민 성분을 지닌 이 마약들은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점과 비교적 저렴하다는 이유로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이란일까. 정확한 이유는 아직 조사된 바 없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란의 ‘술 판매 금지법’이 하나의 이유가 되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다. 술집 영업조차 허용되지 않는 이란에서 젊은이들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테헤란에서 마약중독치료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모하메드 쉬라시 의사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오히려 마약 중독자들 사이에서는 술을 마시는 사람이 드물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높은 실업률과 지독한 경기 불황”이라고 말했다. 사회에 불만을 가진 젊은이들이 도피책으로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정부가 이를 알고도 무책임하게 방치한 결과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마약을 싸게 구입할 수 있다는 점도 큰 문제로 꼽았다. 가령 테헤란에서는 크랙의 경우 1g에 3유로(약 5600원)면 구입할 수 있으며, 아편은 1g에 6~8유로(약 1만~1만 5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여성 마약 중독자 수가 증가하고 있는 것도 커다란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란 남부의 작은 마을에 거주하는 페레쉬테(19)의 경우를
▲ 마약 주사를 맞고 있는 한 중독자. | ||
부자 손님에게서 전화가 오는 날이면 그나마 운이 좋은 날이다. 직접 고객의 집으로 찾아가 서비스를 하면 많게는 하룻밤에 70유로(약 13만 원) 정도는 받아올 수 있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건설 노동자들의 전화는 돈도 얼마 벌지 못하는 데다 지저분한 공사 현장에서 관계를 해야 하기 때문에 영 반갑지 않다. 이런 경우에는 보통 하룻밤에 25유로(약 4만 6000원) 정도 버는 게 고작이다.
이렇게 번 돈으로 사가지고 온 마약은 고작 하루 이틀이면 동이 나기 일쑤다. 하는 수 없이 며칠 못 가 또 다시 몸을 팔아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 되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이란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우선 마피아가 활동하는 지역을 소탕한 후 마약 거래상들을 공개 처형했는가 하면 수백 명의 마약 중독자들을 수용소에 감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약 자체는 근절하지 못했다. 수용소에 들어간 중독자들은 여전히 불법으로 마약을 거래했으며, 심지어 주삿바늘을 함께 사용한 탓에 에이즈 환자가 급격히 늘어나는 등 문제는 더욱 커져만 갔다.
결국 2002년 실질적인 이란의 최고 권력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일명 ‘메타돈 요법’이 바로 그것이었다. 메타돈은 비교적 약한 합성 마약으로 보통 헤로인과 같은 강한 마약 대용으로 투입하면서 서서히 중독에서 해방되도록 도와준다. 현재 이란 전역에 설치된 600여 개의 마약중독센터에서는 메타돈 요법으로 10만 명가량의 마약 중독자들이 치료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치료 요법에 고무된 이란 정부는 앞으로 1250개의 공중보건소에서도 이와 같은 요법을 실시할 계획이다. 이곳에서는 메타돈을 무상으로 보급하는 것뿐만 아니라 콘돔이나 깨끗한 주삿바늘도 보급한다. 중독이 심한 환자들에게는 아편을 무상으로 나눠주고 있다. 아편을 약하게 음료수에 타서 마시면 금단 현상을 줄일 수 있으며, 강한 헤로인을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낫다는 판단에서다.
그동안 ‘국민들이 마약에 빠지도록 방치했다’는 질타를 받았던 이란 정부가 마약과의 기나긴 전쟁에서 과연 얼마나 성공을 거둘지 주목된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